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적응의 의미
꿈을 좇는 사람들을 바라본다. 얼마나 아름다운가? 하지만 꿈을 좇는 게 밥을 먹여주진 않는다. 누군가는 꿈을 좇아 나아가지만, 다른 누군가는 그들의 꿈을 위해 돈에 쫓기며 살아간다. 이 세상의 모든 가치가 돈에 둘러싸여 있다. 아름다운 모습은 아니다. 그러나 더럽고 치사해도 벗어날 수 없다. 두 손이 더러워지더라도 돈을 잡는 사람은 결국 부자가 된다. 결국 돈의 세상에 적응한다. 더러움에 적응한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 돈이 끼어드는 상황을 즐긴다. 행복은 이미 변질되었다. 돈의 세상에서 행복 또한 숫자로 매겨진다. 더 큰 숫자를 가지길 원하는 사람들의 눈에는 어둠이 담겨있다. 그들의 어둠을 씻어줄 빛은 오로지 큰 숫자의 종이 조각들 뿐이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종이를 손에 넣겠다는 욕망이 그들의 눈과 마음을 어둠으로 물들인다. 꿈을 좇는 사람이 돈에 쫓기는 사람을 바라본다면 이런 생각을 가질까? 어둠과 빛처럼 서로를 반대의 사람이라고 생각할까? 결국 돈이 필요하다는 걸 알게 될 텐데. 꿈의 끝에 있는 보상이 돈이라는 걸 알면서 그런 말을 하는 걸까? 나도 꿈을 좇고 싶다. 꿈의 끝에 있는 돈이 만들어줄 풍족함을 느끼고 싶다. 결국 내가 원하는 건 무엇일까?
포기하지 않는 사람들. 순수한 마음으로 꿈을 향해 멈추지 않는 사람들. 그들은 가난하다. 배고프고 잃을 게 없는 삶 속에서 살아간다. 그래서 멈출 수 없다. 멈췄을 때 느껴지는 고통을 견딜 수 없어 어디로든 가야 한다. 그런 사람들을 지켜보면 어떤 감정이 느껴지는가? 그들의 속사정을 모른 채 그들이 펼치는 경주를 지켜본다. 아무도 멈추지 않는다. 지치고 쓰러지더라도 다시 일어선다. 우리가 느끼는 감동은 그들의 고통이다. 그들과 우리의 사이에는 어떤 연결점도 없다. 우리는 우리 나름대로의 삶에 치이며 살아가고 있다. 온갖 스트레스에 시달리지만 두려움 때문에 뛰쳐나갈 수 없다. 그렇게 조금씩 무뎌지고 있다. 적응이라는 늪에서 발버둥 칠수록 더 깊이 빠져든다. 지키기 힘들고 고통스럽더라도 무시해야 한다. 밖으로 보이는 게 많을수록 늪은 더 위험하게 변한다. 그래서 우리의 세상에 남은 건 무관심뿐이다. 내 앞에 있는 사람에게 무관심하고, 옆 사람 일에 신경을 끄고, 나의 고통마저도 무시해 버린다. 그렇게 우리가 현실이라 부르는 세상에 적응한다. 적응은 고통을 느끼지 못하게 만든다. 내 몸은 계속 썩어가지만 고통만큼은 느껴지지 않는다. 평생을 진통제 속에서 살아간다. 결국 이 삶은 죽음 앞에서 후회와 함께 끝을 맞이한다. 나는 왜 그들처럼 꿈을 좇지 못했을까?
