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시험을 본 후에는 언제나 아이들에게 채점한 시험지를 돌려주고 스스로 틀린 것을 확인할 수 있도록 했었다. 여느 때처럼 시험지 문제의 답을 함께 확인한 후, 혹여나 채점이 잘못된 것이 있는지 물었다. 그때 한 여학생이 슬며시 손을 들었다. 나는 그 아이에게 시험지를 가지고 앞으로 나오라고 했고, 아이는 천천히 나에게 다가왔다. 그리고는 한 문제를 가리키며 자신은 정답을 적었는데, 선생님이 틀리게 채점을 한 것 같다고 속삭이며 말했다. 아이는 불안해 보였고 위축되어 있었다.
나는 아이가 가리킨 문제를 본 순간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3학년, 고작 10살의 아이는 원래 썼던 오답을 제대로 지우지도 못한 채, 오답 위에 정답을 다시 적은 것이다. 막 지운 흔적이 역력히 남아 있는 얼룩덜룩한 시험지를 보며, 나는 다른 아이들에게 들리지 않게 조용히 말했다. “선생님 생각에는 A가 답을 고친 것 같은데 아니니?” 불안하게 큰 눈을 이리저리 굴리던 아이는 아니라는 말 한마디를 못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아이에게 일단 자리에 돌아가 앉으라고 하고는 수업을 마무리했다.
아이들이 모두 하교한 뒤 그 아이를 다시 불렀다. 아이에게 물었다. 왜 거짓말을 했느냐고. 아이는 큰 눈에서 눈물을 뚝뚝 흘리며 대답했다.
많이 틀리면 엄마한테 맞아서요..
그 순간 고친 시험지를 봤을 때보다도 더 빠르게 심장이 뛰었다. 반에서 키 번호가 3번일 정도로 작고 왜소한 아이였다. 아이는 지금까지 얼마나 많이 맞았을까. 아니, 아이는 얼마나 많은 시험을 맞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썼을까. 또 얼마나 많은 순간 틀린 것을 고치고 싶은 잘못된 마음을 억누르기 위해 힘들게 버텼을까. 많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고작 10살의 아이는 본인이 저지른 행동을 감당하기 힘들어 보였다. 나는 한참을 고민하다 아이에게 말했다. 이번 일은 부모님에게는 절대 말하지 않겠다고. 하지만 다시는 이런 행동을 하면 안 된다고. 어떤 것도 너 자신을 속이는 것보다 나쁠 수 없다고. 아마 지금의 내가 그때의 아이를 만난다면, 그때보다는 더 적극적으로 행동했을 것 같다. 하지만 겨우 담임 1년 차 새내기 교사였던 나는, 혹여나 아이의 거짓말을 알게 된 부모님이, 아이에게 더 심한 매질을 하지는 않을까 걱정하는 마음뿐이었던 것 같다.
물론 나는 아이의 말을 듣기 전에는 아주 크게 혼내줄 생각이었다. 나는 원래가 거짓말을 끔찍이도 싫어하는 성격이다. 그래서 늘 새 학기가 시작할 때면 학생들에게 ‘거짓말’만큼은 절대 안 된다고 엄포를 놓을 정도이다. 하지만 그날만큼은 그럴 수 없었다. 아이에게만 이 일의 책임을 묻기엔, 너무 많은 어른들에게 책임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한없이 작고 슬퍼 보이던 그날의 아이를 잊지 못한다. 10살의 아이에게 수학 문제 하나는 무슨 의미였을까. 그 아이는 수학 문제를 다 맞히면 정말 행복하기는 했을까. 아니면 엄마를 행복하게 해 줄 수 있다는 마음에 안도를 했을까. 반에서도 공부를 꽤나 열심히 하던 그 아이는, 본인을 위해 공부한 것이었을까 엄마를 위한 것이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