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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의 도시, 달랏 쏘댕기기

시골부부의 베트남 자유여행기 12

by 심웅섭

12월 22일, 일 년 중에 밤이 제일 길다는 절기, 동지다. 한국은 영하 15도를 밑도는 맹추위가 기승이고 폭설까지 내려서 길이 막히니 얼어 죽느니 난리다. 나 역시 아들에게 턱 하니 맡겨두고 온 집이 걱정이다. 청소는 잘하고 직장 잘 다니는지, 고양이 두 마리는 별 탈 없는지, 시골 주택이니 무엇보다 수도가 얼지는 않을지....., 그러나 앉아서 걱정한다고 도움 될 것도 아니니 눈 질끈 감고 현재 이 순간, 이 공간에 집중하기로 마음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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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랏은 북위 12도, 해발은 1500m 정도에 위치한다. 기후학적으로 보면 아열대 고원기후, 기온이 일 년 내내 큰 변화 없이 춥지도 덥지도 않은 기후지역이다. 고등학교 때 열대우림부터 툰드라까지 여러 가지 기후들을 배우면서 가장 부러웠던 기후가 바로 이런 기후다. 위도가 낮다는 말은 사계절의 차이가 거의 없이 덥다는 뜻인데 고도가 높아서 시원해지니 이런 기후가 형성된다고 보면 된다. 이런 기후 탓에 프랑스 사람들이 달랏을 휴양지로 삼았고 커피와 포도재배를 시작했단다. 오늘날 이곳이 베트남에서 유명한 아라비카 커피산지이며 와인 생산지라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런데 커피와 와인에 못지않게 많이 재배되고 있는 것이 있으니 그게 바로 꽃이다. 달랏시에서만 약 5,000 농가와 30여 개 기업이 장미, 미모사, 난초 등 다양한 종류의 꽃을 재배하고 있으며 2005년부터는 해마다 11-12월에 꽃축제가 열리고 있다. 내가 머물고 있는 올해 역시 제9회 달랏 꽃 축제가 11월 1일부터 12월 31일까지 두 달 동안 열리고 있다.

실제로 거리를 걷다 보면 길과 공원, 자투리 한 뼘 공원 등에 아기자기한 꽃들이 도시 전체를 아름답게 하고 있다. 시장에 가 보면 꽃집이 유난히 많다. 여러 가지 꽃들이 있지만 특히 국화가 많이 보인다. 우리나라에서는 국화가 주로 장례의식에 쓰이지만 이곳에서는 그렇지 않은 모양이다. 꽃을 좋아한다는 것은 그만큼 마음이 밝고 행복하다는 뜻이리라. 꽃을 보면서 누구를 욕하거나 꽃을 보면서 세상을 비관하고 미워하는 일은 좀처럼 가능하지 않기 때문이다. 호이안에서도 꽃을 가꾸는 사람들이 많더니만 이곳은 아예 꽃의 고장이라니 그만큼 행복한 사람들의 땅이 베트남이요, 그중에서도 달랏이 으뜸인가 싶다. 여행자도 그 흐름에서 뒤처지면 안 될듯하여 예쁜 분홍색 국화다발을 사다가 호텔방에 장식했다. 꽃값은 한 송이에 2만 동, 약 1000원 정도다.


좀 이른 시간에 케이블카를 타고 죽림선원으로 향한다. 케이블카야 그리 특이할 것 없지만 높은 하늘에서 달랏 시내를, 그것도 오토바이 소리 없이 조망할 수 있으니 그것으로 만족이다. 죽림선원까지 왕복 10만 동.

죽림선원에 도착했다. 우선 눈에 띄는 것은 아름다운 꽃 정원과 그 정원들 거니는 관광객들, 그리고 조용히 향을 피우고 참배하는 현지민들도 보인다. 나도 대충 사진을 찍고 부처님을 만나러 대웅전으로 향했다. 그런데 부처님의 모습이 우리와는 상당히 다르다. 우선 우리의 부처님은 약간 단순화, 추상화해서 자비로운 모습 혹은 선정에 든 모습을 형상화했다면 이곳의 부처님은 눈을 똑바로 뜨고 내려다보는, 다소 사실적인 모습이다. 또한 우리의 부처님이 남자라는 느낌이라면 이곳의 부처님은 여자라는 기분이 든다.

3배를 하고 잠시 법당에 앉아 호흡을 가다듬는다. 남의 집에 가면 그 집 어른에게 먼저 인사를 하고 노는 것이 예법이련만, 베트남에 와서 열흘이나 지났으니 너무 늦었나 싶다. 뒤늦은 문안 인사를 올리고 뭔가 소원원이나 빌어볼까 생각해 보니, 막상 빌 소원이 없다. 부부가 모두 나이에 비해 건강한 몸으로 여행하고 있으니 특별히 건강을 빌 것도 아니고, 은퇴백수가 갑자기 부자 되게 해 달라고 비는 것도 우스꽝스럽다. 아이들이야 잘 되길 바라지만 멀리 베트남의 부처님에게 그것까지 부탁하려니 좀 염치없다 싶다. 결국 건강하고 행복하게 여행할 수 있게 허락해 주신 데 대한 감사의 기도를 드리는 것으로 참배를 마무리한다.


