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쓰는 이야기

: 눈

by CP

우리는 다르다. 너도 알고 있고 나도 알고 있다. 겉모습만 봐도 알 수 있지만, 행동과 언어를 보면 더 잘 알 수 있다. 내가 밟고 있는 이 땅이 가진 의미는 이 땅에서 살아온 사람이 가장 잘 알고 있다. 아무리 이방인에게 친절하다고 해도 쉽게 받아들일 수 없다. 우린 너무나 많은 시간을 다르게 살아왔다. 케니와 노아뿐만 아니라 나도 마찬가지다.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서 평생을 살아왔다. 그런데 컴튼이란 도시를 배경으로 미국에서 나고 자란 사람을 주인공으로 내세웠다. 내가 그럴 자격이 있을까? 함부로 그들의 문화에 다가가는 게 아닐까? 나는 항상 마음속에 이 문제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어떠한 문화의 대변인도 아니다. 문화의 가장 앞자리에 서 있지 않다. 내가 가진 건 두 눈뿐이다. 거짓 이야기라는 방패를 가진 채, 두 눈이 바라본 진실된 이야기를 만들어 나간다.

항상 어려웠다. 겪어보지 않은 일을 만들어 나가는 게 쉽지 않다. 앉은자리에서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내야 한다. 내가 가진 가치에 대한 의심은 사라지지 않는다. 꿈만 같은 일을 하면서 현실의 벽에 부딪친다. 가짜를 만들어 내면서, 진짜를 원한다. 힘들어도 힘들다고 말할 수 없다. 나의 눈으로 바라본 당신들이 나를 어떻게 쳐다볼까? 힘들다고 주저앉아 포기하는 모습을 보였을 때, 당신들은 나를 어떻게 바라볼까? 내 주위의 사람들이 비웃고, 무시하고, 거짓 동정 속에서 입가에 미소를 띤 모습이 상상된다. 나는 도전이 아닌 성공을 바라고 있다. 당당히 성공해 현실을 벗어나고 싶다. 그러면서 도전이라는 탈을 뒤집어쓰고 당신들에게 버림받을까 벌벌 떨고 있었다. 나의 눈으로 바라본 당신들이 그랬다. 당신들은 나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사실 아무도 신경 쓰지 않거나, 내가 모르는 사람이 나를 신경 쓸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알 수 없다. 당신들이 나를 어떻게 바라보고 생각하는지 아무것도 알 수 없다. 우린 스스로를 바라보지 못한다. 내가 전하고 싶었던 말이 여기 있다.

'아무도 스스로를 바라보지 못한다.'

그래서 보이는 대로 적어 넣었다. 흑인 소년이 자신의 동네에 찾아온 낯선 이방인과 친구가 된다면 어떻게 행동할까? 심지어 이방인은 다른 피부색을 가지고 있다. 누군가에게는 신경 쓰지 않을 문제일 수 있지만, 나는 피부색에 대해 민감하게 받아들이는 문화 속에서 자랐다. 이미 내 두 눈을 거슬리게 하고 있다. 내 눈동자 속에는 다른 피부색을 가진 소년이 다가오는 걸 바라보며 미친 듯이 흔들린다. 제발 아무 말도 하지 마. 나한테 말 걸지 마. 못 본 척 지나가줘. 너를 위해서 하는 말이야. 온갖 생각이 떠오르고, 눈동자는 멈추지 않고 흔들린다. 나는 이렇게 친구를 바라보고 있었다. 편견을 간직한 채, 친구에게도 예외는 없었다. 그런데도 우리가 친구라고 할 수 있을까? 아직 나를 바라보는 수많은 눈을 이겨낼 수 없다. 나를 위해 네가 바라보는 나에 대해 이야기해 줄 수 있겠니?

저기 케니가 보인다. 낯선 동네에서 나를 유일하게 친구로 받아준 사람. 드디어 흑인 친구가 생겼다. 내가 동경하던 사람이 나를 받아준다는 게 이런 느낌인가? 성공의 단 맛이 느껴지는 듯하다. 나는 케니가 좋다. 그의 행동에는 멋이 가득하다. 아무 대책 없이 집을 나왔지만, 내 옆에는 케니가 있다. 없던 자신감도 생긴다. 길거리를 걸어 다니는 모든 사람들이 케니처럼 나를 받아줄 것만 같다. 왜냐하면 케니가 나를 인정했기 때문이다. 그들의 동네에서 인정받은 동양인의 모습이 얼마나 멋진가. 내 눈에 보이는 당신들이 나와 같다고 느껴진다. 그런데 너희들은 왜 나를 이상하게 쳐다보는 거야? 나도 이 동네의 일원이다. 아직 나를 잘 모르는구나. 케니가 옆에 없어서 그럴 수 있다. 케니가 내 옆에 있다면 저 녀석들도 나를 인정할 거다. 우린 형제가 될 수 있어. 같이 아픔을 공유하자. 나는 성공을 단 맛을 알려줄 수 있어. 아주 조금이지만 비슷한 걸 느낀 적이 있거든. 그러니까 나의 존재가 너희에게 도움이 될 거란 말이야. 제발 나를 받아주지 않겠니? 나를 바라보는 저 두 눈이 바뀌었으면 좋겠다. 나는 평범한 눈길을 원한다.

