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이 글을 읽는 당신이 매 끼니 멋진 요리를 만들어 SNS에 업로드하는 것이 기쁨이고, 손수 인테리어를 하는 것이 취미이고, 알뜰하게 가계부를 쓰는 일이 즐거운 사람이라면 살림을 더욱 더 열심히 하라고 격려하고 싶다. 살림에 재주가 있는 사람은 살림을 해야 한다. 자신의 재주를 살려 타인에게 인정도 받으면서 자존감도 높일 수 있다면 더 없이 행복한 일일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나는 전업주부지만 살림이 싫다. 살림을 잘해서 전업주부가 된 것도 아니다. 나에게도 살림에 재주가 있었다면 전업주부의 길이 조금 더 즐거웠을지 모르겠다. 가족을 위해 정성껏 요리를 하고, 남편과 아이 취향을 고려해서 골고루 반찬을 차려내는 것에서 기쁨을 느끼는 사람이었다면 얼마나 행복했을까.
처음에는 앞치마 끈을 동여매고 이렇게 저렇게 시도를 해보았다. 인터넷에서 맛있는 레시피를 찾고 유명한 요리사들의 유튜브도 구독했다. 맛이야 있을 때도 있고 없을 때도 있었지만 맛보다 더 중요한 것은 요리를 하는 과정이었다. 머릿속에 레시피가 없으니 수시로 만드는 방법을 확인했다. 시간이 오래 걸렸고, 굉장한 집중력이 필요했다. 그런데 어디 아이가 ‘어머니 맛있는 요리를 만드세요’ 하고 가만히 기다려주던가. 끝도 없이 무언가 요구하고 말을 걸고 다가와서 참견하는 통에 나는 요리를 할 때 아이에게 가장 많이 화를 냈다.
살림에서 자존감을 세울 수 없는 사람이라면 너무 열심히 하지 말자. 처음 수영을 배우는 아이를 생각해보자. 운동에 소질이 있는 아이들은 처음 물에 들어가서도 개 헤엄을 치든 개구리 헤엄을 치든 물장구를 치고 나간다. 하지만 운동에 소질이 없고, 물이 무서운 아이들은 1년을 배워도 진도 나가기가 쉽지 않다. 어른의 살림도 마찬가지다. 소질이 없는 일은 아무리 열심히 해봤자 중간도 못 갈 확률이 높다. 죽도록 노력하고도 나보다 훨씬 잘 하는 사람에게 평생 기죽어야 하는 입장이 된다. 우리 그렇게는 하지 말자.
대신 내가 잘 할 수 있는 것을 생각해보면 어떨까. 살림은 가전제품이나 가사도우미 서비스 등 나보다 잘 할 수 있는 사람이나 기계에 맡기고, 가정 내에서 내가 아니면 안 되는 일을 찾아보자.
나는 그것이 가족의 정신적 지주가 되는 일이라고 정했다. 밖에서 힘든 일이 있어도 집에 돌아와 편히 쉴 수 있고, 위로받을 수 있는 곳이 되도록 만드는 일. 그래서 가장 힘들 때 찾는 곳이 집이 되기를. 그것이 이 집에서 내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역할이다. 재미있는 점은 가족의 정신적 지주로 단단히 버티기 위해서는 나 자신이 먼저 행복해야 한다는 것이다. 내가 행복해야 좋은 에너지를 나눠줄 수 있다. 엄마의 감정은 남편의 표정에 아이의 정서에 고스란히 담기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