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쓰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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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P

결국 돌아갈 것이다. 그곳이 내가 생각하는 '집'이다. 단순한 하나의 건물, 한 칸의 방을 넘어선 공간에 의미를 집어넣는다. 나를 끌어당기고, 나와 비슷한 사람을 끌어당기는 공간을 집이라 부른다. 우리에겐 집이 필요하다. 갈 길을 잃은 발걸음의 종착지. 혼란한 마음의 안식처. 새로운 시작의 발상지. 어떤 의미로든 우리는 집으로 돌아간다. 우리의 시작과 마지막이 이루어지는 곳을 집이라 부르자.

소중한지 몰랐다. 고마운지 몰랐다. 어떠한 변화도 없는 이곳은 영원할 것만 같다. 내가 이곳을 떠나더라도 영원히 그대로일 것만 같다. 하지만 집은 나를 떠나지 않는다. 내 곁에는 항상 집이 있다. 새로운 곳에 도착하면 새로운 집이 생긴다. 나를 담아줄 수 있는 공간은 어디에든 있다. 여전히 고마움을 느끼지 않는다. 소중함도 느끼지 않는다. 언제나처럼 내 몸을 맡긴다. 아무 생각도 없이 휴식을 취한다. 현실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 준다. 아무 생각도 없다. 그래서 고맙지 않다. 늘 그랬었다. 지친 몸은 언제나 집을 향했는데, 나는 집에 대한 아무 감정이 없었다.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다. 당연시 여기던 것이 가진 소중함을 잊고 있다. 원래 그랬으니까.

가장 고통스러울 때 나를 찾아온 가장 달콤한 생각. 집으로 돌아가고 싶다. 나를 집으로 보내줘. 우리는 언제 그렇게 집을 찾았을까? 집은 우리에게 실내의 공간이라는 믿음을 주고 있다. 비바람이 불어오는 바깥일의 끝에는 따뜻한 공기로 가득 찬 집이 기다리고 있다. 그럼 바깥의 공간은 우리에게 어디인가? 항상 고통이 가득하고, 매서운 비바람이 기다리는 곳에 우리는 왜 가야 하는 걸까? 더 강한 달콤함을 맛보기 위해 강한 고통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쾌락에 눈이 돌아가 몸을 더 혹사시킨다. 과연 이게 맞는 말인가? 이런 이유가 우리를 집으로 돌아가게 만드는 것일까? 그냥 하루하루를 살아갈 뿐인데, 고통을 바라지 않았을 뿐인데. 우리의 하루하루가 고통의 연속이었다. 원치 않은 일과 하고 싶은 일이 뒤섞여 만들어 낸 결과는 도망치고 싶은 마음. 이곳을 떠나 원하는 곳으로 가고 싶은 마음. 그러나 할 수 없다는 걸 깨닫고 길을 잃는다. 정해진 길만 걸었던 사람은 도망칠 수 조차 없다. 그래서 가장 잘 아는 길을 걷는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아무도 내게 소리치지 않는다. 오로지 따뜻한 공기만이 가득하다. 가장 떠나기 싫지만 떠나지 않으면 하루하루를 살아낼 수 없는 곳. 이곳은 내가 떠났을 때 가장 빛이 난다. 안에서는 몰랐지만, 밖에서는 볼 수 있다. 얼마나 소중한지, 얼마나 아름다운지, 얼마나 그리운지. 그래서 나는 떠날 수밖에 없다. 다시 돌아오지 않을 생각으로 집을 나서야 한다. 내 마음속에서 잊힐 만큼 바쁘게 살고, 고통을 이겨나가야 한다. 다시는 무의식 속에 이 길을 걷지 않기 위해. 도전은 계속되고, 집은 점점 잊힌다. 좋은 현상이다. 조금씩 새로운 곳에 적응된다. 가끔씩은 이곳에서 편안함을 느낄 것만 같다. 하지만 편안함이 만들어내는 것은 걱정이다. 점점 이곳에서의 삶이 걱정된다. 앞으로 계속 반복되는 일상에 녹아드는 것이 두렵다. 정해진 즐거움과 정해진 고통 속에서 살아야 하는 현실 앞에서 다시 도망치길 마음먹는다. 여전히 어디로 가야 하는지 모르지만,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걷지 않기로 마음먹는다. 그래서 새로운 길을 생각하며 걷는다.