내 몸은 이미 적응해 버렸다. 더 오랜 시간을 보낸 현실에 맞춰 생각하고, 움직인다. 과거의 꿈은 한순간의 웃음거리로 사라져 버렸다. 이미 내가 꿈을 버렸다. 보이지 않는 비웃음이 두려워 꿈을 잊었다. 내가 땅을 파고 스스로 꿈을 묻었다. 어떻게 다시 꿈을 좇을 수 있겠는가? 나는 꿈의 배신자다. 진심이었던 마음을 배신했다. 그래서 꿈을 좇는 자들을 지켜보는 것도 힘들다. 과거에 스스로 묻어버린 꿈이 생각나서. 더 이상 빠져나올 수 없는 현실의 늪이 너무 깊어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바라보는 것뿐이다. 잡을 수 없는 별을 바라보며 그들의 감정을 조금이나마 느껴보고 싶다. 다시 꿈을 좇을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고 싶다. 두려움에서 벗어나 그들과 함께 꿈을 좇는 경기에 참여하고 싶다. 그런데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들을 바라보고 감동받은 마음의 감정을 느끼는 것뿐이다.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는다. 세상도 바뀌지 않는다. 작은 울음소리를 들어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 몇 글자 끄적거리는 게 어떻게 내 삶을 바꿀 수 있을까? 점점 현실에 적응할수록 이 글에는 욕심만 흩뿌려지고 있다. 일확천금을 노리며 만들어지는 문장은 내가 원하는 게 아니었다. 그런데 아무리 노력해도 바꿀 수 없는 게 있는 걸까? 아니면 노력이 부족한 걸까? 가끔씩 모든 걸 다 내려놓고 꿈만 바라보고 살고 싶을 때가 있다. 현실에서 벗어나 오로지 꿈을 향한 순수한 마음을 간직한 채 살아가고 싶을 때가 있다. 하지만 그 마음은 진심이 아니다. 현실에서 벌어진 불안정한 적응이 만들어 낸 순간의 감정일 뿐이었다. 현실에 녹아들지 못해 만들어진 도망치고 싶은 마음이 만들어 낸 환상은 꿈을 향한 삶이라는 달콤한 개소리를 만들어냈다. 나는 어느 곳도 선택하지 못했다. 아직 포기하기 싫어서일까? 환상이란 걸 알면서도 달콤함을 잊지 못해서일까?
내 주변을 둘러보자. 평화롭다. 모두가 현실에 순조롭게 적응한 듯하다. 적당한 회사와 적절한 휴식, 적절한 취미, 적절한 소비 모든 게 평화롭다. 그런데 나는 왜 고통 속에서 살고 있을까? 얼마나 대단한 인생을 꿈꾸기에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걸까? 부족하지도 흘러 넘치지도 않는 상황에서 안절부절못하고 있다. 비워낼 용기도 없고, 흘러넘쳐 온몸을 더럽힐 용기도 없다. 두려움뿐이다. 걸음걸이는 느려지고, 만족의 범위는 넓어진다. 주저리주저리 글을 써 내려가도 정답을 찾을 수 없다. 이 글의 끝에는 선택이 나올 것이라 믿었다. 그런데 두려움만 커져간다. 현실에 적응하는 건 싫어하면서, 꿈을 좇는 길은 두렵다. 모든 사람이 똑같은 고민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겠지만, 아무에게도 정답은 없었다. 나도 똑같은 사람이라는 건가? 그토록 싫어하던 현실을 살아가는 사람과 똑같은 사람이라는 건가? 그래서 정답을 더 갈망했는지도 모른다. 나는 다르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서. 나는 당신들과 달리 꿈을 좇을 수 있는 사람이라고 말하고 싶어서. 그런데 나도 똑같은 사람이었다.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고통 속에서 하루를 보낼 뿐이다. 여전히 혼자 생각하고, 혼자 아파한다. 그러면서 사람들 앞에서 아무 일 없는 척 행동한다. 사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현실은 생각보다 평화롭고, 내 주변은 사건사고 없이 조용하다. 그래서 이곳을 벗어날 수 없다.
