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지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길, 입가에 미소가 떠나지 않는다. 이제 어떻게 해야 될까?라는 고민보다 이제 어떤 걸 해야 될까?라는 고민이 더 커지고 있었다. 오늘은 특별하게 보내고 싶다. 친구들과 파티를 하고 싶다. 우리의 음악을 크게 틀고 모두에게 들려주고 싶다. 우리의 존재를 세상에 알리고 싶다. 이 세상의 모든 기회를 잡을 준비가 되었다. 가진 건 5곡 짜리 믹스테이프 하나밖에 없지만 끊임없이 돼 내었다. ‘모든 게 잘될 거야.’ 사실 밝게 빛나는 우리의 그림자를 외면할 순 없었다. 우리 힘으로 한 게 아무것도 없다. 앞으로 무엇을 어떻게 해나가야 할지 방법을 모른다. 결국 사라질 거다. 이 세상에 존재했던 모든 것이 그랬던 것처럼 잊히고 사라질 거다. 아직까지 음악을 한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 내 고향 친구들은 나의 헛된 희망을 보고 어떤 생각을 할까? 친구들은 나에 대해 잘 모를 거다. 힙합은 모두가 좋아한다. 그러나 누구 앞에서도 랩을 하지 않았다. 고향에서 나는 언제나 발버둥 치고 있었다. 떨어지지 않으려 노력했다. 언제나 생각이 많았다. 좋은 순간에도 나쁜 순간에도 생각이 많았다. 그래서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지금처럼 행복한 순간에도 이런 생각이 떠올라 나의 발걸음을 멈추려 한다. 나와 함께 걸어가는 친구들은 이 순간을 즐기고 있다. 이 친구들이 무슨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나처럼 행복을 떨쳐내려 하지는 않는 것 같다. 앞으로 찾아올 수많은 기회를 잡기 위해 이런 생각을 버려야 할까? 자신감 하나로 모든 걸 짊어지기에 아직 나는 자신이 없다. 평생을 남들에 맞추기 위해 살아왔다. 그런데 이 노래의 가사를 생각하며 남들과 달라지기를 바란다. 내가 말하는 가사의 반대편에 서있길 바란다. 거짓은 없다. 진실을 말했다. 그리고 성공하길 진심으로 원한다. 만약 성공한다면 나는 어떤 가사를 써야 할까? 아직 아무것도 이룬 게 없는데, 나는 생각이 많다."
오랜 시간이 걸렸다. 다시 글을 쓰기 시작했다. 핑계가 많았다. '이것만 끝나면 시작해야지.'의 반복이었다. 그 사이 나에게 많은 일이 있었고, 많은 것을 끝냈지만 글을 다시 쓰기로 시작한 것은 끝냈을 때가 아닌 시작했을 때였다.
이번 글이 28번째 이야기가 될 줄 몰랐다. 작년 10월 31일로 돌아가보자. 브런치라는 플랫폼에서 작가가 되고 첫 번째 글이 올라갔다. 아무렇게나 정한 '소설 쓰는 이야기'라는 글은 오로지 나를 위해 시작했다. 소설을 통해 세상을 바꾸고 싶은 마음에서 시작한 케니와 노아 그리고 샘의 이야기는 어느샌가 멈춰 있었다. 온갖 핑계 속에서 글을 쓰는 시간은 줄어들었고, 이야기는 앞으로 나아가질 못했다. 멈춰버린 창작은 나를 앉혀놓지 못했다. 다른 자극을 찾아 떠났지만, 내가 원한 자극은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큰 걸 얻는 것이었다.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것을 원하고 있었다. 나의 욕심이다. 도저히 이렇게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고 나는 무엇을 했던가? 다시 돌아가고 싶었다. 케니와 노아, 샘이 내 안에서 살아 숨 쉬던 시절로 돌아가고 싶었다. 창작의 고통 속에서 쥐어짜 내는 즐거움 속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오로지 생각만으로 즐거웠던 그때로 돌아가고 싶었다. 