노아, 나를 위해 조금만 거리를 두면 좋겠다. 내 눈도 너를 온전히 받아들일 수 없는데, 다른 눈은 너를 어떻게 바라볼까? 나는 너를 바라보는 눈이 나와 같이 바라보는 게 두렵다. 나는 이 동네의 돈으로 먹고살아야 한다. 흑인이 흑인의 주머니를 노린다. 그러니까 거리에서만큼은 내게서 멀어지면 좋겠다. 나를 봐도 아는 척하지 말고, 겁먹고 도망가주면 좋겠다. 우리가 친구가 되기 위해서 너는 쓸모 있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 너는 저들의 눈 속에 돈으로 보여야 한다. 나는 널 도와줄 수 없다. 그러니 제발 내 옆에 나타나는 일이 없었으면 해. 우리의 따뜻한 한 끼 식사를 위해 우린 멀어져야 해. 내일의 아침을 맞이하기 위해 우린 모른 척해야 해. 이것도 친구가 되기 위한 과정일까? 아니면 내 눈도 다른 녀석들과 똑같기 때문일까? 그래도 아직 너는 한 명의 동양인일 뿐이다. 우린 다르다. 너는 흑인이 될 수 없고, 나도 동양인이 될 수 없다. 하지만 내게도 너의 황금빛 피부의 아름다움을 느낄 날이 오겠지? 그날이 올 때까지 우린 모른척하며, 멀어져야겠지만 말이야.


