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려고 맘먹으면 꼭 없는 복불복 인생
나가야겠다. 그렇게 마음먹은 데엔 아무 약속도, 이유도 없다. 그저 나가야만 했다.
들썩이는 엉덩이를 다독여 얼른 끼니를 때우고 집을 나선다. 한때 강가를 걷던 그 기분과 다시 마주한다. 오랜만이라 그런지 눈에 비치는 모든 것 거기다 나 조차도 새 것 같다. 그렇게 느낀데엔 비 온 뒤 맑게 개인 그날의 날씨가 단단히 한 몫했다.
날씨와 기분에 취해 유유자적 거닐다 눈이 머문 곳은 카카오 바이크. 아무 생각 없이 지나치던 어제와는 다르게 생리적 욕구가 샘솟는다. 타야겠다.
매뉴얼을 익힌 후 충전이 되어 있는 자전거를 찾기 위해 지도를 켠다. 네이버 대신 카카오 바이크 지도다. 더 많이 있을 법한 자전거 길이 있는 강가로 내려갔다. 드디어 목표물을 찾아 강을 건넜지만, 한 발 늦었다. 그 뒤로도 노란 자전거는 한참을 눈에 띄지 않았다.
이상하게 꼭 뭔가 하려고 하면 없다. 나만 그런가. 괜히 억울해지는 순간.
그나마 보이는 자전거들도 하나같이 강 건너에서 기다리고 있다. 때마다 마법처럼 징검다리 놓아줄 리 없으니 이마저도 내 것이 아니다. 버스를 찾기에도 지쳤고, 고속도로를 끼고 있는 지상은 더 이상 금기의 길이다. 오도 가도 할 수 없는 위치에 다다르자 결국 오기로 걷고 또 걷는다. 그러다 발견한 노란 자전거 한대, 왠지 마지막일 듯한 예감에 곧장 직진했다. 자전거 길을 가로질러갔지만 아.. 이미 누군가가 맡아두고 있었다. 하.. 갈 길 잃어 머뭇거리던 찰나, 누가 소리를 꽥!!! 지른다.
"야!!! 아이 C!!!!!!!!!!"
주위를 둘러봐도 나뿐이다. 그런데 왜 나한테?
사이클을 타고 오던 이름 모를 아저씨는 비켜달라는 말 대신 그렇게 소리를 지른 것이다.
더 당황스러운 건 그 길은 보행자 겸용 자전거 도로였다. '과속 금지'라는 큼지막한 팻말과 함께.
놀라고 당황했던 마음은 울분이 되어 마구 토해냈다. 눈물로 뒤범벅이 된 마스크 안은 이내 축축해졌다. 그 예쁘던 하늘에서 뿌린 소나기를 얼굴에만 맞은 것처럼.
이런 기분을 달리 표현할 길이 없어 혼자 주절대며 울었고, 두 다리는 미친 듯이 걸으며 화를 토해냈다. 걸으면서 '다시 자전거를 타고 집으로 돌아갈 테니 여길 지나지 않을까, 내가 계속 걷다 보면 만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불현듯 떠오른다. 아저씨를 만나면 꼭 해야할 말을 되뇌며 계속 걸었다. 다리는 터질 것 같았고, 눈은 어느새 퉁퉁 부어 있었다.
결국 아저씨는 만나지 못했고 방전된 두 다리가 도착한 곳은 남편의 회사 앞, 남편을 호출하고 말도 안 되는 썰을 풀며 다시 또 엉엉 울었다. 같이 막 눈을 굴려가며 바보 똥개 말미잘 외쳐준다. 그리고 마지막 호기롭게 던진 한마디.
"이래서 내가 살을 못 빼"
꽤 일리 있어서 반박도 못한 채 멍하니 쳐다만 봤다. 남편의 얼굴은 꽤나 진지하다. 아마도 살을 빼지 못하고 있는 본인에 대한 일종의 위안이겠지 싶어 귀여우면서도 날 지켜 줄 사람이 있다는 게 참 고맙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카페를 나서는 문 앞에 보란 듯이 노란 자전거가 서 있다. 어디 있다 이제 왔냐는 나무랄 힘도 없이 중얼거렸다.
미안, 난 이미 너무 지쳤어. 너와 함께할 힘이 없다.
무너진 몸과 마음을 버스에 태웠다. 힘겹게 집에 들여놓은 내 몸은 그대로 로그아웃. 초저녁부터 마치 한밤중 인양 뻗고 나서야 한결 나아졌다.
흐르는 시간에 담긴 기분을 그저 온전히 즐겼던 날, 그 끝이 너무 어두워 '운수 좋은 날'이구나 했다. 그래도 들여다보면 '좋은 날'로 기억하게 해주는 장면이 하나는 있지 않을까. 마스크를 껴서 엉엉 울어도 부끄럽지 않았고, 걸어가면 만날 수 있는 남편이 있고, 색다른 발상의 위로를 건네는 가족이 있고, 집에 돌아오는 버스도 있고.. 뭐 다행인 거 투성이기도 하다. 이렇게 생각하고 나니 어느새 피식 웃음도 새어 나오고, 세상이 무너진 듯 울었던 내 모습도 그저 어린애 같기만 하다.
- 평범한 하루 언저리, 운수 좋은 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