결국 이 글의 끝에서조차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래도 멈출 수 없다. 또다시 글을 쓰고, 또 혼자 생각하고, 결국 고통을 품은 채 이 글은 세상으로 보내질 것이다. 언젠간 현실 세계와 꿈속 세계를 연결시켜 주는 글이 되길 바라는 마음을 간직한 채, 이 글은 현실 세계를 만날 것이다. '적응의 의미'라는 작은 주제를 담고 아무도 찾지 못할 답을 간직한 채 현실이든 꿈이든 누군가에게 닿길 바란다. 그리고 나는 현실 세계에 적응하는 것을 여전히 두려워하며 생각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날이 갈수록 삶이 풍족해지는 느낌이지만, 샘과 노아는 늘 같은 일상을 보내고 있었다. 가만히 앉아서 펜을 끄적거리거나 하루 종일 밖에서 길거리를 돌아다녔다. 나는 노아와 샘에게 매번 돈을 건넸지만 그들은 한사코 거절했다. 그래서 나는 매일 여러 가지 음식을 사들고 냉장고를 꽉꽉 채워야 했다. 이제 전기가 들어오고 물도 콸콸 나오니 집은 한층 더 포근해진 느낌이다. 그리고 침대는 아니지만 매트릭스를 깔아 이제 소파에서 허리를 구부리고 잘 일도 없었다. 가장 중요한 건 날이 갈수록 내 마음이 가벼워지고, 평화로움을 느끼고 있다는 것이다. 심지어 거리에서의 걸음걸이조차 여유롭고 당당했다. 거리를 지날 때마다 평소 낯이 익은 녀석들은 나에게 인사를 건넸고, 나도 인사를 받아줬다. 그리고 매일 밤 나는 다음날 팔기 위한 약을 사기 위해 파티 음악이 흘러나오는 보스의 집에 들르는 게 일상이 되었고, 그곳에서 만난 여러 사람들에게 거리의 생활을 배웠다. 그리고 나는 바로 총을 사고 몸속 깊숙한 곳에 내 신체의 일부인 것처럼 지니고 다녔다. 매일 밤 약을 팔기 위해 들렀던 곳은 이제 매일 밤 형제들을 만나는 곳으로 바뀌었다. 얼굴이 익숙해지고, 서로의 삶에서 풍기는 공통점의 냄새가 끌림을 만들어내고, 약속된 사인은 항상 손을 춤추게 했다. 술에 취하든 약에 취하든 나는 취하는 날이 많아졌다. 늦은 시간에 집에 들어가는 일이 잦아졌고, 노아와 샘은 항상 잠들어 있었다. 그리고 노아와 샘도 내가 자는 모습 밖에 보지 못했다. 이미 해가 중천에 뜬 시간에 일어나 가득 차 있는 냉장고에서 손에 잡히는 대로 배를 채우고 집을 나섰다. 거리를 돌아다닐 땐 생각보다 웃을 수 있는 일이 많았다. 파티에서 친해진 녀석이 던지는 농담에 웃기도 하고 약에 취해 길거리에 널브러진 사람을 보고 웃기도 하고 여자들에게 다가갈 땐 항상 웃는 얼굴이었다. 점점 이 삶에 적응하는 것을 넘어서 즐기고 있었다. 가끔씩은 거리에서 노아와 샘이 보이지도 않고 오지도 않는 누군가를 기다리는 모습을 마주하기도 했다. 하지만 내 어깨엔 노아와 샘뿐만이 아니라 거리에서의 위치가 주는 무게감도 있었다. 그래서 그냥 바라보기만 했다. 그리고 어느 순간에는 노아와 샘을 위한다는 핑계로 나에게 다가온 유혹을 거절하지 못하고, 그대로 받아들이기도 했다. 이제 이 동네가 우리 집이 되었고, 총소리는 두렵지 않았다. 그리고 노아와 샘은 내가 먹여 살리는 친구들 중 하나에 불과했다. 집에서도 내가 하는 말은 ‘이거 먹어.’가 전부였다. 점점 대화는 사라지고 눈을 뜬 모습보다 감고 있는 모습을 마주할 때가 많아졌다. 나는 그들이 가사를 적는지 어디에 가서 랩을 하는지 아니면 늘 그랬듯이 기다리는 일에 집중하는지 궁금해하지 않았다. 오히려 집에 들어갈 때 무엇을 사갈지 생각할 때가 하루 중 유일하게 그들이 내 머릿속에 들어오는 시간이다. 그래도 나는 그들에게 잠 잘 곳을 주었고 배고픔에 허덕이지 않도록 먹을 것을 주었다. 심지어 우리 동네의 친구들과 똑같이 대해주었다. 그런데 하루가 지날 때마다 노아와 샘이 멀어지는 느낌이 드는 건 왜일까?
