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샘(Sam)
마지막 주인공의 등장. 샘(Sam)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그냥 평범한 이름을 원했다. 이 이야기에서 특별한 능력을 가진 주인공은 없다. 그래서 가장 평범하고 주위에서 많이 들은 아무개의 이름을 고민하다 불현듯 떠오른 이름을 선택했다. 어디에서 들어도 이상하지 않은 이름이다. 어디에서나 섞일 것 같은 이름을 가진 소년은 어디에도 섞이지 못한다. 그는 흰 피부와 곱슬머리를 동시에 가진 혼혈이다.
나는 이 이야기 속에서 여러 커뮤니티에 대한 생각을 한 곳에 모으고 싶다. 우리에게 익숙해진 블랙 커뮤니티와 아직 제대로 뭉쳐지지 않은 아시아 커뮤니티, 커뮤니티라기에는 이미 다수의 입장을 가지고 있는 화이트 커뮤니티 그리고 조국을 뛰쳐나와 마음속에 조국을 품고 하나가 된 히스패닉 커뮤니티 등 수많은 커뮤니티가 가진 문화를 이해하고 내 방식으로 생각하고 싶다. 하지만 모든 커뮤니티를 하나의 이야기 속에서 섞을 수 없다. 나는 아직 모든 문화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일에 준비되지 않았다. 나의 부족함 때문에 커뮤니티 간의 갈등이 조장되는 일은 바라지 않는다. 그래서 이 소설 속에는 세 명의 주인공이 있다. 블랙 커뮤니티에 속한 케니, 아시아 커뮤니티를 뭉치려는 노아 그리고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샘. 가장 마지막에 등장한 만큼 아직까지 제대로 된 구상이 되지 않았다. 이 글을 통해 샘을 조금 더 구체적으로 그려보려 한다.
샘의 고향은 디트로이트가 좋을 것 같다. 그곳에서 에미넴이라는 백인 랩스타가 태어났다. 그는 흑인이 아니면 인정해주지 않았던 힙합의 시대에 문을 닫은 사람이다. 새로운 문이 열리고, 힙합은 듣는 게 아닌 모두가 참여할 수 있는 문화가 되었다. 나는 그 중심에 에미넴이 있고, 닥터 드레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샘에게 흰 피부를 주었다. 에미넴이 인정받기까지 느꼈던 고통 또한 문화의 일부라 생각한다. 그가 힙합씬에 남긴 끈기와 믿음이 다른 피부색의 아이들을 끌어모았다. 다름을 문화에 녹였다. 하지만 다름 속에서 편이 나뉘어 있다. 하나의 문화 안에서 여러 분류로 나뉘고 그 안에 섞이지 못한 자가 있다면 어떨까? 어느 곳에서도 인정받지 못하는 사람끼리 뭉칠 수 있을까? 모두가 똑같은 아픔을 가지고 있을까? 누군가는 자신을 숨기려 하지 않을까? 샘에게는 언제나 의문이 따라온다. 그가 자라면서 따라온 의문은 성인이 되어서도 떨어지지 않을 거다. 그래서 샘은 항상 웃고 있다. 긍정적인 에너지가 넘치는 사람처럼 행동한다.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다름보다 같음을 찾으려 한다. 샘에게 백인과 흑인은 중요하지 않다. 누가 손을 내밀고, 일용할 양식을 내어주었냐가 더 중요하다. 그는 어디에서도 선택받지 못했지만, 누구든 받아줄 수 있다. 하지만 그는 영웅이 아니다. 한 명의 평범한 시민일 뿐이다. 적당히 이기적이고 적당히 베풀 줄 아는 사람이다. 당신의 모든 걸 샘에게 걸지 않았으면 한다.
한 명의 래퍼가 있었다. 로직(Logic)이라는 이름을 걸고 랩을 했다. 흰 피부색을 가졌지만, 그는 백인과 흑인의 피를 모두 가지고 있다. 아무에게도 밝히지 않았다면, 그가 백인인 줄 알았을 것이다. 그를 유명하게 만들어 준 노래가 하나 있다. '1-800-273-8255' 그가 세상에 남긴 아름다움이다. 수백 명의 자살을 막았을 것이다. 단지, 노래 한 곡으로 수 백명의 생명에게 빛을 주었다. 그리고 그가 남긴 아름다운 연설이 있다.
'지금 잠깐 얘기하고 싶은 게 있어.
나한테 이런 플랫폼을 하게 해 줘서 너무 고마워.
미디어들이 이야기하기 꺼려하는 걸 얘기하자면
정신, 건강, 불안함, 자살, 우울증 그리고 내 앨범에서 얘기한 것보다 더 나아가서
인종 차별, 성 차별, 가정폭력, 성폭력 이런 것들 말이야.
당신이 흑인이던 백인이던 어떤 색깔이던 상관없어.
네가 기독교인이던, 무슬림이던, 게이던, 이성애자던 상관없어.
