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ive and Take 에서 벗어나기
주말만 되면 해야하는 숙제가 있다. 오늘 뭐하지, 내일은? 또 다음주는? 숙제 해결을 위한 고민들로 머릿속은 전쟁터다. 사실 금요일부터 아니 평일 내내 생각한다해도 과언이 아니겠다. 안정을 느낄 수 있는 집에서 익숙한 장난감으로 노는 것도 아이 입장에선 충분히 즐거울 일이다. 하지만 밖에서 뒹굴며 땀 흘리는 신체활동으로 오감을 경험해주고픈 욕구에 혼자서 매일 씨름하게 된다. 하루가 멀다하고 고민하니 급기야 주택을 지어볼까, 바다 앞이나 시골로 이사 갈까와 같은 의식'주'의 변화를 꾀하여 본다. 일요일 밤엔 그나마 좀 맘이 편할 듯 싶다가 또 다음 주말은 뭐하지? 나도 모르게 늪에 빠져 고민은 다시 도돌이표다.
할아버지댁을 들렀다 집으로 돌아가던 어느 날, 비 온 뒤 맑게 개인 하늘에 사로잡혀 더 머물다 가기로 결정한다. 이렇게 계획에 없던 시간도 알차게 보낼 수 있게 해주는 것, 갈색표지판이다. 아무리 초행길이라 할지라도 도로 위 이것만 따라다니면 유턴은 없다. 근거리의 관광지나 유적지를 표시해주기 때문에 거리에서 헤매거나 검색에 드는 시간을 최소화해준다. 달리는 차 창가에 딱 붙어 스캔해본다. 찾았다!
갈색표지판이 알려주는 나들이
대관령 아기동물농장
우리가 위치해있는 곳에서 단 2km, 가까워서 좋았고 아이와 함께하기에도 최적이였다. 이정표로 확인한 곳을 지도로 다시 확인해보니 비슷한 이름만 여러군데 뜬다. 유사품에 주의하라는 강력한 문장에 다른 곳의 예쁜 후기들을 봤음에도 원래 계획대로 움직였다.
입장과 동시에 동물에게 줄 먹이를 인원수대로 한아름 안겨주신다. 먹이는 먹이고, 난 이 곳을 오면서 그려본 모습이 있었다. 책에서만 보던 동물들에 발 동동 구르며 신나할 모습, 질문 폭격기가 될 아이에게 어떻게 대답해줘야하나 미리부터 고민한 나의 모습까지. 두근두근대는 마음을 눌러가며 내가 더 신나 물어본다.
“알파카도 있고 거북이도 있고, 우와! 이 친구는 모지??” 나의 물음에 돌아온 대답, “얘는 무슨 밥 줘야되?”
들어섰을때부터 이미 서로 다른 동물을 향해 걸었고, 관심도 달랐다. 아이는 온통 먹이 줄 생각뿐이었다.
이전 체험 학습때도 느낀바가 커 기록했던 걸 그새 잊고서는 또 같은 사고의 만행(?)을 저질러버렸다. 다이나믹한 행동으로 요동치는 내 곁에서도 아이는 그저 묵묵히 먹이를 주고 또 줬다. 그렇게 입장부터 퇴장까지 서로의 관심사 존중하며 각자의 즐거움을 찾아 갔다.
그렇게 이번에도 보란듯이 빗나간 기대. 장난감 하나를 사주면서도, 하물며 간식 하나 주면서도 아이의 다음 행동에 대해 미리 규정하고 나아가 기대라는 것까지 한다. 이러한 의식의 흐름이 꼭 아이에게만 한정되는건 아니다. 오히려 어른의 대인관계에서 더 흔하다. 마치 'Give and Take'와 같은 관계랄까.
혹, 어떠한 목표의 결과값이 정해져 있는 교육의 틀에서는 부모의 기대가 있을 수도 있겠다. 당연하다. 여기서 기대하는 생각과 행동 자체를 옳다 그르다로 단정짓는 것이 절대 아니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 라는 말이 괜히 나온게 아닐 것이다. 기대하고 있는 바에 부응하지 못하면 실망감은 자신에게, 동료에게, 물건에까지도..상대가 누구냐를 가리지 않고 밀려온다. 온전히 떠안게되는 실망 그 언저리의 감정이 스스로를 힘들게하고 다치게 한다면, 얻는건 제로(0)가 아닌 마이너스(-) 이다. 나를 갈아넣은 희생을 내 손으로 한 꼴이다.
Give and Take
가 아닌
Give and Give
받기만 하는 미성숙한 아이는 Take and Take, 서로서로 주고 받는 과정 속 배려가 기반이 되는 성숙한 어른은 Give and Take. 그들의 관계를 글자만 봐도 서로 원하는 바가 다르기에 부딪힐 수 밖에 없다. 그렇다면 Take and Take 와 잘 지낼 수 있는건 누굴까? 그렇다. Give and Give!
아이는 받을 준비를 마쳤다. 그게 무엇이 되었든. 우리는 그저 주기만 하면 된다. 단, 내 에너지가 깎이는 희생이 아니라는 것에 주목해야한다. 알려주고, 가르쳐주고, 먹여주고, 입혀주고, 데려가주고, 읽어주고..지금 이미 많은 것을 '주고' 있다. 더 주려고 짜내다 보니 희생이 되는 것이다.
'기대되', '힘들게 찾은 엄마 마음 알아줄까?' 또는 '기대하지 말자', '실망하지 말자'와 같은 생각에 빠지지 않고 '아이에게 해준 것'에 집중해보자. 떠올리다보면 끝이 없고, 그래서 끝도 없이 뿌듯해질 것이다. 지금 글을 쓰며, 동물농장을 찾아서 데려갈 수 있었던 '나'를 칭찬해보니 표지판을 본 순간부터 쭉 행복해하는 나의 모습만 보인다. 초점만 조금 바꿨을 뿐인데 걱정 없이 웃을 수 있다니 마법같은 일이다. 정말.
아이의 생각을 들여다보고 나의 행동을 되짚어보다보니 어른들 관계에서도 다를바가 없다는 것을 느낀다. 사회에 만연한 공식이자 고정관념인 Give and Take. 이 근본적인 명제만 뒤집어도 타인과의 상호작용에 큰 변화를 가져올 수 있을 것이다. 아이를 대할 때와 같은 논리로 말이다. 다른건 존대를 해야한다는 것 정도?!
받은 만큼만 주는 사람, 주는 건 생각 않고 더 많은 이익을 챙기려는 사람보다 자신의 이익이 아닌 다른 사람을 먼저 생각하는 사람이 더 성공할 가능성이 높다고 공공연히 말한다. Giver를 자처해보자. 지금과는 또 다른 시간을 맞이할 것이다. 그때 꼭 나의 감정도 한번 들여다보자. 아이를 대하는데에 분명 도움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