집에 들어가는 시간이 날이 갈수록 늦어지고, 시간상 다음날 새벽에 집으로 가는 경우가 일상이 되어가고 있었다. 나는 이제 따뜻한 저녁거리를 사서 집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내가 무엇을 사든 이미 그것은 차갑게 식어있고 음식을 맞아줄 사람은 이미 꿈나라에서 아침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냉장고를 채웠다. 가끔씩은 식탁 위에 돈을 올려두고 나오기도 했지만 늘 돈은 그 자리에 가만히 있었다. 노아와 샘은 밤늦게 들어와 아침까지 자고 있는 내 모습을 보고 식탁 위에 아침이 될지 점심이 될지 모르는 음식을 차려놓고 나간다. 여전히 노아와 샘은 밖에서 늘 기다리고 있고, 여전히 주머니에 한 푼도 가진 게 없다. 내 주머니는 늘 꽉 차 있고 이제는 녹음실에 관해서도 천천히 잊어가고 있었다. 나는 늘 일을 한다는 것은 돈을 버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약을 팔든 식당에서 서빙을 하든 스타벅스에서 커피를 내리든 어떻게든 돈을 번다면 나는 일을 하는 것이다. 반대로 내가 어떤 무엇을 하든 돈을 벌지 못한다면 고생을 하는 것이다. 내 기준으로 봤을 때, 노아와 샘은 매일매일 고생을 하고 있다. 적을 칸을 하나라도 아끼기 위해 꾸깃꾸깃 구겨진 종이에 작게 글씨를 쓰고 오지도 않는 사람을 기다리고 아무도 듣는 사람이 없는 곳에서 랩을 하는 것은 거리에서 거지가 구걸하는 것보다 돈을 못 번다. 하지만 노아와 샘은 그들의 행동을 고생이라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 늘 그들은 모든 걸 참고 기다린다. 그 망할 꿈이란 게 얼마나 빛나는지 아무리 어두워도 노아와 샘은 빛이란 존재를 간직하고 있다. 그에 비해 나의 꿈은 지금 한 없이 작아지고 일을 해서 번 돈에 깔려서 보이지도 않는 지경이다. 나도 분명 그들처럼 빛나는 꿈을 가지고 이곳으로 왔지만 지금 나는 일하는 것, 돈을 버는 것에 내 모든 것을 잃어가고 있었다. 오로지 주머니를 채우는 데만 급급했고, 이제는 주머니에 가득 찬 녀석들 때문에 내 손은 오로지 주머니만 신경 쓰고 있었다. 내 몸에서 무엇이 빠져나가도 주머니 밖으로 손을 뻗어 잡을 수 없었다. 이제는 주머니에서 손을 빼야 하는데 이제는 움직여야 하는데 막상 손을 빼면 몰아쳐오는 미친듯한 불안감 때문에 나는 다시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혹시 나도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할까? 나는 분명 지금까지 노아와 샘을 도와줬다고 생각하는데 과연 이게 내 착각은 아닐까? 이미 노아와 샘은 나 없이도 꿈을 좇을 수 있는 마음을 가지고 계속 좇아가는걸 옆에 있던 내가 바라보고 있는 게 아닐까? 아니면 노아와 샘이 나를 도와주고 있는 걸까? 나는 지금 대답이 필요하다. 하지만 내 주위에 있는 사람들은 내가 쉽게 다가갈 수 없었다. 철저한 비즈니스의 관계 속에서 나는 마음을 열고 내 편이 되어줄 사람 하나 찾지 못했다. 그저 박쥐처럼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 주위로 맴돌 뿐이었다. 나는 그들이 필요할 때마다 옆에 있었지만 내가 누군가를 필요로 할 때 내 주위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래서 늘 혼자 걸어 나갔다. 어느 쪽이 앞인지 뒤인지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 채 계속 걸었다. 가끔씩 멈추기도 했지만 멈춰있을 때마다 찾아오는 공허함과 혼자 남은 쓸쓸함이 너무 커서 다시 걸었다. 계속 걷는다면 누군가를 만나지 않을까 라는 기대감도 조금은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신기루처럼 어느 순간 사라져 있었다. 이제는 정말 멈춰서 나에게 누군가 다가오기를 기다리고 싶지만 공허함과 쓸쓸함을 알기에 내 두 다리는 멈추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늘 바뀌지 않는다. 밑바닥에서 계속 헤매면서 늘 같은 곳만 맴돌았다. 주위에는 샘과 노아가 있었다. 그들은 가만히 있었다. 나는 하루를 쉬지 않고 움직였는데 그들은 내 주위를 떠난 적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