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주목 받는 인, 문학
한강의 노벨상 수상에 힘입어
얼마 전, 한강 작가가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아시아 여성 최초 노벨 문학상이라니, 실로 기념비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나는 지금 이 시점에서 그가 노벨상을 수상한 것에 대해 더 깊은 의미를 부여하고 싶다.
무려 폭력과 위계를 고발하고, 거기에 육식 문화가 얽혀 있음을 직시한 페미니즘 소설이 전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지금도 정치적인 문제들을 덮기 위해 엘리트들이 안간힘을 쓰고 있는 상황에서, 대한민국 역사의 아픔을 담은 소설을 그려낸 작가다. 경제는 선진국이지만 시민 의식은 아직 한참 부족한 이 대한민국에서 말이다. 과연 세계가 그의 소설에 주목해주지 않았다면 그가 고발하는 내용이 이렇게 많은 사람들에게 읽힐 수 있었을까.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한 이야기를 담은 글로 노벨상을 수상했다는 사실이 평범한 여성인 나에게는 너무나도 반가운 일이다.
한강의 채식주의자는 2007년에 출간된 책이다. 무려 17년 전에 육식과 가부장제, 폭력, 위계 사이 교차점을 짚어내는 에코페미니즘 소설을 출간했다니. 한강은 2024년에도 이해 받기 힘들 만큼 어려운 주제를 그 시기에 벌써 풀어낼 정도로 시대를 앞서가는 용감한 작가다. 그의 소설을 통해서라도 더 많은 사람들이 ‘타자의 살을 의식 없이 취하는 것’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 볼 수 있기를 바란다.
다음으로는 이 시대에 다시 “글”이라는 매체가 조명 받고 있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사실 영상이나 그림, 게임 등 다양한 매체와는 달리 “글”은 사람들에게 왠지 만만한 대상으로 여겨지곤 한다. 기술이 필요 없고,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글은 매우 제한적인 콘텐츠다. 기술이 필요 없다는 것은 다르게 말해 기술의 힘을 빌릴 수 없음을 의미한다. 이미지를 통해 바로 전달하고자 하는 바를 보여줄 수 있는 다른 시각적 매체와는 달리, 글은 오로지 문자 하나로만 승부해야 한다. 독자들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바를 글자로만 설명하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운 작업이다. 장면이 명확하게 그려지지 않거나, 문장이 몰입감을 도리어 방해하게 된다면 말짱도루묵이다.
자본과 기술, 기계의 힘에 이목이 집중되는 현대 사회에서, 빠르고 자극적인 흐름으로 사람들의 시선을 이끌지 못하면 실패하는 현대 사회에서, 글은 돈도 기술도 필요하지 않기에 때론 뒤처지는 것, 아무나 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특히나 대한민국에서는 “글”은 콘텐츠로 쳐주지 않는다. 글 그거 아무나 쓰는 거 아닌가, 하는 마인드가 깔려있는 것 같다. 글을 쓰는 능력은 콘텐츠 제작 능력으로 인정받기 어렵다. 적어도 내 경험으론 그랬다.
하지만 글은 오로지 인간의 힘만으로 완성해야 하기에 그 어떤 것보다도 가장 인간적인 매체다. 인간의 노력이 가장 많이 들어갈 수밖에 없는 매체다. 글쓰기는 작가의 펜대 하나에 모든 것이 결정되는 신중한 작업이다. 메시지를 다루는 사람의 역량을 가장 잘 드러내는 것이 글쓰기다.
또한 글은 매우 역설적이다. 아무것도 보여줄 수 없기에 무엇이든 보여줄 수 있다. 제한적인 콘텐츠이기에 무제한으로 확장시킬 수 있다. 상상하는 모든 것을 기술의 제약 없이 표현할 수 있는 게 바로 글이다. 이야기를 만드는 데에 필요한 건 전적으로 인간, 그뿐이기 때문에 가능하다.
글은 빠르게 망막을 스치고 지나가는 대신, 우리의 대뇌피질에 박혀 천천히 또 하나의 세계를 그려낸다. 한 장씩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차곡차곡 벽돌처럼 쌓여 견고하고 단단하다. 글만이 줄 수 있는 힘의 특징이다.
이 시대에 사람, 문학, 그리고 인문학이 다시 주목 받을 수 있다는 것은 기쁜 일이다. 이번 일을 계기로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좋은 글이 더 많아지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