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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언정 Jan 24. 2022

꽃길이 아니어도 괜찮아

진흙탕 길, 자갈길에도 꽃이 피고, 바람이 불고, 열매가 열린다


민준이가 처음 장애 진단을 받았을 때는 4살 반이었다. 두 군데 기관을 찾아갔었는데 검사 결과를 들려주며 보이는 반응이 비슷했다. 장애가 맞다고 말하고 나서는 금방 치료 이야기로 넘어갔다.


언어치료, 인지치료 등을 권하며 평생 이런 치료를 받으며 살아야 한다고 말했다. "치료를 받으면 나아지나요?"라는 나의 물음에는 "글쎄요"라는 대답이 돌아왔었다.


이후에 여러 치료기관을 다녔고, 각종 부모 상담을 받았다. 그중에는 아주 크게 도움을 주신 분들도 있었지만 대부분의 경우에는 장애아이를 직접 키우지 않은 분들이라서 한계가 많았다.


민준이와 행복하게 살아가는 방법, 내가 지치지 않을 수 있는 방법, 비장애 형제인 준하를 밝게 키우는 법 등을 알고 싶었지만 선생님들과의 상담을 통해 다 알기는 어려웠다.


한편, 나는 민준이가 7살이 됐을 무렵부터 '이 아이가 20살이 되면 어떤 모습일까?' 참 많이 궁금했었다. 치료실에는 또래 아이들만 가득 차 있었고, 가끔 큰 형아들을 마주친다 해도 모르는 사람에게 무작정 말을 걸기는 힘들었다.


2020년, 민준이는 드디어 내가 참 궁금해하던 그 나이(만 20세)가 되었다. 주민등록증은 벌써 나왔고, 투표권도 부여받았으며 어디를 가든 이제는 성인으로 인정받는 나이가 되었다.


그때 그 시절 나는 스무 살 형아의 엄마로부터 어떤 이야기가 듣고 싶었는지 문득 돌아본다. 또한 지금 나는 민준이가 장애진단을 받던 그 나이부터 유치, 초등, 사춘기의 장애 아이를 키우는 후배 엄마들에게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을까도 생각해본다.




코로나로 학교도 복지관도 문을 닫았던 때, 온종일 집에서 지내게 된 민준이와 보내는 하루하루는 너무 길었다. 또한 운동을 못하니 아이는 자꾸 배가 나왔다. 보다 못해 나는 함께 등산을 시작했었다.


처음에는 우리 집 뒷산으로 시작했는데 차츰 익숙해지고 나서는 조금 더 힘든 오르막길이 있는 앞산으로 등산 코스를 바꾸었다. 앞산의 오르막길 끝무렵은 경사가 아주 높았다. 어림잡아 60도 이상은 되는 것 같았다.


한동안은 매어져 있는 줄에 의지하지 않고는 도저히 오를 수가 없었다. 그런데 4개월쯤 지난 어느 날, 마침내 민준이도 나도 이 줄을 잡지 않고도 넘어지지 않고 균형을 잘 잡으며 오를 수 있었다. 처음 이 오르막길을 만났을 때는 미처 예상하지 못했던 놀라운 변화였다.


장애아이를 키우며 걸어왔던 나의 삶의 여정도 마찬가지였다. 아이가 어릴 때는 도무지 갈 수 없을 거 같았던 그 길이 어느새 익숙해지고, 처음보다 힘들지 않게 되는 때가 온다고 나는 후배들에게 감히 이야기하고 싶다.


물론 무작정 시간이 가기를, 아이가 얼른 자라기를 기다리기만 하면 안 된다. 학교 선생님이, 치료사가, 보건복지부가 해야 할 역할이 있지만 동시에 부모인 내가 해야 할 몫도 반드시 있다. 민준이와 내가 오르막길 앞에서 구경만 하지 않고 내 발로 올랐던 것처럼 각자의 역할을 하는 것은 꼭 필요하다.        


요즘에는 '꽃길만 걷자'는 말이 유행이다. 하지만 장애아이를 키우는 부모로서의 삶은 아무도 가고 싶지 않은 진흙탕 길이고, 자갈길이다. 그러나 누구도 대신 걸어줄 수 없는 그 길을 피하지 않고, 돌아가지 않고 어떻게 하면 이 길을 잘 갈 수 있을지 고민하고 애쓰며 묵묵히 걷다 보면 진흙탕 길을, 자갈길을 잘 걷는 법을 알게 된다.


그리고 놀랍게도 그 길에도 꽃이 피고, 시원한 바람이 불고, 맛있는 열매가 달린 나무가 있다는 걸 알게 된다. 동시에 겉보기에는 아주 멋진 꽃길에도 보이지 않는 장미가시와 벌레들이 숨어있기도 한다는 사실도 차츰 알아차리게 된다.




돌아보면 스무 살 형아의 엄마에게서 내가 듣고 싶었던 말은 '소망'이 아니었을까 싶다. 아이가 장애여도 괜찮다고, 그래도 우리는 행복했다고, 앞으로도 행복할 거라고, 때때로 힘들고 답답할 때가 있지만 그래도 힘내서 계속 앞으로 나아갈 거라는 이야기들.....


다양한 장애유형의 아이들을 키우며 갖가지 어려움에 처해 있지만 그래도 감사하다고 말하는 후배 부모들의 일상을 다양한 인터넷 공간(브런치, 인스타그램, 블로그, 페이스북 등)에서 엿볼 수 있었다.


그들 모두를 위로하며 격려하고 싶다. 힘내라고, 지금 너무 잘하고 있다고, 엄마, 아빠의 애씀 뒤에 아이도 부모도 차츰 성장할 거라고 외쳐주고 싶다.


그리고 내 글들이 내가 듣고 싶었던 그 이야기들을 후배들에게 들려주는 통로가 되면 좋겠다. 나와 내 가족의 일상이 그들에게 '소망'을 줄 수 있기를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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