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아이를 낳고 기르며, 스스로 다짐한 것들이 있다. 그중 가장 첫 번째가 ‘나의 기분이 아이를 대하는 태도가 되지 않는 것’이었다.
물론 스스로 이런 약속을 하게 된 데에는 나의 어린 시절의 기억이 큰 역할을 했다. 어린 시절, 아빠는 일주일에 얼굴 한번 보기가 힘들 만큼 바쁘셨다. 그리고 가끔 아빠를 만날 때면, 아빠는 언제나 자신의 기분을 가족들에게 가감 없이 표출하곤 했다. 스스로의 피로와 짜증을 못 이기는 날이면, 사소한 일에도 화를 냈다. 물론 자상할 때도 있었다. 아빠가 피곤하지 않고 짜증 나지 않을 때. 그래서 어린 시절의 나에게 아빠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처럼 느껴졌었다. 그리고 나는 그때의 기억이 20년이 지난 지금도 힘든 기억으로 남아있다.
그래서 나는 엄마가 된 뒤, 결코 나의 아이에게 나의 기분을 전가하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그런데 막상 아이를 낳고 기르다 보니, 아이에게 나의 짜증과 화를 분출하지 않는 것이 꽤나 힘들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일단 아이들은 하루에도 수십 번 잘못을 저지른다. 몰라서 잘못을 하기도 하고 알면서도 잘못을 하기도 한다. 더욱 문제는 내가 자꾸만 그날의 기분에 따라 아이에게 다르게 행동하게 된다는 것이다. 아이는 어제도 오늘도 똑같이 물을 쏟았지만, 내가 더 피곤하고 힘든 날에는 더 화가 났고 더 짜증이 났다. 아이를 키울 때 중요한 태도 중에 하나는 ‘일관성’인데 말이다.
아이가 하지 말라고 여러 번 했던 행동을 반복할 때, 알면서도 잘못을 저지를 때, 대부분의 부모라면 분명 화가 난다. 그래서 결국엔 필요 이상으로 화를 내고, 잘못된 행동과 상관없는 모진 말들을 내뱉게 된다. 그러나 명백한 사실은, 좋은 부모는 결코 아이에게 화내지 않는다. 훈육할 뿐이다. 나는 아이가 실수로 물을 쏟건, 일부러 물을 쏟건 짜증을 내거나 화를 내서는 안 된다는 것쯤은 알고 있다.
그래서 나는 아이가 크면서 스스로와 약속을 했다.
'나의 감정을 다스리기 힘들 정도로 화가 나면 생각 의자에 앉기'
물론 우리 집에 생각 의자가 아니라 생각하는 방(안방)이 있다. 그래서 나는 스스로 화가 누그러질 때까지 안방에 들어간다. 물론 아이들이 아직 어리기 때문에 집에 아무도 없을 때는, 아이들에게는 tv를 틀어주거나 간식을 주며 시간을 달라고 양해를 구한다.
보통은 생각하는 의자, 생각하는 방은 아이들이 과도하게 때를 쓸 때의 훈육 방법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사실 생각해 보면, 감정을 조절하지 못하고 분출하는 사람은 부모인 경우가 더 많다.
부모는 생각보다 본인의 감정을 아이에게 쉽게 표출한다. 왜냐하면 아이는 명백한 약자이기 때문이다.(부모는 그것을 스스로 무의식 중에 인지하고 있다. 과연 내가 오늘 기분이 안 좋다고 상사에게 짜증 내고 화낼 수 있는가?) 부모는 또한 성인이므로 스스로 감정을 다스려야 할 의무 또한 있다. 그래서 나는 가끔 스스로 방에 들어간다. 아이에게 상처를 줄 수 있는 행동을 할 바에야, 차라리 아무것도 안 하는 것이 낫다.
그래서 나는 아이를 기르며 화를 낼 수밖에 없는 엄마들에게, 생각하는 의자, 생각하는 방을 권한다.
-월간에세이 2월호에 기재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