집을 만들러 가는 길


그곳은 얼마나 포근할까? 얼마나 아름다울까? 이제는 바깥에서 보는 집의 빛을 안쪽에서도 보고 싶다. 얼마나 많은 시간을 걸어야 할까? 아마 지금 살아온 시간보다 더 많은 시간이 걸릴지도 모른다. 그래도 돌아갈 수 없다. 나는 이미 그곳을 잊었다. 잊어야만 했다. 계속 걸어가기 위해 잊고 살아간다. 고통은 고통대로 계속 나를 괴롭히지만, 더 이상 돌아갈 곳이 없기에 받아들인다. 휘몰아치는 비바람을 피할 수 없어 내가 더 단단해 지기로 마음먹는다. 모든 일이 마음먹은 대로 흘러가지 않지만, 돌아갈 곳이 없기에 멈출 수 없다. 나는 평생을 도망치며 살아야 할 수 있다. 그렇지만 돌아가지 않을 거다. 정해진 길만 걸을 수 있는 세상과 멀어질 거다. 항상 새로운 일이 일어나길 기도하고, 똑같은 일만 반복되는 현실에 실망하는 삶 끝에는 무언가 나오지 않을까? 끝이 보이지 않아 계속 걸어가고 있다.

하지만 결국 돌아갈 것이다. 도망치기 위해서가 아닌 추억을 가지고 돌아갈 것이다. 내가 남겨놓은 아픔을 치유하기 위해 돌아갈 것이다. 내 흔적을 지우고 정신을 남길 것이다. 내가 없더라도 이곳에 나를 남기기 위해서. 나와 같은 고통을 가진 사람들에게 휴식을 주기 위해서. 나와 같은 사람들이 이곳을 떠나길 바라기에.

내 집은 단순한 공간으로 정의되지 않는다. 하나의 거리, 동네, 도시 더 나아가 국가를 정의한다. 그곳에 있는 나와 같은 삶이 정해진 사람들에게 이 글을 바친다. 적응이 얼마나 무서운지 느끼길 바란다. 고통이 무뎌지는 게 얼마나 끔찍한 일인지 알아차리길 바란다. 이제 우리에게 돌아갈 집이란 없다. 새로운 길과 새로운 집. 보이지 않기에 더 아름답고 더 빛난다.


