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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학의 포스트모더니즘

들뢰즈의 차이와 반복 그리고 현대 도시연구의 방향

by Pimlico

신의 관점에서 그려진 13세기 중세 회화에서는 예수님은 정면을 바라보고 인간보다 크게 표현되었으며, 객체의 사실적 표현보단 위에서 내려다보는 신의 시점으로 명확히 인식되는 것에 주안점을 두었다. 마치 교리의 다이어그램처럼 그려졌다. 반면에 15세기 르네상스 회화는 원근법을 통해 인간의 기하학적 관점이 반영되었다. 이러한 회화적 표현의 차이는 신 중심의 중세시대가 끝나고 인간이 중심이 되는 르네상스 시대의 시작을 알렸으며 인간의 사고를 지배하는 틀인 표상(representation) 변화의 대표적인 사례다.


또한 신의 절대적 진리라 믿어진 종교적 교리에서 벗어나 인간이 스스로 무지를 자각하기 시작했다. 세계(자연)를 이해하기 위해 지식을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예술, 철학과 함께 과학이 발달했다. 다시 말해, 세계와 인간 지식의 일치가 당시의 중요한 가치였다. 예를 들어,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은 인간의 수학적 지식(소실점과 기하학적 원리)이 세계의 본질을 보여줄 수 있다고 믿는 새로운 표상체계(representational system)에 의해 그려진 작품이다.


19세기 인상파 화가들은 빛이 변화할 때마다 시시각각 변화하는 순간적인 시간 속 공간(현상)을 포착하려 했다. 이들은 매 순간마다 일어나는 시각적 차이들을 회화에 담아냈다. 15세기의 르네상스가 기하학적 원근법을 통해 인간 중심의 관점에서 현상을 담아냈다면 19세기에는 시간의 변화에 따른 공간의 차이를 이해하고 이에 유리한 회화 스타일을 개척해나갔다. 즉, 인상파 화가들의 입장에서 수학적 시점만을 따르는 과거 표상체계에 얽매여있다 보면 시시각각 변화하는 차이에 대한 표현의 기회가 사라지게 됨을 인지하고 있었고 그것을 깨부순 것이 인상주의(impressionism)였다. 당시 주류 화가들이 거칠게 표현된 (당시 표상체계에서는) 괴상한 작품에 대해 냉소적으로 무시하면서 그들을 낮춰 부른 용어가 바로 '인상파(impressionist)'였다.


19세기 인상파 화가들의 맥락과 마찬가지로, 20세기의 프랑스 철학자 질 들뢰즈는 차이를 "차이 자체"로 인정하고자 했다. 그는 수많은 특성들은 어떤 식으로든 발현될 수 있으며 따라서 그것은 무궁무진한 차이의 잠재성을 지닌 다양체로 보았다. 따라서 그는 표상 속의 섬세한 차이들을 뜯어보고자 했으며, 표상체계에 의해 인간의 사고가 영향을 받는다는 기존 서양철학의 표상주의(representationalism)를 비판했다. 표상체계에 인간의 사고를 가두어 자유로운 생각을 막고 기존 질서에 따라 작동하도록 효과적으로 훈련시키는 '사유에 행사하는 권력'으로 보았고 그는 그것을 깨부수려 노력했다. 이것은 플라톤 중심의 오랜 서양 철학사를 뒤흔드는 시도였다. 아마도 이것은 이후 미셸 푸코 등 포스트모더니즘적인 구조주의 철학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동일성의 원리로 차이를 묵살한 채 대상을 포착하던 근대적 관념은 도시공간의 모더니즘을 탄생 및 확산시켰고, 산업화 및 도시화 과정에서 또한 전후 복구 과정에서 도시공간의 대규모 파괴와 개발을 동시에 달성해 나갔다. 반면에 사회를 지배하는 이러한 모더니즘적 강력한 표상체계 속에서 들뢰즈는 실제로 존재하는 대상의 그 차이들(이것은 종류와 구분된다)이 반복해서 펼쳐지는 것을 실존하는 현상으로 보았다.


과학적 증명은 귀납적 추론과정에서 여러 번의 반복적 실험을 통해 동일한 결과를 도출해낸다. 즉, 과학적 실험은 결과의 증명을 위해 대상 안에 존재하는 수많은 미세한 특성적 차이들을 통제 가능한 범위에서 제외시켜 버린다. 그리고 이 반복을 통해 얻는 동일성을 자연을 바라보는 일종의 표상이자 과학적 발견으로 해석한다. 사회과학 분야의 정량적 연구에서도 사회의 복잡한 현상 속에서 이러한 (통계/수학적으로 신뢰받는) 동일성의 연구결과를 얻기 위해 동일한 특성 속에서 존재하는 수많은 차이들을 묵살해야 했었다. 나는 이 점에서 20세기 도시설계 연구의 기념비적인 성과였던 케빈 린치의 멘탈 맵을 활용한 도시 이미지 연구 또한 과학적 동일성을 증명하기 위해 그 속(도시이미지 5대 요소)에 존재하는 무수한 사회-공간적 의미의 차이들(socio-spatial meanings)을 무시했다고 생각한다.


들뢰즈가 말하고자 한 것은 동일성으로 표상되는 반복이 아닌 "차이가 반복하여 나타내는 그 반복(차이 그 자체의 반복)"이었다. 이러한 '차이의 반복'을 발견하고 이해하는 것은 제인 제이콥스 이래로 포스트 모더니즘적인 현대 도시연구에서 주목받고 있는 주제다. 도시공간에서 개개인이 느끼는 다양한 경험과 이미지, 다양한 인종들이 어울려 살아가면서 변화하는 도시의 문화적 표상들(cultural representations of urban space), 그로 인해 변해가는 일상 속 가치 등이 피에르 부르디외, 장 보드리야르, 앙리 르페브르, 어빙 고프만, 앙리 르페브르, 롭 쉴즈 등에 의해 활발하게 연구되었다. 즉, 들뢰즈가 말했던 시공간 속에 존재하는 다양하고 섬세한 차이의 반복을 현대 사회학자, 지리학자 및 도시학자들은 정성적 연구를 통해 이해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현대 도시연구의 방향은 정량적 연구를 통해 시대적 동일성의 표상이 이해됨과 동시에 정성적 연구를 통해 그 거대한 표상 속에 존재하는 미세한 차이의 반복들을 발견해나가는 작업이 동시에 이루어져야 한다. 도시공간에서 역동적 관계를 맺는 다양한 객체 및 주체의 특성들이 나타내는 차이의 반복은 도시의 문화, 사회, 정치, 경제적 표상을 형성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들이 도시공간을 생산 및 작동시키는 시스템의 역할을 수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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