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의 기로는 그것이 기로인 줄도 모르게 찾아오고 대체로 선이나 악으로 구분할 수 없는 모양을 하고 있었어. 세상에는 가해와 피해, 보복과 증오, 혐오와 폭력이 줄지어 배열되어 있을 뿐, 그 때문에 인간은 선에서 악으로 악에서 선으로 변해갈 뿐, 선과 악이 동시에 혼재되어 있을 뿐, 완전한 악도 온전한 선도 존재하지 않았어.
<당신이 있던 풍경의 신과 잠들지 않는 거인, 45p>
우다영 소설가의 두 번째 소설집 <앨리스 앨리스 하고 부르면>. 처음 읽어보는 우다영 작가의 작품이다. 그저 표지의 아름다움과 제목의 서정성(혹은 기묘함), 그리고 작품 소개에 이끌려 구매했고 이런 데에서 내 감은 대부분 들어맞는 편이다. 좋은 독서 경험이었다.
이 소설집에 담겨 있는 이야기들은 한유주 소설가의 추천사나 조대한 문학평론가의 해설처럼, '미로', '꿈'과 같이 몽환적인 분위기로 가득 채워져 있다. 「당신이 있던 풍경의 신과 잠들지 않는 거인」에서는 소설집 전체를 은유하는 창세 신화(해당 책 280p, 조대한 『아름다운 이야기의 미로』의 말에 따르면 그렇다)가 나오기도 하고, 「앨리스 앨리스 하고 부르면」에서는 화자와 다른 등장인물들이 우연으로 기묘하게 겹치는 일이 연속으로 묘사된다. 「해변 미로」에서는 쌍둥이의 삶과 죽음이 교차되며 여러 가능성의 이야기들이 맞물리면서 오묘한 서사적 카타르시스가 발생하기도 하고, 「메조와 근사」에서는 잊기 힘든 풍경의 묘사가 나오기도 한다. 현실에서 한 번에 일어나기 힘든, 꿈결 같은 사건들이 벌어진다.
이 소설집에 담긴 단편들을 읽다보면 여러 차례 꾸는 꿈처럼, 비슷한 풍경이 반복되는 걸 느낀다. 독자들은 그 속을 천천히 거닐게 된다. 작가의 아름답고 몽환적인, 속을 담담하게 드러내고 주변을 자세하게 묘사하는 내밀한 문장을 통해.
삶의 중요한 순간들이 순전히 우연에 의해 일어난다는 것을, 그리고 그러한 우연들은 아주 스쳐 지나가듯이 짧은 순간에 일어나는 것을 작가는 말하고 싶어 하는 것 같다. 그리고 그 풍경을 아름답고 기이하게 묘사하는 것을 역할이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작가의 말에 '어떤 하루는 영원과 같다'라는 대목이 있다. 결국 이 소설집이 하고 싶은 이야기는 그런 것이다. 영원과도 같은 하루. 잊을 수 없는 꿈. 우연에 의해 발생하는 사건들과 그로 인해 정해지는, 혹은 본인이 스스로 선택하는, 한 인생.
「창모」를 읽을 때 악인으로 그려지는 '창모'의 폭력적인 행동들을 읽는 게 조금 거북하긴 했지만, 소설에서 필요한 부분이었다고 생각한다. 그 외에 이전에 노르웨이의 숲에서 지적했던 것과 같이 비판할 만한 요소는 없다고 생각한다. 다만 소설집을 읽으면서 짧은 소설들이 분위기는 맞으나 서사의 전체적인 흐름을 저해하는 느낌은 있었다. 그러나 이건 본 소설집이 연작소설이 아닌 그냥 소설집으로 나왔다는 것을 간과하면, 그리 큰 문제는 아니다.
몽환적인 환상 문학('장르 판타지'를 말하는 것과는 약간 다르다)을 읽고 싶은 사람에게, 삶이 우연의 연속임을 깨닫고 싶은 사람에게, 여름의 바다를 보면 어떤 기억이 나는 사람들에게, 그리고 모호하게 아름다운 세계를 걷는 사람을 좋아하는 사람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이토록 기묘한 세계를 혼자 거닐긴 아깝다.
추신 1.「밤의 잠영」은 전 소설집의 연장선이라고 하는데, 어서 『밤의 징조와 연인들』이 동네서점에 입고되어 내 손에 들어왔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