참배를 마치고 아내와 부속건물 아래에 주저앉았다. 은은한 꽃 향기 속에 어디선가 향기로운 음악소리가 은은하게 들린다. 마치 파이프 오르간처럼 깊은 울림의 소리, 그러나 훨씬 더 청아한 소리가 조금은 불규칙적이면서도 조화롭게 내 귀를 간지럽힌다. 아내도 그 소리를 듣고 신기해한다.


"이건 처음 듣는 음악인데, 남방 불교에서 참선할 때 쓰는 음악인가?"


"글쎄, 아마 우리나라 절에서 독경소리를 틀어 놓듯이 명상음악을 틀었나 보지"


그런데 자세히 살펴보니 머리 위에 매달린 파이프 모양의 풍경이 바람에 흔들리는 소리다. 자세히 살펴보니 길이가 다른 알루미늄 파이프를 대여섯 개 매달고 그 가운데에 추가 위치한 형태다. 한국에서도 인테리어 용으로 흔히 달곤 하는 풍경인데, 그보다 훨씬 커서 그런지 소리가 무척 깊고 울림이 있다. 바람에 따라 무작위로 낸 소리가 마치 연주인 것처럼 조화롭게 느껴지다니, 이 정도의 소리를 낼 수만 있다면 나도 하나 가져가고 싶다. (나중에 알고 보니 중국산 풍경이었고, 귀국 후에 인터넷을 통해 두 개나 사서 달았다)

오토바이로 시내를 조금 벗어나면 다딴라 폭포에 닿는다. 이곳에서 왕복 10만 동짜리 티켓을 구매하고 루지라는 슬라이드 레일로 폭포로 향한다. 사실 우리 부부는 이런 놀이기구나 탈 것들을 그리 좋아하지는 않는다. 아내는 약간의 고소공포에 속도 공포증도 있어서 신혼 때 한두 번 놀이기구를 탄 이후로는 절대 탈 일이 없다. 나 역시 자연을 즐기는 편이지 이런 인공시설이나 장치를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폭포 역시 큰 기대를 하고 온 것은 아니고 주변에 있다니까 한 번 가볼까 하는 마음으로 오게 됐다. 그런데 걸어서 폭포로 가는 길은 보이지 않고 집라인이니 루지니 하는 놀이기구만 있으니 선택의 여지가 없다.

슬금슬금, 혹시라도 속도가 붙으면 아내가 야단을 치니 눈치 보며 천천히 내려간다. 뒷 팀들이 속도를 즐기기 못해 자칫 민폐일 듯 도 싶은데 다행히 여자가 소리를 지르는 걸로 봐서는 그녀도 아내와 비슷한 것 같아서 다행이다. 10여 분만에 도착해 보니 규모도 작고 평범한 폭포가 눈에 띈다. 높이는 20m쯤이고 갈수기라서 그런지 수량도 그리 많지 않다. 다딴라 폭포는 대부분의 여행 안내서나 인터넷에서 달랏을 소개할 때 빼놓지 않는 관광지이다. 그런데 우리 부부의 반응은 글쎄, 이게 왜 유명한지 갸웃하는 정도다.


달랏에 온 여행자들이 절대로 빼놓지 않는 곳이 있다. 바로 달랏 기차역. 이곳은 먼저 그 역사성만으로도 의미가 있다. 1938년 프랑스 건축가가 설계했다는데 인근 소수민족의 건축방식과 아르데코라는 스타일을 채용했단다. 그 의미를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현지의 전통건축양식과 프랑스의 방식을 절충한, 그러니까 식민지 식의 건축을 했다는 뜻이리라. 특이한 것은 역사에 들어가는데 입장료를 받는다는 것이다. 비록 값은 10,000동이라지만 아직도 기차역으로 쓰이고 있는 상황에서 입장료를 받는다니 약간 당황스럽다. 들어가 보니 열차시간이 두 시간이나 남았다. 오래된 증기 기관차와 객차는 달랏 역사에 전시되어 있고 객차는 카페로 활용되고 있다. 이곳의 열차는 현지민들의 운송수단은 아니고 7km 떨어진 짜이맛까지 관광객들을 실어 나르는 한 칸짜리 협궤열차이다. 한국에도 수려선과 수인선이 협궤열차였다. 버스보다 좀 넓은 기차가 시골 아낙들과 장 보따리를 잔뜩 싣고 철컥철컥 흔들거리며 수원에서 인천사이로, 염전과 소금창고를 지나 오가곤 했다. 그 수인선 열차를 타 본 것이 80년대 초반쯤이니 40여 년 만에 협궤열차를 타 본다. 열차는 내부를 나무로 꾸며 놓았다. 의자도 창문도 벽과 천장도 모두 클래식한 느낌이 물씬 풍긴다. 조그만 미니 디젤기관차가 달랑 한 칸 객차를 끌고 다닌다. 기차가 출발했다. 그런데 열차가 도심을 벗어나 외곽의 주택가를 지나고 얼마 되지 않아 종점인 짜이맛 마을에 닿는다. 창밖을 멀리 바라보며 달리는 기차여행을 기대했다가는 자칫 실망할 수도 있겠다 싶다. 대신 오래된 실내 장식과 철컥철컥 흔들리는 기차의 추억을 떠 올리는 용도로는 훌륭하다 싶다.


