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9년 차 초등 교사로, 지금은 아직 어린 두 아이를 육아하느라 휴직 중이다. 나는 25살에 교직 생활을 시작했는데, 꽤나 엄격한 선생님이었다. 그래서인지 대부분의 학생들이 나이 어린 선생님을 쉽고 편하게 생각한다는데, 나는 거기서 예외였다. 일례로 우리 반(내가 담임으로 있는 반)은 수업 준비를 꼭 해야 한다는 규칙이 있었다. 그리고 그 규칙을 지키지 않을 경우에 아이들은 반드시 벌을 받았다(물론 학기 초에 아이들에게 수업 준비의 중요성을 미리 말해준다). 나는 내가 열심히 수업을 준비하는 만큼, 학생들도 수업을 들을 준비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것이 서로에 대한 예의이자, 수업을 효과적으로 진행하는 방법이라고 믿었다.
그래서 당시의 나는 연륜 있는 선배 교사들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하는 순간들이 많았다. 선배 교사들은 아이들이 규칙을 지키지 않아도 크게 혼내지 않고 넘어가는 경우가 많았다. 심각한 일이 아니라면 아이들은 그럴 수 있다며 웃어넘겼다. 줄을 안 서도, 숙제를 안 해도, 친구랑 싸워도 그랬다. 하지만 의욕 넘치던 20대의 나는 달랐다. 실수를 하거나 잘못한 아이가 있으면 늘 아이를 불러 이유를 묻고 혼을 내고 바꾸려 노력했다. 그게 교사의 본분이라 생각했었다.
그런데 어느덧 두 아이를 낳고 34살의 엄마가 되니, 당시의 선배 교사들이 이제는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내가 아이를 키워 보니 아이들은 원래 잘 실수하고, 잊고, 또 반복한다. 그러니 큰 실수나 심각한 잘못이 아니라면 매번 지적하고 혼내는 것보다는, ‘아이들은 원래 그렇지 뭐.’ 하며 넘기는 것도 괜찮은 방법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무엇보다 내가 직접 아이를 기관에 보내 보니, 아이의 잘잘못을 떠나 내 아이가 선생님께 혼이 나고 오면 일단 엄마는 마음이 아프다. 물론 잘못을 하면 혼나야 하고 고쳐야 하는 것은 아는데, 엄마는 일단 안쓰러운 마음이 먼저다. 그러니 큰일이 아니라면, 때로는 엄마의 마음으로 웃어넘기는 것도 괜찮겠다는 생각도 든다.
어떤 교육 방법이 옳다 그르다의 문제가 아니라, 아이를 키워본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포용력과 유연함이 생긴 것이다.
젊은 시절, 학교에서 내가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이 하나 더 있었는데, 바로 강남의 초등학생은 라떼와(나 때와) 너무 다르다는 것이다. 그곳은 ‘라떼는 말이야’가 전혀 통하지 않는 곳이었다. 나의 초임 발령지는 불행인지 다행인지, 학군이 좋기로 유명하여 ‘위장 전입’까지 하는 대치동 근처의 초등학교였다(다행이었던 이유는 아이들이 순해서였고, 불행이었던 이유는 학부모들의 치맛바람이 25살의 교사가 감당하기 힘들 만큼 거세서였다.). 나에게는 첫 발령지였지만 다양한 지역의 학생들을 경험한 선배 교사들은, 이곳의 아이들을 ‘그림 같다’고 표현했다. 그만큼 그곳의 아이들은 대부분 선생님 말을 잘 듣고, 열심히 공부했으며, 순한 편이었다.
발령을 받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다. 5학년 아이들에게 몇 시에 자느냐고 물은 적이 있었다. 놀랍게도 아이들은 대부분이 12시가 넘어서 잔다고 대답했다. 이유를 물으니, 아이들은 학원 숙제가 많아서 그전에는 잘 수 없다고 대답했다. 심지어는 학원이 끝난 후에 독서실을 다닌다는 아이도 꽤 있었다. 나는 당시의 충격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물론 15년 전의 이야기이지만 나는 초등학교 6학년까지 공부 관련 학원을 다녀본 적이 없었다. 독서실은 당연히 고등학생이 되어서야 갔고 그마저도 가서 졸기 바빴다. 처음에는 거짓말하지 말라며 아이들을 의심했고, 나중에는 힘들겠다며 진심 어린 위로를 건넸다. 그날 아이들은 너도나도 자신이 학원을 몇 개를 다니는지, 또 얼마나 늦게 자는지 자랑 아닌 자랑을 했다. 개중에는 본인이 얼마나 좋은 학원을 다니는지, 또 학원에서도 얼마나 높은 반에 있는지를 자랑하기도 했다.
나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고작 12살 먹은 아이들이 하루에 3~4개의 학원을 다니며 12시까지 숙제를 해야만 하는 현실에 기가 막혔다. 더욱 처참했던 것은, 소위 좋은 학원, 높은 반에 다닌다고 자랑하는 꽤 많은 아이들의 실력이 실제로는 그렇지 못했기 때문이다. 당시 5학년 아이들 중에는 고등학교 수학을 하고 있는 아이도 있었다. 중학교 수학을 이미 끝내고, 수1을 하고 있다는 몇몇의 아이들은, 내가 보기에 초등학교 수학의 기초도 완벽하게 잡혀 있지 않았다. 아이들은 대부분 수학뿐 아니라 모든 과목을 적게는 1학기, 많게는 3년 이상 선행하고 있었다.
마치 구멍이 뻥 뚫린 탑 위에 계속 높이만 쌓고 있는 듯 보였다. 언제 무너져도 이상하지 않았다.
그리고 몇 년이 지나, 직접 강남 ‘압구정’에서 두 아이를 키워 보니, 당시의 초등학생들이 그렇게 공부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을 비로소 이해할 수 있었다. 이미 이곳의 아이들은 학교를 들어가기도 훨씬 전인 4살, 5살부터, 학원과 과외로 정신없이 바쁘게 살고 있었다. 대치동은 압구정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은 곳이니, 12살의 아이들이 밤늦도록 숙제를 하느라 잠을 못 자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4~5살 때부터 달려야 살아남을 수 있는 곳, 그곳이 바로 강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