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전, 나는 평범한 초등학교 교사였다. 아주 풍족하지도 많이 부족하지도 않은 유년 시절과 학창 시절을 보냈다. 그래도 나름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대학에 갔고 좋은 직장을 얻었다. 하지만 청담동, 압구정은 늘 TV 속의 이야기였다. 가끔 강남에 놀러 갈 때가 있었지만 아주 잠시 다른 세상에 들어갔다 나올 뿐이었다.
그러다 26살의 겨울 소개팅으로 지금의 남편을 만났고, 나는 마치 앨리스가 이상한 나라에 빠지듯, TV에서만 보던 이상한 세상에 들어오게 되었다. 내가 학생이었던 때, <청담동 앨리스>라는 드라마가 있었다. 청담동 며느리가 되고자 하는 여자의 일대기였다. 어렴풋이 기억나는 그 드라마가 현실이 된 것이다. 청담동에 시댁을 둔 나는 압구정에 터를 잡고 살게 되었다. 말로만 듣던 청담동 며느리, 압구정 새댁이 된 것이다.
결혼 소식을 알리자, 주변에서는 진심으로 축하를 해주는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나를 안 좋은 시선으로 바라보는 사람들도 생겨났다.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데, 나는 사촌도 아닌 남이니 말이다. 그리고 특히나 내가 몸담고 있는 학교는 굉장히 좁은 사회였다. 나에 대한 관심과 소문은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커져만 갔다.
그러던 결혼을 앞둔 어느 날 꽤 친하다고 생각했던 동료 선생님들과 식사를 했다. 역시나 동료 선생님들은 나의 결혼에 대해 관심이 많았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던 중 한 동료 선생님이 이렇게 말했다.
그런데 아마 그 동네 압구정, 청담 토박이들과는 어울리기 힘들 텐데, 괜찮겠어? 선생님 경기도 출신이잖아. 청담, 압구정은 내가 사는 대치, 도곡과도 달라. 텃세가 엄청날 텐데, 잘 살 수 있겠어?
걱정인지 저주인지 모를 그 말에, 29살의 어린 나는 화도 나고 자존심도 상했던 것 같다. 그래서 그날 그 선생님과는 2시간 가까이 말씨름을 했다. 지금이 조선 시대도 아니고 출신 지역을 따지는 것이 말이 되느냐부터, 그런 생각을 가진 사람만 사는 건 아닐 거라며 열심히 반박했었다. 물론 다음 날 그 선생님은 나에게 미안하다며 사과를 했다. 사실 지금 생각하면 그냥 그렇구나 하며 웃고 넘길 수도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당시에는 나도 앞으로 펼쳐질 새로운 삶에 대한 확신이 없었던 것 같다.
그날 집에 돌아오는 길, 나의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내가 어디 출신인지 물어보면 거짓말을 해야 하나?’ ‘내가 경기도 출신인 것이 정말 문제가 될까?’ ‘진짜 압구정에서 누구와도 못 어울리면 어떡하지?’ 하지만 이내 나는 잘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나는 스스로에 대해 자신이 있었다. 또한 사람에 대한 믿음도 있었다. 세상에는 그렇게 이상한 사람만 있지는 않을 거라는 믿음. 그리고 반드시 이곳에서 잘 지내보겠다는 다짐을 했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