시끄러운 오토바이 소리를 들으며 린프억 사원으로 이동한다. 돌아갈 때까지 40분의 시간이 주어져 있다. 처음에는 40분이 너무 짧아서 어쩌나 싶었는데 막상 와보니 충분하다. 사원은 도자기와 유리 조각으로 표면이 화려하게 모자이크 되어있다. 그러나 왠지 영성이 느껴지지는 않는 데다가 미적으로도 감동스럽지가 않다. 그저 화려하다, 특이하다, 애썼다 하는 정도의 느낌이다. 대부분의 여행서와 리뷰에서 칭찬을 하고 있으나 적어도 우리 부부의 안목으로는 별 거 없다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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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랏 야시장은 어떨까, 저녁 6시쯤 숙소를 나서서 야시장으로 향한다. 구글 맵을 따라서 상가와 골목길로 2km를 걷는다. 아직 야시장이 멀었는데, 벌써부터 많은 사람들이 나와서 길거리 음식들을 먹으며 놀고 있다.

가족단위로 나온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은 친구와 연인끼리 나온 젊은이들이다. 우리 부부에게는 여행하기 딱 좋은 날씬데, 춥다고 패딩 점퍼에 털모자까지 쓴 모습들이 재미있다. 야시장에 도착해 보니 광장이 불빛과 사람들로 그득하다. 대부분은 옷을 파는 노점상과 보따리장수가 많고 길거리 음식들도 눈을 끈다. 계단에는 천막을 좁게 잘라서 깔판으로 깔고 그 위에 사람들이 앉아 있다. 계단에 앉았으니 모두들 같은 방향, 광장을 바라보게 된다. 광장에서 무슨 공연이라도 하는 걸까 싶어서 내려다보니 그럴 상황도 아니다. 궁금해서 젊은 커플에게 물어보았다. 그냥 앉아서 먹고 이야기하는 곳이란다. 조금 있으니 젊은 상인이 다가와서 음료수를 주문받는다. 결국 이 계단은 상인들이 자리를 잡아 음료수와 간식을 파는 곳이었다. 약간 낯설기는 하지만 돈도 없고 갈 곳 없는 젊은이들이 이런 광장에서 데이트를 하는 것이 나름 괜찮을 듯싶다.


배는 고프지 않지만 그래도 야시장에 와서 그냥 갈 수는 없지, 노점상에서 구운 옥수수 하나를 골랐다. 이미 구워진 녀석을 다시 숯불에 데워준다. 베트남에서 길거리 음식들은 예외 없이 숯불로 조리를 하거나 데워서 팔고 있다. 좁은 행상 리어카에 숯불을 피운 모습들이 아슬아슬하기도 하지만 어쨌든 숯불구이를 먹을 수 있으니 나쁘지 않다. 그런데 막상 받아 든 옥수수를 한 입 베어무는 순간 실망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나라에서 먹던 달착지근한 맛이 아니라 맹물냄새가 나는 맛이다. 지난번에 다낭에서 군고구마를 사 먹었을 때도 비슷한 느낌이더니만, 베트남에서는 옥수수나 고구마가 아니라 열대과일이 답인가 싶다.


이리저리 쏘댕기고 나서의 결론은, 유명세에 비해서 달랏여행은 뭐 그저 그렇다 정도다. 환상적인 기후와 예쁜 건물들, 햇살이 반짝이는 호숫가, 비싸지 않은 물가에도 불구하고 만족하지 못하는 것은 무엇일까? 아무리 생각해 봐도 그건 우리 부부의 취향이 독특해서라는 결론밖에는 나오질 않는다. 오토바이 물결 속에서 오토바이를 타고 정신없이 이동해서 유명한 관광지를 둘러보고 사진 찍고, 마치 숙제 치르듯이 혹은 게임을 하듯이 하나하나 확인하는 관광패턴이 우리 부부에게 맞지 않는 것이다. 자연 속에서 걸을 수 있는 환경과 시끄럽지 않은 숙소, 현지냄새 물씬 풍기는 장터와 먹을거리가 필요한데 도시관광을 하고 있자니 2%가 아니라 20%가 부족한 느낌이다. 어쩔 수 없다. 조금 더 시골마을로, 베트남 깊숙이 들어가 보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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