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아(ARK)
나는 소설의 주인공으로 세 명의 소년을 생각했다. 그중에서 두 번째 주인공이 드디어 등장했다. 황금빛 피부색을 가진 소년. 이름은 노아라고 지었다. 영화 '노트북'의 남자 주인공이 가진 깊은 눈이 떠올랐다. 슬픔도 담고, 사랑도 담고, 기쁨도 담고, 절망도 담을 수 있는 눈과 같은 인물을 만들고 싶었을까? 케니는 확실히 소설의 시작점이라 말할 수 있다. 확실한 인물과 문화를 배경으로 만들었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쌓아온 사건이 있다. 그래서 나는 겪어보지 못한 이야기, 사람들의 이야기를 토대로 케니의 입을 빌릴 수 있었다. 그러나 두 번째 주인공에게는 아무것도 정해진 게 없다. 만들어진 사건도, 문화도, 인물도, 아무것도 없다. 나는 무엇을 전하고 싶었을까? 아시아인을 이야기 속에 넣고 싶었다. 그리고 황금빛 피부색을 자랑스럽게 여기길 바랐다. 나와 같은 아시아 커뮤니티가 하나로 뭉치길 바랐다. 더 이상 남들을 부러워하지 않고, 서로를 미워하지 않고, 약자로 분류되지 않길 바랐다. 나는 아시아 커뮤니티를 하나로 품을 수 있는 캐릭터를 만들고 싶었다. 모든 것을 품을 수 있는 눈을 가진 주인공의 이름은 노아다. 모든 생명체를 품었던 방주의 주인이 누구인가? 노아. 그래서 나의 두 번째 주인공의 이름은 노아가 되었다.
어떤 이야기를 해야 할까? 노아는 누가 되어야 할까? 케니에겐 켄드릭 라마라는 인물이 있었다. 노아라는 인물을 녹여낼 인물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만큼 아시아 커뮤니티 전체를 향해 싸워왔던 사람이 없었던 걸까? 우리는 항상 서로를 미워했다. 과거에 얽매인 부분을 잊을 수 없다. 심하게 엉켜버린 끈을 잘라버릴 수도 없다. 모든 걸 없었던 일로 돌릴 수도 없다. 우리가 품어온 증오와 무시, 비난의 시간을 돌릴 수 없다. 아마 우린 하나가 될 수 없을 거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가 되기보다 남들의 영역에 녹아들길 바랐다. 가장 큰 피부색의 피해자이면서 인정하려 하지 않았다. 있지도 않은 잘못을 찾아 헤맸다. 가면 쓴 삶을 자신의 삶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혼자서 모든 걸 해결하려 했다. 같은 피부색의 가진 사람의 도움을 피하면서, 다른 피부색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아파했다. 모두가 위선자다. 아무도 황금빛 피부를 자랑스럽게 여기지 않는다. 커뮤니티를 지키기 위한 몇 명의 말은 커뮤니티에 의해 묵살된다. 이게 우리의 현실이다. 우리의 문화가 가진 문제점이다. 노아는 아무도 담지 않는다. 노아는 나를 만들어 나간다. 나는 아시아 커뮤니티가 하나가 되길 바란다. 아무리 서로가 미워도 곤경에 처한 사람을 구해주길 바란다. 내가 가진 황금빛 피부색을 떳떳하게 드러내고 싶다. 노아는 나의 바람을 담는다. 그에게 모든 걸 담을 수 있는 눈은 없지만, 우리가 가진 문제와 아픔 그리고 나를 담아낼 수 있게 만들 수 있다. 그는 아름다운 황금빛 피부를 가지고 있다.
나는 블랙 커뮤니티가 부러웠다. 서로 다른 나라와 환경에서 자랐어도 그들은 하나의 뿌리를 공유한다. 같은 피부색 하나만으로 서로를 지켜준다. 한 명을 위해 전체가 싸울 수 있다. 한 명의 목소리를 위해 커뮤니티 전체가 힘이 되어 준다. 오로지 같은 피부색으로 이루어진 사람들이 만들어낸 문화를 공유하고 있을 뿐인데, 서로를 모르더라도 그들은 친구가 되고, 가족이 된다.
