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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둥아리 Feb 07. 2024

엄마도 반성문을 써볼게.

아이가 한글을 자유롭게 쓸 줄 알게 되면서, 정말 잘못한 일이 있을 때 반성문을 적어오게 한다. 스스로 무엇을 잘못했는지 되돌아보고, 앞으로는 어떻게 할지를 생각해 보라는 의미에서였다.




변명으로 시작하자면, 아주 피곤한 날이었다. 주말 아침부터 아이들과 함께 돌아다닌 탓이었다. 아이들이 노래를 부르던 워터파크에 다녀온 그날 밤, 아이들은 피곤함이 극에 달한 내 상태와는 다르게 여전히 쌩쌩했다. 어서 누워 자주면 좋겠건만, 여느 때와 다름없이 잠자리에 눕기까지도 수십 분이 걸린다. 물을 먹고, 책을 읽고, 인형을 만지고, 동생에게 말을 건넨다.


그리고 참다못한 나는 결국 아이에게 버럭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그만 좀 자라고. 조용히 자라고.


일순간 침묵이 흘렀다. 알고 있었다. 아이는 평소와 같았다. 평소라면 나도 웃으며 응했을 순간들이었다.


아차 싶던 순간, 아이가 흐느껴 울었다. 5살 아이의 작은 어깨가 위아래로 흔들리며 울고 있었다. 그냥 투정의 울음이 아니라는 것을 단번에 알 수 있었다.


아이에게 왜 우냐고 물었다. 답을 알 것 같았지만 굳이 물었던 이유는, 나를 스스로 혼내주고 싶었던 것 같다. 아이는 흐느끼며, “엄마가 너무 나쁘게 말해서 나는 속상해.”라고 답했다.


육아는 매 순간 스스로 얼마나 별로인 사람인지를 확인하는 일이라는 말이 머릿속에 계속 맴돌았다. ‘오늘 난 정말 별로다.’


그러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 아이를 앉게 한 뒤 눈을 맞추고는 진심을 담아 사과했다. “엄마가 진짜 미안해. 너무 피곤해서 엄마도 모르게 짜증을 낸 것 같아. 미안해. “ 그리고 이어 말했다. ”엄마가 오늘은 정말 잘못했으니까, 사과 편지를 쓰고 잘게. 내일 일어나면 볼 수 있게 말이야. 그러면 마음이 좀 풀릴까? “


아이는 나를 보며 고개를 끄덕이며 나를 안아준다. 아이는 이미 나의 사과와, 편지 약속에, 마음이 풀린 듯 스르륵 잠이 든다. 언제나 느끼지만 아이들은 어른들의 잘못을 너무도 쉽게 용서하고, 어른들은 쉽게 용서받을 줄 알기에 쉽게 잘못을 저지르는 실수를 반복한다.




아이가 잠든 그날 밤, 나는 식탁에 앉아 아이에게 편지를 썼다. 어쩌면 이건 나의 반성문이었다. 아이가 반성문을 쓸 때처럼, 내가 잘못한 일을 떠올리고, 앞으로의 행동을 스스로 약속했다. 육아를 하며 기분이 태도가 되지 않겠다고 다짐하지만, 종종 마주하는 너무 별로인 모습에, 스스로 부끄러워 숨고 싶을 때가 많다. 그럼에도 그런 나를 너무 쉽게 용서해 주고, 또 조건 없이 사랑을 쏟아주는 아이의 모습에, 더 좋은 어른이 되어야겠다고 매일 같이 다짐한다.


부디 앞으로 더 이상은 엄마의 반성문을 적을 일이 없기를 바라본다.

아이는 아침에 내 사과편지(반성문)를 읽고는 나를 꼭 안아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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