너의 평등을 위해 싸울 거야.
난 우리 모두가 평등하게 태어났다고 믿어.
하지만 우리는 다른 대우를 받아. 이게 우리가 싸워야 하는 이유야.
우리는 모든 사람들의 평등을 위해 싸워야 해.
여성 그리고 아이들, 종교, 색깔, 신념, 성적 지향
그래서 지금 여기서 말하는 거야.
네가 이런 메시지와 나의 말을 옳다고 생각한다면
평화, 사랑 그리고 긍정 모든 것들의 평등을 위해 일어나서 박수를 쳐줘.
오직 널 위해서가 아니야. 기초를 다지자는 거야.
집에 있는 우리 아이들을 위해서.'
샘은 여기서 태어났다. 이 연설을 듣고 내가 원하는 캐릭터가 그려졌다. 평등을 위해 싸우는 사람. 불가능한 현실에서 오로지 긍정적인 에너지 하나만으로 현실을 바꿔나가는 사람. 분명 아픔을 가지고 있지만 내색하지 않는 사람. 내가 로직에게 느낀 감정을 가지고 샘이 태어났다. 디트로이트의 후진 동네에서 아픔을 쌓으며 살아왔다. 결국 그는 고향을 떠났다. 새로운 친구 앞에서 아픔을 감추고, 자신이 가진 에너지 하나 만으로 다가갔다. 다행히 그의 에너지가 친구들에게 닿았다. 샘은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길 원한다. 자신의 고통을 치유하기 위해 모든 사람들의 고통을 없애려 한다. 더 이상 고통이 없어진 사람들 앞에서 솔직하게 고통을 털어놓을 날이 올 때를 기다린다. 샘은 영웅이 아니다.
“좋아! 노아, 녹음하러 가자!”
나의 확신이 찬 목소리에 노아의 얼굴에는 당황한 기색이 떠오르지만, 지켜보고 있을 시간이 없다. 아까는 다리가 부러질 듯이 아팠지만, 녹음실로 가는 길에는 뛰어갈 수 있을 정도로 아무런 감각도 느껴지지 않았다. 녹음실 앞에 다다랐을 땐 시간이 뒤로 흘러 마치 내가 노아를 처음 만났을 때와 같은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이번에는 노아가 무언가를 느꼈다. 내 눈에는 그저 익숙한 것 같은 느낌이 드는 백인 소년이 서있는 것으로 밖에 보이지 않았지만, 노아의 눈에서는 뭔가 번뜩였다. 우리가 백인 소년 곁으로 다가가자 그 소년은 다짜고짜 우리에게 말을 건넸다.
“혹시 녹음하러 가는 거예요? 저는 래퍼예요. 프로는 아니고 랩을 한다는 거죠. 그렇다고 못하는 편은 아니에요. 아직 빛을 못 본 케이스라는 거죠. 혹시 원하신다면 몇 마디 들려줄 수 있어요. 제 실력을 보면 당신이 만드는 앨범에 참여시키고 싶을 거예요! 한 번 해볼까요?”
“잠깐! 잠깐! 잠깐!” 나는 다급한 목소리로 말을 끊었다.
“좋아, 친구. 네가 랩을 한다는 건 안 들어봐도 알겠어. 그런데 우리는 녹음실로 가는 건 맞지만 앨범을 만들지도 않고 너의 랩을 듣는다고 해서 뭘 어떻게 해줄 수 있는 것도 아니야. 우리는 프로듀서도, 엔지니어도 래퍼도 아니니까.”
래퍼가 아니라는 말에 노아는 나를 힐끗 쳐다보았지만 지금은 이럴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소년은 얼굴에서 실망을 감추지 못하였다. 그때 갑자기 노아가 소년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이봐, 이거 다 네가 쓴 거야?"
소년은 고개를 숙인 채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노아는 계속 말을 이었다.
“나도 너랑 비슷한 처지의 래퍼야. 쟤는 나를 래퍼가 아니라고 했는데 별로 신경 쓰지 마. 오늘 좀 피곤했거든. 우리는 녹음하러 가는 길인데 같이 갈래? 네가 쓴 가사가 마음에 들어서 말이야.”
나는 둘이서 무슨 얘기를 나누는지 듣지 못했지만 노아가 말을 끝내자 소년의 표정이 밝아졌다.
“오, 이런!” 노아가 한 마디 던진 것 같은데 좋은 징조는 아닌 것 같다. 그리고 대화를 끝낸 노아는 다시 내 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제발 노아의 입이 열리지 않길 바랐지만 노아는 그럴 생각이 없어 보였다.
“케니, 저기 저 친구도 같이 하면 좋을 것 같은데.”
이런. 일이 점점 커지고 있다. “이봐 노아, 무슨 생각으로 그러는 거야? 쟤한테 나는 안 보이고 너는 보이는 뭔가가 있어도 우린 오늘 쟤를 처음 봤고, 심지어 이름도 모른다고!”