그럼 우리는 어떤가? 무수히 많은 과거의 싸움을 학교에서 배운다. 어릴 때부터 경제적인 수준으로 층을 나누어 왔다. 우리는 항상 누군가를 부러워했고, 다른 누군가에게 떨어지려 했다. 곤경에 처한 사람의 아픔보다, 자신에게 돌아올 화살을 먼저 생각했다. 원래 우리는 하나가 될 수 없었다. 과거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다. 미래는 어떻게 될까? 아무것도 바뀌지 않을 것이다. 노아가 나타나기 전까지.
나를 담아낼 노아는 커뮤니티의 리더가 될 것이다. 아니, 노아는 커뮤니티를 만들고 커뮤니티를 위해 살아가야 한다. 내가 가진 욕심일 수 있지만, 작은 움직임으로 무언가 시도하기엔 우린 너무 멀어져 버렸다. 위선자는 이미 현실을 만족하고 누구보다 잘 살고 있다. 그런데 누가 이름 모를 사람을 위해 자신이 가진 것을 포기하겠는가? 심지어 그들은 이미 알고 있던 사람도 저버리지 않았던가? 노아는 모두를 품어야 한다. 이미 우리 커뮤니티를 저버린 사람도 담아내야 한다. 우린 그들이 필요하다. 미래를 생각하기 위해 지금의 사람들이 아파해야 한다. 누구도 아시아 커뮤니티를 무시하지 못하게 만들 거다. 나는 노아를 통해 이루고 싶은 일을 해낼 거다. 아주 작은 일부터 아무도 믿지 않은 일까지 노아와 함께할 거다. 그래서 나는 노아를 만들어 냈다. 나를 담아내는 사람이 필요했다. 다른 누구도 생각하지 않고 오로지 나만을 생각하는 사람. 마음속에 품고 있던 피부색 문제를 세상에 드러내줄 사람. 우리가 가진 인종 문제도 이제는 세상에 나올 때가 되었다. 흑과 백이 인종의 전부가 되던 시대를 바꾸기 위해 노아가 세상에 나왔다.
아시아인도 힙합을 사랑할 수 있다. 그렇다고 흑인으로 불리길 원하는 건 아니다. 황금빛 피부는 영원히 나와 함께 할 것이다. 하지만 힙합이 가진 문화를 사랑하는 만큼 내 방식대로 이 세상에 베풀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있다. 나의 아름다운 고향을 밝게 빛나게 하고, 나의 가족과 친구들에게도 빛을 선물해 줄 거다. 나와 같은 사람들이 외면받지 않도록 힘이 되어주고, 힙합이라는 문화를 전 세계에 전파하는 일을 할 거다. 내가 원하는 일이 있어도 하지 못하는 현실을 살고 있지만, 노아는 하고 싶은 일만 하도록 만들 거다. 그는 내 욕심도 담고 있다. 나는 아직도 노아에 대해 확실히 정의하지 않았다. 노아의 방주에 하나씩 생명체를 담는 이야기처럼 나도 노아라는 인물에게 하나씩 만들어서 담고 있다. 가장 첫 번째로 노아에게 담긴 한마디.
'힙합은 사랑이다.'