다시 꿈속으로 돌아가자. 하지만 더 이상 돌아갈 수 없다는 걸 알고 있다. 나를 지나간 시간 속에 담긴 감정은 이미 떠나버렸다. 생각은 굳어지고, 감정은 메말랐다. 도대체 누가 날 이렇게 만들었을까? 괜히 현실이라는 세상 탓을 한다. 아직도 두려움 속에서 빠져나오지 못해 핑곗거리만 찾고 있었다. 아무것도 하지 못하면서 욕심은 줄어들지 않았다. 조금만 더 생각을 해보자. 나의 소설은 계속될 거다.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리든 결국 끝을 맺을 거다. 그럼 이제 무엇을 해야 할까? 다시 소설 속으로 들어간다고 달라지는 게 있을까? 또다시 핑곗거리만 찾을 뿐이다. 그래서 나는 글을 쓰기로 결심했다. 지금까지 만들어진 소설 속 내용을 돌아보며 그 순간의 감정을 글에 담고 싶었다. 내가 어떤 생각을 가졌는지,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었는지 느끼고 싶었다. 그렇게 나의 '소설 쓰는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1'이라는 제목의 글을 이곳에 저장했다.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이 글이 올라간다면 나는 다시 소설을 시작할 수 있을 거라 믿었다. 이제 순서가 왔다. 2022년 10월 31일에 시작했던 이야기가 2023년 5월의 끝을 맞이할 무렵 하나의 챕터가 끝났다. 그동안 나에게 어떤 일이 있었을까? 하나씩 생각을 되감아 본다. 브런치에 글을 쓰기 시작하고 얼마 되지 않아 '소설 쓰는 이야기'뿐만 아닌 '전시회 갔다 온 이야기'라는 글을 쓰기 시작했다. 전시회 또한 나의 소설을 위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생각의 폭을 늘리기 위해 이것저것 보고 느끼며 계속 생각했다. 그리고 기록했다. 단순한 감상문이 아닌 생각의 단편을 적고 싶었다. 어디에서든 영감을 얻길 원한다는 드레이크의 말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순간순간 지나가버리는 감정을 놓치기 않기 위해 기록했다. 기록이 모여 하나의 글이 되고, 그 글은 '전시회 갔다 온 이야기'의 시작이 되었다. 어느 순간 전시회 또한 나의 일이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글을 써야 한다는 압박감 때문에 전시회를 찾아다녔다. 압박감 속에서 나의 발걸음이 향한 곳은 파리였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는 그곳에서 나는 무엇을 느끼려 했는가? 아무것도 없었다. 내가 원하는 건 오로지 기록뿐이었다. '이 작품을 보고 이런 글을 적어야지.', '이 작품에 대해서는 어떤 문장이 어울릴까?' 내 머릿속은 오로지 글을 위한 전시로 가득 찼다. 나는 다시 처음의 순간을 잊어버렸다. 내가 본 그림이 모네인지, 마네인지도 모르면서 그냥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 감정이 좋아서 시작한 일이 어느샌가 내려가지 않는 스크롤에 집착하는 일이 되었다. 그래도 나는 이 일을 멈출 수 없다. 그저 다시 처음의 감정에 집중하고 싶을 뿐이다. 글은 아무런 죄가 없다는 걸 알고 있다. 스크롤이 내려가지 않아도 아무도 나를 손가락질하지 않는다는 것도 알고 있다. 이제 더 이상 느낄 수 없을 것만 같은 그때의 감정을 찾기 위해 구차하게 말만 늘어날 뿐이다. '전시회 갔다 온 이야기'는 계속될 거다. 나는 처음으로 돌아가기 위해 또 새로운 곳을 찾아갈 거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나의 소설에 새로운 색이 작게나마 물들기 시작하길 바란다.
