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기생충>에서 이정은이 연기한 문광은 재벌집의 살림을 도와주는 가사도우미다. 그녀의 옷차림, 머리스타일, 걸음걸이, 말투 등은 여유롭고 기품 있다. 만약 그녀가 가사도우미라는 설정을 빼고 본다면 꽤 능력 있는 여성으로 보일 정도다. 정말 재벌가의 살림을 도와주는 가사도우미는 영화에서처럼 세련되고 교양 있을까?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살면서 재벌을 만날 기회도 흔치 않은데 그들의 집에 가 볼 일은 아마 없을 테니까. 이렇듯 나에게 가사도우미란 TV나 영화 속에서나 볼법한 먼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어제 가사도우미를 쓰는 젊은 엄마를 현실에서 만났다.
“우리 집 청소해주시는 아주머니가 목 디스크 때문에 고생 많이 하셨어. 내가 괜찮은 병원 소개해드리고 효과를 많이 보셨거든. 00 병원에 한번 가봐.”
그녀가 알려 준 병원 정보 보다 ‘우리 집 청소해주시는 아주머니’라는 말에 꽂혀버렸다. 결혼하면 손에 물 한 방울 묻히지 않고 살게 해 주겠다는 프러포즈를 현실로 살고 있는 사람.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가사도우미를 쓴다는 이야기를 하는 그녀. 현실감이 느껴지지 않아 부럽지도 않았다.
집에 와서 가만히 생각해보니 요즘 세상에 도우미를 쓰는 일이 특별한 일도 아니다. 나 혼자만 촌스럽게 집안일에 사람을 쓰면 엄청 부자인가 보다 생각하는 거지 요즘은 가사도우미 어플이 있을 만큼 마음만 먹으면 살림 따위 대신해 줄 사람은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내가 사는 아파트에도 일주일에 한 번씩 화장실 청소만 전문으로 해준다는 업체, 매일 셔츠를 세탁하고 다림질까지 해서 배달해준다는 업체의 전단지가 붙어있었다. 생각보다 합리적인 가격에 서비스를 이용해볼까 고민한 적이 있다. 경제적으로 여유만 있다면 꼭 해야 하지만 성과는 크게 없는 집안일은 전문 도우미에게 맡기고, 보다 생산적인 일에 시간과 에너지를 쓰는 것이 남는 장사라는 생각도 든다. 경제적 여유가 없다는 것이 문제다. 가슴 아프다.
아니, 가슴 아플 것도 없다. 재벌이든 아니든 하루 세 끼 먹고, 자고, 싸는 건 똑같으니까. 모두에게 공평하게 주어진 살림. 어쩜 이걸 어떻게 꾸려가느냐에 따라 미래의 내 모습은 달라질 수도 있다. 같은 아파트, 같은 구조의 집이라고 해도 사는 사람들의 성향이나 취향에 따라 세월이 지나면 전혀 다르게 변해가는 집. 살림이 그렇다. 가랑비에 옷 젖듯이 서서히 나의 일상에 물들어간다. 그러니 내 손으로 하든 아니든 간에 나만의 취향과 성격을 살림에 녹여내는 것에 가치를 둔다면 어떨까. 끌려가지 않고, 내가 주도권을 가지면서. 그런 마음으로 집안 일에 임한다면 조금은 즐겁게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하루하루 살다 보면 집안 일을 대신해주는 로봇이 보편화되어 노년에는 버튼 하나로 귀찮은 살림을 모두 해결할 수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예전에는 꿈도 꾸지 못했을 빨래를 말려주는 건조기나 설거지를 대신해주는 식기세척기가 대중화된 것 처럼 말이다.
상상은 상상이고, 나는 일단 배수구 청소부터 해야 한다. 어제부터 세탁기를 돌릴 때마다 물이 역류하고 있다. 아무리 생각해도 청소는 내 취향이 아니다. 누구는 깔끔하게 치우고 나면 속이 다 시원하다는데 나는 속에서 울화통이 터진다. 구석구석 찌든 때를 벗겨내고, 검은 먼지를 걷어내는 일은 정말이지 적성에 안 맞는다. 고무장갑을 끼고 배수구를 막고 있는 머리카락과 먼지를 떼어내며 생각한다.
'비상금을 모으자. 내 용돈에서 매달 1~2만 원이라도 아껴서 연례행사처럼 청소업체를 부르자. 올해는 화장실 청소 업체 불러서 곰팡이, 물 때, 자꾸 막히는 배수구까지 새것처럼 청소하고, 내년에는 에어컨, 세탁기 업체 불러서 통분해 해 말끔하게 닦아내고, 후년에는 창틀 청소업체 불러 방충망까지 싹 뜯어내고 속 시원하게 창틀 좀 닦고. 너무 좋은 생각인데!'
로봇청소기에게 청소를 맡기고, 식기세척기에게 설거지를 맡긴 채 살림이 하기 싫다는 글을 쓰고 있는 나. 청소 업체를 연례행사처럼 쓰면 어떨까 하는 생각까지 하게 된 나. 이 정도면 나도 재벌은 아니어도 준재벌 정도는 되는 거 아닌가.
* 사진출처 : 영화 기생충 스틸컷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