“진정해, 케니. 내 말은 저 친구한테 뭔가 보인다는 게 아니야. 우린 똑같은걸 보고 있다고. 지금 네 눈에 보이는 것 그 자체야. 나도 그렇고 너도 그렇고 저 친구도 다 똑같잖아. 그러니까 내 생각에 저 친구도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어. 내가 널 만난 것처럼 말이야. 우리가 처음 봤을 때 기억나? 그게 나한텐 기회였어. 케니.”
“그때 내가 널 도와준 건…. 네 말이 맞는 것 같아 노아.”
“고마워, 케니. 너 그거 알아? 우리가 이름을 알기도 전에 나는 네 티셔츠를 빌리고 있었다고. 크크크크.”
안 웃으려고 했지만 계속 웃음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노아를 처음 봤을 때도 뭔가 다른 기분의 날이었는데, 오늘도 새로운 기분이 내 몸속을 타고 흐르는 것 같았다. 지금 이 상황은 아무것도 모르고 멀뚱멀뚱 서 있는 저 녀석은 모르겠지만 우리는 같은 기분을 공유하고 있었다.
“이봐! 이 친구가 널 살렸어.” 나는 노아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이름도 모르는 녀석을 불렀다. 녀석은 계속 우리에게 고맙다고 했지만, 우리는 들은 채 만채 ‘스튜디오’라고 적혀있는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내가 컴튼에 발을 들인 이후로 꽤 많은 시간이 지났지만 이곳은 처음이었다. 건물 안에는 스킨헤드를 한 덩치 큰 흑인이 앉아있었다.
“대여하러 온 거야? 여기는 프로듀서도 엔지니어도 없이 전부 다 알아서 해야 돼.”
우리는 긴장감과 흥분에 덮여 그가 하는 말은 신경 쓰지 않았다. 그저 그의 입에서 얼마를 부를지에 더 집중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손가락을 위로 향하며 “선불”이라고 말했다. 내 주머니 속에는 그만큼의 돈이 없었다. 옆에 있는 녀석들을 힐끗 바라봤지만 모두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집으로 돌아가야 될 때가 된 것 같다. 지금 있는 돈으로는 저녁도 제대로 사 먹지 못할 것이다. 집으로 가는 길은 얼마나 쓸쓸할까? 이제는 분명 혼자가 아니지만 느낌만큼은 지울 수 없다. 여러 가지 상황들이 복잡하게 얽혀 폭풍처럼 몰아치는 그 느낌을 도저히 이겨낼 수 없었다. 이제는 내 옆에 두 명이 있는 것 같지만 달라지는 건 없을 것이다. 오히려 더 강한 폭풍이 불어올 수도 있다. 내가 발길을 돌리자 노아가 다가왔다.
“케니.. 미안해. 도와줄 수 있는 게 하나도 없네.”
“아니야. 괜찮아. 다음에 다시 오자. 그런데 쟤는 어떻게 할 거야? 집으로 데려가서 이름이나 들으려는 건 아니겠지?”
“오, 케니. 딱한 친구 같은데 일단 얘기나 좀 해보는 게 어때?”
“그래. 야! 거기 너!" 나는 아직까지 이름도 모르는 녀석을 불렀다.
“무슨 일이야?”
“일단 너 이름이 뭐야? 뭐 계속 들어서 알겠지만 나는 케니고 얘는 노아야.”
“나는 샘이야.”
“너도 우리 동네 출신은 아닌 거 같은데 여기 온 지 얼마나 된 거야?”
“오늘이 삼일째야. 나는 디트로이트에서 왔어.”
“그럼 삼일 동안 있으면서 잘 데는 있는 거야?”
“아니. 그냥 거지처럼 돌아다녔지.”
나는 샘이 지금까지 살아있는 게 신기했다. 그리고 어떻게 삼일을 버텼는지 궁금했다.
“돈은 아예 없는 거야?”
“가져온 돈은 다 썼고, 좀도둑처럼 살고 있어.”
“정말 네가 살아있는 게 신기하다. Nigga.”
샘도 내 입에서 나온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 것이다. 사실 샘과 얘기하면서 자세히 살펴본 결과, 샘에게서 많은 공통점들이 보였다. 두피를 파고들어 가는 곱슬머리와 두툼한 입술이 누렇게 흰 피부에 자리 잡고 있고 넓적한 코는 증거들을 다 밖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그리고 우리 형제들끼리만 알 수 있는 그 무언가가 느껴졌다. 한 번에 확 다가온건 아니지만 모른 척 무시할 수 있을 정도는 아니었다. 샘도 내가 한 말에 그렇게 개의치 않아 하는 것 같았다. 다만, 노아의 얼굴이 약간 찡그려지긴 했지만. 뭐, 노아도 시간이 지나면 알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