살림 열심히 하면 안 되는 이유

by 책봄

만약 이 글을 읽는 당신이 매 끼니 멋진 요리를 만들어 SNS에 업로드하는 것이 기쁨이고, 손수 인테리어를 하는 것이 취미이고, 알뜰하게 가계부를 쓰는 일이 즐거운 사람이라면 살림을 더욱 더 열심히 하라고 격려하고 싶다. 살림에 재주가 있는 사람은 살림을 해야 한다. 자신의 재주를 살려 타인에게 인정도 받으면서 자존감도 높일 수 있다면 더 없이 행복한 일일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나는 전업주부지만 살림이 싫다. 살림을 잘해서 전업주부가 된 것도 아니다. 나에게도 살림에 재주가 있었다면 전업주부의 길이 조금 더 즐거웠을지 모르겠다. 가족을 위해 정성껏 요리를 하고, 남편과 아이 취향을 고려해서 골고루 반찬을 차려내는 것에서 기쁨을 느끼는 사람이었다면 얼마나 행복했을까.


처음에는 앞치마 끈을 동여매고 이렇게 저렇게 시도를 해보았다. 인터넷에서 맛있는 레시피를 찾고 유명한 요리사들의 유튜브도 구독했다. 맛이야 있을 때도 있고 없을 때도 있었지만 맛보다 더 중요한 것은 요리를 하는 과정이었다. 머릿속에 레시피가 없으니 수시로 만드는 방법을 확인했다. 시간이 오래 걸렸고, 굉장한 집중력이 필요했다. 그런데 어디 아이가 ‘어머니 맛있는 요리를 만드세요’ 하고 가만히 기다려주던가. 끝도 없이 무언가 요구하고 말을 걸고 다가와서 참견하는 통에 나는 요리를 할 때 아이에게 가장 많이 화를 냈다.


“엄마 요리하잖아! 가만히 좀 있으라고!”


결국은 TV를 켜주고 요리에 집중했다. 반전은 그렇게 해서 만든 요리를 가족이 잘 먹었다면 좋았겠지만 대부분 먹어보지도 않거나 한 입 먹고 거부하는 일이 흔했다. 만드느라 고생, 치우느라 고생, 버리느라 고생.


그런 날이면 아이에게 화를 내고 뒤늦게 자책했다. 배달음식이나 외식으로 한 끼를 때울 때면 괜한 죄책감이 들었다. 아이에게는 건강한 음식을 해먹이지 못했다는 생각, 남편에게는 생활비를 낭비하고 있다는 생각에 그랬다. 매 끼니가 돌아오는 것이 엄청난 스트레스였다. 하지만 어김없이 하루 세끼는 돌아오고 배는 고프다. 나는 굶어도 가족을 굶길 수 없으니 또 마지못해 부엌에 서서 서툰 솜씨로 무엇이라도 만들어야 했다.


어느 날 남편에게 솔직히 이야기했다.


“당신도 회사에서 정말 자신 없고 하기 싫은 일이 있지? 나에게는 요리가 그래. 그런데 하루에 세 번 매일매일 그 일을 해야 해. 먹고살려면 안 할 수는 없고, 열심히 하자니 내가 너무 스트레스를 받아. 그래서 이제 요리는 열심히 안 하려고. 되는 대로 먹고살자.”


워킹맘이라 시간이 없다는 핑계도 체력이 달린다는 핑계도 댈 수가 없다. 정공법으로 이야기하는 수밖에.


남편도 조금은 수긍하는 눈치였다. 그 후로 나름 원칙을 정해서 요리를 한다. 내가 만들었을 때 반드시 성공하는 요리 리스트를 적어보았다. 짜장밥, 카레밥, 스파게티, 미역국, 토스트, 김치찌개, 된장찌개, 콩나물무침 등. 나는 이 메뉴 안에서만 요리를 한다. 대신 맛있는 반찬가게를 알아두고 일주일에 한 번 꼭 들른다. 내가 만드는 요리만으로는 다양한 메뉴를 맛볼 수 없어서인지 아이도 편식을 하게 되더라. 그래서 반찬가게에 들러 다양한 반찬들을 사려고 노력한다. 기왕이면 남편이 좋아하는 반찬 하나, 아이 반찬 하나, 내가 좋아하는 반찬 하나 이렇게 구입한다. 주말에는 밀키트를 주문하거나 식당에서 포장해온 음식으로 푸짐하게 먹기도 하고 외식도 즐긴다. 죄책감을 갖지 않고. 의무감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여유가 생기니 포기했던 요리도 다시 해보고 싶어졌다.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종종 새로운 메뉴에 도전하기도 한다.


살림에서 자존감을 세울 수 없는 사람이라면 너무 열심히 하지 말자. 처음 수영을 배우는 아이를 생각해보자. 운동에 소질이 있는 아이들은 처음 물에 들어가서도 개 헤엄을 치든 개구리 헤엄을 치든 물장구를 치고 나간다. 하지만 운동에 소질이 없고, 물이 무서운 아이들은 1년을 배워도 진도 나가기가 쉽지 않다. 어른의 살림도 마찬가지다. 소질이 없는 일은 아무리 열심히 해봤자 중간도 못 갈 확률이 높다. 죽도록 노력하고도 나보다 훨씬 잘 하는 사람에게 평생 기죽어야 하는 입장이 된다. 우리 그렇게는 하지 말자.


대신 내가 잘 할 수 있는 것을 생각해보면 어떨까. 살림은 가전제품이나 가사도우미 서비스 등 나보다 잘 할 수 있는 사람이나 기계에 맡기고, 가정 내에서 내가 아니면 안 되는 일을 찾아보자.


나는 그것이 가족의 정신적 지주가 되는 일이라고 정했다. 밖에서 힘든 일이 있어도 집에 돌아와 편히 쉴 수 있고, 위로받을 수 있는 곳이 되도록 만드는 일. 그래서 가장 힘들 때 찾는 곳이 집이 되기를. 그것이 이 집에서 내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역할이다. 재미있는 점은 가족의 정신적 지주로 단단히 버티기 위해서는 나 자신이 먼저 행복해야 한다는 것이다. 내가 행복해야 좋은 에너지를 나눠줄 수 있다. 엄마의 감정은 남편의 표정에 아이의 정서에 고스란히 담기기 때문이다.


한번 생각해보자. 혹시 하고 싶지 않은 집안 일에 열정을 쏟고 있지는 않은지, 꼭 내가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이 있지는 않은지, 좀 더 편하게 하는 방법이 있지 않은지. 그리고 내가 살림 대신 이 집과 가족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곰곰이 생각해보자.



* 사진출처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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