소설을 쓰기 시작한 이후로 하고 싶은 게 참 많았다. 그리고 소설을 쓰는 것 빼고 많은 일을 했었다.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하고, 수영도 배웠다. 죽어도 하기 싫던 달리기가 이제는 아무 생각 없이 뛰고 멈추길 반복한다. 이제 헬스장은 가기 싫은 곳이 아닌 빨리 나가고 싶은 곳이 되었고, 짧은 시간이지만 꾸준함의 힘을 믿고 매일 영어 원서를 통해 새로운 언어와 가까워지고 있다. 전시회는 언제나 열려있다. 나는 새로운 걸 찾아 떠날 뿐이다. 도쿄에서의 크리스마스는 즐겁고 새로웠다. 파리에서의 설날은 에펠탑과 함께 했다. 한국에서 챙기지 못한 설날 대신 태국의 송크란을 챙기러 갔다. 오프셋의 뮤직비디오 촬영 현장을 마주한건 기적 같았고, 트래비스 스캇의 무대는 영광스러웠다. 그리고 수많은 시간을 낭비했다. 핑계를 가지고 보내버린 시간 동안 나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이 글을 적기 전까지 계속 후회했다. 내가 지키지 못한 시간을 되돌아보고 한숨만 내쉬었다. 하지만 이 글을 적으면서 내게 새로운 시작점이 생겼다. 이 글이 끝나면, 나는 다시 소설을 쓰기 시작할 것이다. 어떤 이야기를 해야 할지 아직도 모르겠지만, 글을 쓴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 이 순간을 얼마나 기다렸는가.
새로운 이야기. 새로운 시작. 새로운 건 언제나 즐겁다. 가보지 못한 곳을 가는 데서 오는 설렘처럼, 새로움을 마주하는 건 즐거운 일이다. 두렵기도 하지만 설렘을 착각하는 거라 생각한다. 우리가 살아온 정형화된 세상에서 새로움은 자유를 준다. 보는 그대로 느낄 수 있는 자유를 맛볼 수 있다. 생각하는 대로 생각할 수 있는 자유를 가질 수 있다. 우리는 자유를 원한다. 그래서 새로움을 찾아 나선다. 자유를 찾는 행위는 적을 만들기 때문에 새로움을 찾아 나선다. 정형화된 세상에 사는 정형화된 사람들은 자유로운 사람을 싫어한다. 겉으로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지 말라고 세상에게 배웠기에 표현할 수 없을 뿐, 자신의 세상과 달라지는 사람을 미워하는 마음은 사라지지 않는다. 나는 자유를 찾아 나선다. 자유를 향한 여정 속에서 새로움을 맞이한다. 그리고 내 주위의 사람이든, 나를 아는 어떤 사람이든 누군가는 나를 미워할 거다. 괜히 남들과 달라지려 한다고 손가락질하고, 비웃고 나에게 상처 주기 위해 노력할 거다. 그들의 행동은 나를 평생 괴롭힐 거다. 잊히지 않을 상처를 만들고 나는 다시 멈춰 선다. 모든 걸 멈춘다. 소설도 다시 멈춘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에 빠져 하루하루를 보내버린다. 핑계는 다시 만들어지고, 후회의 시간도 내게 다가오고 있다. 나에겐 의사가 필요하다. 새로움이라는 약을 처방해 줄 의사가 필요하다. 새로운 곳으로 떠나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새로운 일들을 맞이하면서 다시 걸어 나간다. 나를 향해 손가락질하던 사람들은 다시 나를 욕하기 시작한다. 또다시 모든 일이 반복된다. 언젠가 모든 게 끝날 것이라 믿고 다시 걸어간다. 다시는 이곳으로 돌아오지 않길 바라며 앞으로 걸어 나간다. 하나의 결말과 시작을 담은 이 글은 지금 이 순간의 나를 단단하게 만들어줄 거다.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한 생각을 지워주고, 모든 걸 지금이라는 시간에 쏟아붓는다. 결말과 시작이 함께 만나는 지금을 즐기자. 얼마나 행복한 순간인가? 이곳에는 뒤에 대한 후회도 앞에 대한 두려움도 없다. 오로지 지금과 행복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