몇 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나는 이중인격의 삶을 벗어나지 못했다. 아직 나는 모두에게 나의 노트를 펼치는 게 두려웠다. 남들의 비웃음 소리를 듣는 게 부끄러웠고 나의 내면을 드러내기에 남들을 믿을 수 없었다. 그리고 이런 부분은 내 머릿속에서 소용돌이치며 마약 없이는 살 수 없게 만들었다. 하루하루가 지날수록 약기운은 내 몸속에서 빠져나오지 않았다. 거리에서 나는 점점 거만해졌고 총에 손을 얹는 일이 잦아졌다. 이제 나는 하루하루를 살아가기 위해 다른 사람들을 내던졌다. 가난한 사람은 사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도박에 빠지고, 약을 끊지 못한다. 거리에서도 마찬가지다. 생명조차 가난한 사람은 죽음을 피하기 위해 죽음을 잊지 못한다. 낭떠러지 끝자락에서 떨어지지 않기 위해 다른 사람들을 계속 밀어 넣지만 뒤로는 가지 못한다. 그저 앞만 채워갈 뿐이다. 내가 본 수많은 죽음들도 모두 그렇다. 내 앞자리가 비는 걸 막기 위해 어린아이에게 약을 팔고 약에 취한 사람을 향해 총을 겨둔다. 매일매일 쉬는 날도 없이 죽음을 지켜본다. 유난히 햇빛이 내 두 눈을 밝게 비치는 그날도 그럴 것만 같았다. 전혀 가볍지 않은 마음으로 익숙해진 손을 따라 필요한 것들을 챙기고 집을 나와 무겁고 느릿느릿한 발걸음으로 걷는 익숙하지만 낯설게 느껴야 하는 길에서 나는 평소와 다른 새로운 느낌이 풍기는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버스 정류장 앞에서 두리번거리며 약간 겁에 질린 표정을 한 동양인 소년이 서 있었다. 평소였다면 그냥 그러려니 하고 지나갔겠지만 푸른색 LA다저스 저지를 입고 누군가의 맛있는 먹잇감처럼 보이는 동양인 소년을 잠시나마 지켜주기 위해 발걸음을 옮겼다. 소년도 내가 다가오는 것을 의식했는지 몸을 살짝 뒤로 빼고 경계의 눈초리를 날리고 있었다. 만약 그가 게토 출신이라면 손은 벌써 허리춤에 가있겠지만 그의 손은 어정쩡하게 허공에 떠 있었다. 나는 확신했다. 이곳은 저 소년에게 위험한 곳이고, 왜 왔는지는 모르지만 최대한 빨리 떠나라고 경고해줘야 했다. 단지 한 사람의 생명을 위해서 나는 소년 앞에 멈춰 서서 최대한 착한 표정과 말투로 인사를 건넸다.
“이봐, 친구 무슨 일이야?”
소년의 경계심은 극에 달한 것 같았다. 그래도 나는 계속 말을 걸었다.
“걱정하지 마. 나는 나쁜 사람이 아니니까. 그런데 네가 계속 이렇게 두리번거리면서 오줌 마려운 표정으로 서 있으면 진짜 나쁜 놈들이 올 수도 있다고. 특히 네가 입고 있는 다저스 저지는 색깔이 위험해. 친구. 그런데 넌 어디에서 왔어? 그리고 이 동네는 무슨 일이 있어서 온 거야?”
소년은 어리둥절해 보였지만 경계를 풀었는지 입을 열기 시작했다.
“나는 LA에서 왔어. 여기라면 왠지 내 꿈을 이룰 수 있을 것 같거든. 너 혹시 힙합 좋아하니?”
“하하하하, 너 지금 뭐라고 말한 거야? 흑인한테 힙합을 좋아하냐고 물어본 건 너한테 젓가락 쓸 줄 아냐라고 묻는 거랑 똑같은 거라고.”
“그래, 좋아한다는 뜻으로 알아들을게. 그런데 아직 서로 이름도 모르는구나. 나는 노아야.”
“나는 케니야.”
“케니! 좋은 이름이네. 너 혹시 아는 사람 중에 음악 하는 사람 없니?”
“음… 내가 아는 사람은 약 파는 약쟁이랑 약을 팔면서 가끔씩 랩을 흥얼거리는 약쟁이 밖에 없는데. 그런데 너 다른 옷이 없으면 빨리 다른 곳으로 가는 게 좋을 거야. 여기서 파란색은 네가 입기에는 위험한 색이거든.”
“그런데 나 다른 옷이 없는데 혹시 티셔츠 하나만 빌려줄 수 있어?”
갑자기 길 한복판에서 빌려줄 수 있는 옷이 있냐고 물어보는 만난 지 10분도 안된 이름도 입에 붙지 않은 녀석의 말에 당황했지만 나는 노아의 모습에서 내가 처음 컴튼에 발을 놓았을 때가 보였다. 그래서 일단 노아를 우리 집에 데려가서 더 깊은 대화를 나눠보기로 생각했다.
“그럼 노아, 여기서는 어떻게 할 수가 없으니까 일단 우리 집으로 가지 않을래?”
노아는 입가에 살짝 미소를 띠며 큰 고민 없이 말했다.
“그래! 고마워 케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