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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글과 영어가 왜 이래?

은퇴부부의 베트남 자유여행 11

by 심웅섭

그랩택시를 불러서 새로운 호텔로 이사를 했다. 지금 숙소가 깔끔하고 전망이 좋긴 한데, 문제는 오토바이가 없으면 걷거나 산책할 수가 없다. 호수가 가까운 달랏 대학교 부근으로 옮기기로 했다. 그런데 이사 과정이 만만치 않다. 스마트폰에서 그랩을 이용해서 택시를 타는 것까지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문제는 내릴 때 발생했다. 택시비로 83,000동이 나왔는데 내게 잔돈이 없어서 50만 동짜리 고액권을 내밀었다. 택시 기사가 난감해하며 잔돈이 없으니 호텔에서 바꿔달란다. 물론 제스처로 눈치로 통한 대화다. 그러마고 호텔로 들어서니 리셉션에 젊은 남자 한 명이 무표정하게 앉아 있다. 대충 짧은 영어로 오늘 체크인하러 온 손님이다, 택시비 때문에 그러니 잔돈을 바꿔달라고 말하며 지폐를 흔들었다. 그런데 이 친구 얼른 돈은 안 바꿔주고 한참이나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린다. 기다리는 택시기사 생각에 조급해서 다시 한번 돈을 바꿔달라고 들이미는 순간, 호텔 직원도 스마트폰을 내게 들이민다. 뭔가 싶어서 들여다보니


'May I Help You?"


으악, 순간 속이 터져버리는 줄 알았다. 아니 지금까지 내가 떠들고 지폐를 흔들어 댄 건 다 어디 가고 이제 와서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라니. 결국 내 말은 조금도 알아듣지 못했을 뿐 아니라 뻔한 상황조차 파악하지 못했다는 뜻이다. 결국 구글 번역기의 도움으로 잔돈을 바꾸고 방을 배정받는 데는 성공은 했다. 물론 지루한 시간이 흐르고 상당 부분 나의 인내심을 소진하고서 말이다. 그러는 사이 한 마디도 하지 않아서 나는 직원이 혹시 영어를 못하는 게 아니라 말을 못 하는 거 아닌가, 의심이 드는 중이었다. 그런데 체크인이 끝나자 직원은 방 열쇠를 들고 앞장서며 짧고 빠른 영어를 던졌다.


"Follow Me"


그가 아는 유일한 영어였는지 아주 자신 있게 한마디, 벙어리는 아니었던 셈이다.


베트남에서도 다낭과 호이안은 그래도 영어가 통하는 사람이 많았다. 어쨌든 호텔이나 카페나 관광객들을 상대하는 곳이니 기본적인 소통은 가능했던 것이다. 그런데 달랏은 분위기가 좀 다르다. 우선 관광객들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 달랏 기차역이나 잘 알려진 관광지에 가면 관광객들이 눈에 띄지만, 평소에 시내에서는 여간해서 보기 어렵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영어가 통하지 않는 경우가 종종 있다. 소규모 호텔이나 식당, 카페에서 영어가 전혀 통하지 않는 경우가 제법 있는 정도다.

IMG_2563.JPG

영어가 안 통한다고 실망할 필요는 없다. 이 시대의 전지전능하신 우리의 신, 구글님이 계시지 않은가? 실제로 3년 전 스페인과 포르투갈을 여행하면서 구글의 위력을 실감했었다. 아무리 낯선 골목길에서라도 구글만 켜면 정확한 지도가 뜨고 내 위치와 갈 곳의 방향, 경로가 표시된다. 어디로 몇 m 걸어가서 몇 분 후에 오는 몇 번 버스를 타고 어디에서 내리는지까지 실시간으로 빠짐없이 알려주는 구글님, 현지인도 모르는 지름길까지 척척 안내해 주니 이건 도대체 길을 잃기가 더 어려울 정도였다. 길 안내뿐이랴, 아무 데서나 검색하면 주변의 맛집과 숙소와 카페를 척척 알려주고 사진과 평점까지 띄워주니 세상 편한 게 구글이다. 말이 통하지 않아도 걱정이 없다. 구글 번역기를 켜고 대화모드로 설정하면 한국말과 스페인 말이 자동으로 통역된다. 동시통역이 아니라 약간의 시간이 걸리는 후시통역이기는 하지만 공짜로 채용한 통역사 실력이 이 정도면 감지덕지할 지경이다.


그런데 베트남에 와 보니 이 구글님이 좀 버벅거리신다. 우선 길 찾기에 가끔씩 오차가 있다. 분명히 주소나 건물을 입력하고 찾아갔는데 보이지 않는 경우가 두세 번 발생한 것이다. 위치가 잘못됐거나 혹은 이사를 갔거나인데, 둘 다 전능하신 구글님이 놓치면 안 되는 정보 아닌가. 더 황당한 건 대중교통 정보가 검색이 안 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서 달랏에서 인근 도시 바오록으로 이동하기 위해서 버스로 조건을 설정하고 경로검색을 해 보면 'No Result"라는 문구가 덜렁 뜬다. 버스가 없거나 모른다는 뜻이다. 결국 버스 시간을 알기 위해서 하루 전날 직접 가서 확인해야 했다, 왕복 한 시간을 허비해 가면서. 통역도 그렇다. 대화모드로 통역을 시도해 보니 제대로 안 된다. 이상하게도 한국말을 이해하는 과정부터 버벅거린다. 차라리 문자를 타이핑하는 게 정확하다. 이러니 우선 영어를 던져 보고 안되면 손짓발짓으로 대화를 시도하고 마지막 방법으로 스마트폰을 꺼낸다. 사실 조금 번거로울 뿐이지 여행하기에 굉장히 불편하지는 않다. 따지고 보면 나는 남의 나라에 구경하러 찾아온 손님 아닌가, 손님이 주인에게 너희들 왜 영어를 못하냐고 투덜거릴 계제가 되느냐 말이다. 더구나 미국과의 오랜 전쟁을 치러 스스로를 지켜낸 베트남 아닌가? 영어와 구글이 이 나라에서 빵빵 터지고 잘 굴러가면 그게 더 이상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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