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이 아니라 현실

by 책봄

엄마 곁을 떠나 독립 한 순간부터 새로운 일이 하나 생겼다. 한집안을 이루어 살아가는 일. 살림.


소꿉놀이하듯 즐겁기만 한 적도 있다. 누구나 처음은 그렇듯이. 엄마 잔소리를 듣느라 사지 못했던 아기자기한 소품들을 사 모으고, 냉장고 안에 각종 음료와 술을 각 맞추어 진열했다. 예쁜 그릇도 사고, 유튜브에서 레시피를 찾아 그럴싸한 요리도 만들어보고. SNS에 사진을 올리고 나니 더할 나위 없이 만족스러웠다. 주변 사람들에게 내가 만든 요리 사진을 보여주며 살림에 소질이 있는 것 같다고 말하던 시절도 있었다. 낭만은 딱 거기까지다.


먹었으니 치워야 한다. 요리를 하느라 엉망이 된 주방에 냄비, 프라이팬, 포크, 나이프, 접시, 컵 등이 쌓여있다. 겨우 그릇을 닦고 나니 음식물쓰레기가 눈에 띈다. 쓰레기봉투에 잘 모아 담는다. 이제 진짜 끝났구나 하고 침대에 누우려는데 방바닥에 머리카락이 굴러다닌다. 손을 더듬어 돌돌이를 찾아 누운 채로 슬슬 굴려본다. 좀 짜게 먹었나. 가만히 누워있자니 목이 마르다. 냉장고를 열고 음료수를 꺼낸다. 언제 넣어놓았는지 모를 먹다 남은 음식, 날짜가 지난 우유 등이 눈에 띈다. 시원한 콜라를 한 모금 마신 뒤 소매를 걷어붙이고 냉장고를 정리하기 시작한다. 한바탕 달그락 거리고 나니 땀이 난다. 서둘러 샤워를 하고 머리를 말리고 나오려는데 욕실 바닥 가득 또 머리카락이 보인다. 샤워기로 대충 물을 뿌려 한 곳으로 모아놓고 마르면 버려야지 하고 일단 욕실을 나온다. 그 위에 오늘의 머리카락과 내일의 머리카락이 쌓이고 결국 수채 구멍이 막힌다. 막힌 구멍을 뚫는 일도 내 몫이다.


인터넷에서 온라인 집들이 사진을 보며 인테리어 아이디어를 참고하고, 정갈하게 차려낸 7첩 반상의 밥상을 보며 신혼살림에 대한 꿈을 꾸기도 했다. 하지만 이쯤 되니 깨닫는다. 독립한 어른의 살림이란 낭만이 아니구나. 현실이구나. SNS에 올라오는 맛깔난 음식 사진도 다 먹은 후의 치우는 과정은 나와 같을까. 어쨌든 살림에 대한 나의 꿈과 현실은 괴리가 컸다. 언젠가는 친정엄마처럼 진수성찬의 밥상을 아무렇지 않게 뚝딱 차려내고, 고가의 돈을 들여 인테리어를 하는 일이 가능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 당장은 아니다. 꿈은 꿈대로 꾸며 현실은 현실적으로 살기로 했다. 독립한 성인이라면 좋으나 싫으나 매일 해야 하는 그 일을 시간에 쫓기지 않고 주도적으로 계획하고 실천하는 습관을 만들기로 한 거다. 조금 쉽고 최대한 요령 있게.


지금 살림에 대한 나의 목표는 단순하다.


맨발로 집을 돌아다녀도 발바닥이 까매지지 않을 것.

오늘 저녁 식사 때 사용할 접시가 남아 있을 것.

욕실 장식장 안에 수건이 부족하지 않을 것.

양말과 속옷이 항상 구비되어 있을 것.


너무 소박한가. 이 소박하고 당연한 일을 하기 위해 굉장히 부지런히 움직여야 한다는 사실을 독립한 성인이라면 모를 리 없다. 간소하지만 성실하게 나의 일상을 꾸려가는 어른이 되자. 작은 꿈을 꾸자. 실현 가능한. 살림은 낭만이 아니라 현실이니까.




* 사진출처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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