"귀에서 자꾸 노아의 목소리가 맴도는 것 같았다. 사실 너무 과잉반응일지도 모른다. 내 옆에 노아가 있든 대통령이 있든 누가 신경이나 쓰겠는가? 다른 이들도 나의 목적을 알고 내 옆에 서 있는 자의 목적도 알 것이다. 늘 그랬던 것처럼 그저 눈에 익지 않은 수요와 공급의 관계일 뿐이다. 돈 앞에서 물불 가라지 않고 달려가는 모습으로 보일 수 있다. 걔네들의 눈에서 무엇이 비치든 걔네 머릿속에서 신경 쓰지 않고 지나칠 것이다. 모두에게는 각자의 비즈니스가 있으니까. 그리고 시간은 모두에게 같으니까. 너희들의 눈에 나는 검은 점처럼 작으니까. 옆에 있는 점도 색깔만 다른뿐 작으니까. 이미 정신이 반쯤은 나간 것 같지만 이걸 전부 노아 탓으로 돌릴 생각은 없었다. 내가 아무리 못 배우고 자랐다고 해도 뿌리에서부터 타고난 본성은 더럽힐 수 없다. 내 마음속에 있는 양심은 내 피부색을 가지고 있어야 했다. 맑고 투명해서 아무 얼룩도 없이 피부색만이 비칠 뿐이다. 이렇게 정신없을 때 내 앞에 나타나 서 있는 너도 그런 양심은 가지고 있겠지, 노아? “노아!” 나도 모르게 ‘노아’라는 말이 입 밖으로 튀어나와 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이 소리는 주위에 있는 내 친구들이나 장사꾼들에게도 다 들렸을 것이다. 정작 내 눈앞에 갑자기 나타난 노아는 뭐가 좋은지 싱글벙글 웃고 있을 뿐이다.
노아는 내게 말도 건네지 않고 몸도 움직이지 않았다. 결국 내가 먼저 노아에게 말을 건넬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다.
“여기 무슨 일이야?’
노아는 역시 웃음만 보일뿐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내 눈을 빤히 쳐다보고 있을 뿐이다.
“너도 뭐 이런 걸 사러 온 거는 아닐 테고, 무슨 할 말이라도 있는 거야?”
나는 몸속에 꾹꾹 숨겨놓은 크랙을 보여주며 노아의 대답을 기다렸다. 노아는 조금 반응을 보이며 드디어 입을 열었다.
“완전 멋있다!”
나는 어리둥절하고 당황했지만 노아의 대답이 나를 비꼬거나 무시하는 건 아닌 것 같았다. 오히려 진심에서 묻어 나온 대답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분명 노아도 내가 왜 이곳에서 이런 짓거리를 하면서 살고 있는지 알 것이다. 학교도 제대로 다니지 못하고 집에서는 보살펴주거나 기다려주는 사람도 없이 암흑 속에서 유일하게 밖으로 나갈 수 있는 곳은 더 어두운 자리인걸 모를 리가 없다. 하지만 노아는 이런 나를 멋있다고 했다. 너의 눈에는 나도 여느 갱스터와 마찬가지로 보이는구나…..
내 눈에 너는 그저 아직 철들지 않은 그저 그런 집의 동양인 아이가 헛바람이 든 채 여기까지 떠내려 온 것처럼 보이는데 말이야.
나는 노아의 눈길이 내 주위나 바닥을 향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네가 밟고 있는 땅만 쳐다봐도 넌 내게 멋있다는 말을 할 수 없었을 텐데. 동정심이 생겨서일 수도 있지만 분명 너는 겁에 질릴 거야. 그리고 네 콧구멍으로 빨려 들어가는 그 냄새는 여러 가지가 섞여있다는 걸 알면 너는 당장 코를 막을 거야. 그리고 비릿한 냄새가 코끝을 찌를 때면 당장 구역질을 하겠지. 정말 미안하지만 노아. 내가 이 자리에 두 발을 붙이고 서있는 동안은 절대 그런 말을 들을 수 없어. 오히려 불쌍하다가 맞는 표현일지도 모르지. 그러니까 제발 지금 이 순간만은 내 앞에서 꺼져주면 좋겠어. 그냥 저녁에 집에서 피곤한 얼굴을 한 채 입가에는 반가움과 수고함이 묻은 미소를 띤 채 보고 싶어. 노아, 이제 너한테 한마디 던져야 할 것 같은데 입 밖으로 아무것도 나오지 않으려 하네. 이럴 때는 역시 그냥 웃고 넘어가자고. 아무 일 아닌 것처럼 말이야. 다행히 목소리는 나와서 소리 나게 웃을 수 있겠어. 그럼 분위기가 더 가라앉지는 않겠지?
“하하하하하하하하”
웃음과 함께 노아의 표정이 달라졌다. 머쓱한 표정도 아니고 미안함이 묻은 표정도 호기심이 솟구쳐 오르는 표정도 아니었다. 뭔가 골똘히 생각하면서 어마어마한 말이 입 밖으로 터져 나오기 직전의 표정이었다. 그리고 그 말이 나오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혹시 오늘 이 동네 좀 소개해줄 수 있어?”
나는 빨리 생각하고 뭐든지 내뱉어야 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가장 적절한 말은 나는 여기서 돈을 벌어야 한다는 것 밖에 없는 것 같다. 이 정도 말이면 나는 이 구역에서 네가 멋있다고 말한 약을 팔면서 할당량을 채우기 위해 돈을 벌어야 되니까 다른 녀석들한테 총 맞기 싫으면 어서 여기서 사라지고 큰길에서 네가 찾는 프로듀서나 목 빠지게 기다리고 있어라는 의미를 함축적으로 전달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여기서 돈을 벌어야 돼.”
노아는 꽤나 실망한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또 그 표정을 지었다. 제발 노아, 화가 머리끝까지 차오르기 전에 내 눈앞에서 사라지라고! 결국 노아는 또다시 분홍빛 입술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럼 케니, 너 쉬는 날이 있으면 그때는 해줄 수 있니?”
나는 이제 어이가 없어 헛웃음이 나올 지경까지 이르렀다. 내가 월급 받아 일하는 직장인도 아닌데 쉬는 날이라는 게 있을 리가 없잖아 노아! 하지만 이 말을 입 밖으로 꺼내면 대피는 더 길어질 것 같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초조함도 몰려오고 있었기에 혹시나 다른 녀석들이 이 어이없고 의심스러운 장면을 보기 전에 노아를 빨리 떨쳐내야 했다.
“그래 노아, 그렇게 하자.”
이번에는 다행히 노아가 그 표정을 짓지 않았다. 그리고 입가에 미소를 머금고 ‘조금 있다가 봐.’라는 형식적인 인사를 던진 채 내 눈앞에서 사라졌다. 나는 마치 허리케인이 지나간 것처럼 너덜너덜하고 만신창이가 됐지만 안도감이 찾아왔다. 이 상태로는 장사고 뭐고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만 같았다. 10분 아니 5분 만이라도 아무 생각 없이 쉬고 싶다. 하지만 그럴 수 없다는 걸 너무나 잘 알기에 손 끝으로라도 정신이 도망가지 않게 잡고 있어야 한다. 조금 있으면 이제 녀석들이 올 거다. 낡은 흰색 도요타를 타고 창문을 내린 채 한 손을 창문에 걸치고 아무 말 없이 내게 어서 타라는 눈빛을 보내면서 내 앞에 멈춰 설 것이다. 그러면 나는 재빠르게 조수석에 올라타 내가 가진 걸 보여줄 것이다. 그럼 녀석은 동그랗게 말린 지폐 뭉치를 내 손에 올린 뒤 나에게서 필요한 걸 챙겨갈 것이다. 나는 돈을 가지고 돌아간다. 굳이 돈을 셀 이유는 없다. 녀석과 그만큼의 신뢰가 쌓이기도 했지만 녀석의 가슴속에서 비취는 무광의 검은색 쇳덩어리는 고작 지폐 몇 장으로 장난칠 정도는 아니라고 말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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