“샘! 노아!”
살면서 이렇게 큰 소리를 내본 적이 있었을까?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캄캄한 누에고치 안에서 그저 빛이란 허망을 안고 바깥세상으로 나가려는 것처럼 지금 나에게는 오직 노아와 샘이 내 양쪽 눈동자에 들어있었다. 갑작스레 들려온 내 소리에 둘 다 눈을 휘둥그래 뜨고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둘 다 양손에 공책과 펜을 꽉 붙잡고 있었고, 앞으로 내 두 손에도 계속 들려있을 것이다.
“케니, 무슨 일이야?”
당황한듯한 노아가 환하게 웃고 있는 나를 보고 처음 던진 말이었다. 노아의 목소리를 듣는 게 상당히 오랜만인 것 같았다. 하지만 나는 노아의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천천히 그 둘을 향해 걸어갔다. 그리고 양팔을 힘껏 벌리고 둘을 껴안았다. 분명 누군가는 이 모습만 보았을 것이다. 남의 거리에 들어와서 정체 모를 동양인과 백인을 껴안고 있는 갱스터의 모습을 말이다.
“케니, 뭐 복권이라도 당첨된 거야?”
샘은 옅은 웃음을 지으며 농담처럼 한 마디를 던졌다. 그런데 샘, 네 말이 맞는 것 같다. 이제야 내가 복권을 긁은 것 같아.
“친구들, 집으로 갈 시간이야!”
지금은 이게 내가 너희에게 해줄 수 있는 최선의 말이지만 ‘집’이라는 단어에는 많은 게 담겨있었다.
갈 곳 없는 너희들이 먹고 잘 수 있는 곳, 우리들을 하나로 묶어 줄 수 있는 곳, 다시 돌아올 수 있는 곳. 그런데 집으로 가면 뭘 할 거지? 그냥 다 같이 둘러앉아 따뜻한 음식을 앞에 두고 막상 돌아보면 얻은 것 없는 하루를 보내고, 어떻게 될지 모르는 내일을 위해 기도도 하고, 아무 말 없이 음식을 우걱우걱 먹어치우고, 어색한 분위기 속에서 눈치나 보고 있겠지. 그리고 누군가 일어나서 그릇을 치우고 하나 둘 자리를 뜨고 노아는 종이에 또 무언가를 끄적이겠지. 샘도 다른 곳에 자리를 잡고 펜을 들 거야. 그게 가사든 이야기든 시가 되든 결국 우리에게 남은 건 진부한 대화도 아닌 펜 소리 밖에 없다. 펜 굴리는 소리, 번뜩이는 걸 써 내려가는 소리, 귓속에서만 맴도는 흥얼거리는 소리. 옳은 길인지 틀린 길인지 신경 쓰지 않아도 되고, 펜을 잡고 있는 손과 나란 존재가 만들어지는 나만의 길. 그리고 이 모든 것이 만들어지는 곳이 집이다. 모든 것의 시작점이자 새로운 것을 만들고 옳고 그름이란 게 없는 곳. 그저 이곳에 같이 있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유대감을 느낄 수 있고 말하지 않아도 서로를 이해할 수 있다. 내가 힘든 만큼 너도 힘들다는 걸. 그리고 결국 마지막으로 돌아오는 곳은 집이라는 걸.
평소와 다른 집으로 가는 길의 풍경이다. 어두운 길을 비쳐주는 얼마 없는 가로등은 아직 불이 들어오지 않았고 하늘은 어둠이 아닌 붉은빛으로 물들고 있다. 거리 곳곳에는 누군가 약을 팔고 있고, 누군가 약을 사고 있다. 그리고 나를 아는 녀석들도 어디선가 나를 지켜보고 있다. 내가 어디로 가는지 내가 누구와 같이 있는지, 나보다는 양 옆의 샘과 노아에게 더 많은 시선이 느껴진다. 분명 샘과 노아도 느낄 것이다. 아니 그들은 이미 무감각해져 있을 수 있다. 매일 같은 길을 걸으면서 매일 이런 시선을 받아왔을 것이다. 호기심에 감정이 없는 것처럼 이 시선에도 아무 감정이 없었다. 하지만 시선의 끝에서는 호기심은 사라지고 경계와 불안감이 만들어낸 폭력성이 담겨있다. 샘과 노아를 겁먹게 하기에는 좋은 카드지만, 아직까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자연스레 느껴지는 시선도 누군가 눈길을 거두면 사라지고 그 안의 감정도 사라진다. 이제 내가 시선을 받을 차례다. 호기심도 경계도 불안감도 아닌 이 시선은 경고다. 배신자에게 보내는 경고이며 배신자가 되지 말라는 경고. 마리화나 한 대가 필요한 시간이지만 결국 내가 이겨내야 되는 것들 중 하나이다. 그리고 내 옆의 두 형제는 아무것도 없이 이런 것들을 견뎌내고 있다. 집까지 가는 길이 이렇게 멀게 느껴진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아무 말 없이 걸었다. 이 정적을 깨는 소리가 총소리가 아니길 바라면서 걸을 때쯤 얼룩진 우리 집의 벽이 보였다. 녹슬었지만 반가운 문 여는 소리가 들리면 내 몸은 드디어 긴장을 풀 수 있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반겨주는 이 하나 없이 서늘한 공기만 느껴지지만, 집이란 의미 만으로 이곳은 특별해진다. 마치 샘과 노아가 가족 같이 느껴지는 이유도 이 집에 있을 것이다. 분명 이곳은 아무도 없이 버려진 곳이었지만, 여느 집들처럼 집의 의미란 가족이 있을 때 비로소 자신의 본모습을 보여준다. 얼마나 포근한지, 얼마나 따뜻한지. 그리고 얼마나 오래 기다릴 수 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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