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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이랜드 May 26. 2021

운수 좋은 날

하려고 맘먹으면 꼭 없는 복불복 인생


나가야겠다. 그렇게 마음먹은 데엔 아무 약속도, 이유도 없다. 그저 나가야만 했다.

들썩이는 엉덩이를 다독여 얼른 끼니를 때우고 집을 나선다. 한때 강가를 걷던  기분과 다시 마주한다. 오랜만이라 그런지 눈에 비치는 모든  거기다  조차도   같다. 그렇게 느낀데엔    맑게 개인 그날의 날씨가 단단히  몫했다.


날씨와 기분에 취해 유유자적 거닐다 눈이 머문 곳은 카카오 바이크. 아무 생각 없이 지나치던 어제와는 다르게 생리적 욕구가 샘솟는다. 타야겠다.

매뉴얼을 익힌 후 충전이 되어 있는 자전거를 찾기 위해 지도를 켠다. 네이버 대신 카카오 바이크 지도다. 더 많이 있을 법한 자전거 길이 있는 강가로 내려갔다. 드디어 목표물을 찾아 강을 건넜지만, 한 발 늦었다. 그 뒤로도 노란 자전거는 한참을 눈에 띄지 않았다.


이상하게 꼭 뭔가 하려고 하면 없다. 나만 그런가. 괜히 억울해지는 순간.


그나마 보이는 자전거들도 하나같이 강 건너에서 기다리고 있다. 때마다 마법처럼 징검다리 놓아줄 리 없으니 이마저도 내 것이 아니다.  버스를 찾기에도 지쳤고, 고속도로를 끼고 있는 지상은 더 이상 금기의 길이다. 오도 가도 할 수 없는 위치에 다다르자 결국 오기로 걷고 또 걷는다. 그러다 발견한 노란 자전거 한대, 왠지 마지막일 듯한 예감에 곧장 직진했다. 자전거 길을 가로질러갔지만 아.. 이미 누군가가 맡아두고 있었다. 하.. 갈 길 잃어 머뭇거리던 찰나, 누가 소리를 꽥!!! 지른다.

 

"야!!! 아이 C!!!!!!!!!!"


주위를 둘러봐도 나뿐이다. 그런데 왜 나한테?

사이클을 타고 오던 이름 모를 아저씨는 비켜달라는 말 대신 그렇게 소리를 지른 것이다.

더 당황스러운 건 그 길은 보행자 겸용 자전거 도로였다. '과속 금지'라는 큼지막한 팻말과 함께.

놀라고 당황했던 마음은 울분이 되어 마구 토해냈다. 눈물로 뒤범벅이 된 마스크 안은 이내 축축해졌다. 그 예쁘던 하늘에서 뿌린 소나기를 얼굴에만 맞은 것처럼.


이런 기분을 달리 표현할 길이 없어 혼자 주절대며 울었고, 두 다리는 미친 듯이 걸으며 화를 토해냈다. 걸으면서 '다시 자전거를 타고 집으로 돌아갈 테니 여길 지나지 않을까, 내가 계속 걷다 보면 만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불현듯 떠오른다. 아저씨를 만나면 꼭 해야할 말을 되뇌며 계속 걸었다. 다리는 터질 것 같았고, 눈은 어느새 퉁퉁 부어 있었다.


결국 아저씨는 만나지 못했고 방전된 두 다리가 도착한 곳은 남편의 회사 앞, 남편을 호출하고 말도 안 되는 썰을 풀며 다시 또 엉엉 울었다. 같이 막 눈을 굴려가며 바보 똥개 말미잘 외쳐준다. 그리고 마지막 호기롭게 던진 한마디.


"이래서 내가 살을 못 빼"


꽤 일리 있어서 반박도 못한 채 멍하니 쳐다만 봤다. 남편의 얼굴은 꽤나 진지하다. 아마도 살을 빼지 못하고 있는 본인에 대한 일종의 위안이겠지 싶어 귀여우면서도 날 지켜 줄 사람이 있다는 게 참 고맙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카페를 나서는 문 앞에 보란 듯이 노란 자전거가 서 있다. 어디 있다 이제 왔냐는 나무랄 힘도 없이 중얼거렸다.

미안, 난 이미 너무 지쳤어. 너와 함께할 힘이 없다.


무너진 몸과 마음을 버스에 태웠다. 힘겹게 집에 들여놓은 내 몸은 그대로 로그아웃. 초저녁부터 마치 한밤중 인양 뻗고 나서야 한결 나아졌다.


흐르는 시간에 담긴 기분을 그저 온전히 즐겼던 날, 그 끝이 너무 어두워 '운수 좋은 날'이구나 했다. 그래도 들여다보면 '좋은 날'로 기억하게 해주는 장면이 하나는 있지 않을까. 마스크를 껴서 엉엉 울어도 부끄럽지 않았고, 걸어가면 만날 수 있는 남편이 있고, 색다른 발상의 위로를 건네는 가족이 있고, 집에 돌아오는 버스도 있고.. 뭐 다행인 거 투성이기도 하다. 이렇게 생각하고 나니 어느새 피식 웃음도 새어 나오고, 세상이 무너진 듯 울었던 내 모습도 그저 어린애 같기만 하다.



- 평범한 하루 언저리, 운수 좋은 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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