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혹

엘 아쎄보 - 까까벨로스

by 심웅섭

첫눈

엘 아세보 –까까 벨로스 11월 14일


알베르게의 기상시간은 거의 정해져 있다. 여러 순례자들이 함께 자지만 새벽부터 깨서 움직이는 사람은 없고 대충 6시 반에서 일곱 시가 기상시간이다. 침구를 정리하고 배낭을 싸 놓고 샤워를 하고 밥을 먹고......, 8시 출발 전에 모든 걸 끝내야 하니 사실 한 시간 반의 시간이 그리 여유 있지도 않다. 바쁘게 출근 준비하는 도시 직장인과 다를 바가 없다.

그런데 바쁘게 채비를 하고 알베르게의 출입문을 열었는데 허걱, 어둠 속에 눈이 내린다. 아니, 스페인도 눈이 오나? 스페인은 한국보다 따뜻하다고 생각했는데 꼭 그렇지도 않은가 보다. 11월 14일이면 한국에서도 첫눈 오기에는 빠른 시기인데, 그럼 스페인이 더 춥다는 말인가? 출발하기 전, 계절에 맞는 옷을 준비하려고 스페인 기후를 검색한 적이 있는데 뭔가 하나로 딱 잡히지를 않았던 기억이 떠오른다. 땅덩어리가 넓고 이렇게 변화무쌍하니까 사실 완벽하게 준비하기가 어렵겠구나 싶다. 잠시 기다렸다가 용기를 내어 문을 열고 나섰다.


올해의 첫눈을 스페인에서 만났다. 그것도 겨우 조금 날리는 정도가 아니라 나무와 지붕과 길을 모두 하얗게 뒤덮은 제대로 된 눈을 말이다. 다행히 아세보에서부터는 길이 넓다. 사실 순례자를 위한 오솔길은 따로 있는데 미끄럽고 질퍽거리니까 이걸 피해서 아스팔트 길을 걷는 중이다. 차도 순례자도 걸어 다니는 주민들도 거의 보이지 않는다.



예약한 알베르게에 도착했다. 깔끔하고 주방도 큼직한데 순례자는 한국 신혼부부와 달랑 두 팀이다. 신혼여행으로 산티아고 순례를 오다니, 참 대단한 부부다.



1990년 3월 31일, 우리 부부는 결혼을 했다. 결혼식이 끝나고 우리 부부는 평상복에 배낭을 둘러메고 완행열차를 타러 충주역으로 갔다. 조치원을 거쳐 부산에서 하룻밤 자고 제주도까지, 무전여행 같은 신혼여행을 떠난 것이다. 당연히 예약 같은 건 없었다. 내가 알고 있는 가장 낭만적인 여행, 늘 해보고 싶었던 여행을 신혼여행으로 선택하지 못할 이유가 없었다.



부산에서는 교사로 근무하는 친구를 만났다. 저녁을 먹고 자취방에서 소주를 마시고, 밤늦게 호텔방을 찾으니 방이 없단다. 내일이 군대 입대하는 날이라서 꽉 찼단다. 친구 자취방에서 잘까, 그래도 신혼 첫날밤이니 그럴 수는 없지 하고 찾은 것이 여인숙이다. 그 역시 내가 생각하는 최고의 낭만이었을까? 나는 별생각 없이 잘 잤는데 아내는 바퀴벌레 나올까 봐 불안했다고 아직까지 말한다.


다음날 아리랑 호를 타고 제주도로 갔고 제주도에서도 택시가 아니라 버스를 타거나 걸으면서 신혼여행을 했다. 성산 일출봉, 이름 모를 오름, 비를 맞으며 배낭을 메고 걷던 서귀포 부근 어디쯤......



지금 생각해보면 좀 오버했나 싶다. 남들 눈치 보지 않고 자기 식대로 살겠다는 주체사상(?)은 그렇다 치더라도 꼭 여인숙에 시내버스로 다녀야 하느냐는 거다. 그러나 후회한다는 말은 아니다. 만일 내가 지금 다시 신혼여행을 간다 해도 준비된 신혼부부용 패키지와 호텔 숙박을 선택하지는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저 부부처럼 이곳, 산티아고 순례길에 있지 않을까?



까까 벨로스 – 베가 데 발 카라쎄 11월 15일



어제 택시를 탄 덕분에 일찍 도착해서 푹 쉬었고, 옷들도 세탁기에 건조해서 보송보송 챙겨 넣었고, 발목도 씽씽해졌으니 이제 못 갈 곳이 없다. 그런데 약간의 변수가 떠올랐다. 신혼부부의 정보에 의하면 지금 우리가 향하는 발 카라쎄에서 오쎄 브리오까지 가려면 커다란 산을 넘어야 하는데 이곳이 폭설로 두절됐단다. 눈이 무릎까지 빠지고 버스도 못 다니고 체인을 장착한 차들만 겨우 넘는단다. 젊은 부부도 어찌할지 몰라서 고민 중이란다. 까짓 거 고민은 산 밑에 가서 하기로 하고 출발했다.



마을을 벗어나고 큰 계곡 사이로 난 찻길을 따라 순례를 계속한다. 다행히 지나는 차는 거의 없다. 오늘도 비가 제법 온다. 높은 산 위에서는 눈이 내리겠지. 빗속을 걷다 보니 조그만 순례자 둘이 앞서간다. 따라잡고 보니 한국에서 온 남자 초등학생이다. 체험학습을 받아서 태권도 선생님과 함께 왔고 선생님은 앞서서 걷는 중이란다. 내가 산티아고에서 만난 최연소 순례자다. 대견하고도 부럽다.



조그만 산 밑 마을, 발 카라쎄에 도착했다. 공립 알베르게에 도착해보니 문은 열려있는데 사람이 없다. 나중에 올 테니 알아서 침대를 골라서 자라는 안내문이 쓰여 있다. 방에 들어가 보니 이게 웬일, 한국 젊은 순례자들만 한 방 가득이다. 대부분 아는 얼굴들, 밥을 나눠먹었거나 최소한 인사라도 나눈 사이들이다. 젊은이들 입장에서 노부부가 끼는 게 그리 달갑지 않을 수도 있으려나 싶지만 어쩔 수가 없다. 방도 좁고 침대도 낡았는데 한국 사람들끼리 다닥다닥 붙어 있으니 아늑한 느낌이다. 오랜만에 한국말로 수다를 떨다가 편안하게 잠들었다.


발 카라쎄 (Valcarace)– 뜨리아까스뗄라(Triacastela), 11월 16일



한 방에서 잔 한국 사람이 우리 부부를 포함해서 7명, 연장자답게 아침을 사겠노라고 큰소리치고 카페에 갔는데 커피에 토스트 정도의 간식만 준비돼있다. 돈은 굳었지만 폼은 좀 구겼다.



아침식사를 하면서도 주된 화제는 언덕을 넘어 폰 피리아까지 걸을 것이냐 말 것이냐다. 간밤에도 눈이 제법 내렸고 아직도 그치지 않고 내린다. 순례를 하는 한국 젊은이들끼리 단톡 방을 만들어서 서로 정보를 주고받는데, 앞서 고개를 넘어간 멤버들에게서 걸어 넘지 말라는 톡이 왔다는 소식도 들린다. 넘어야 할지, 하루 더 쉬어야 할지, 혹은 택시를 타야 할지 모두들 결정을 못하고 있다. 나는 좀 느긋하다. 발목 부상 이후 잔뜩 비겁해진 나는 이미 아내를 설득해서 택시 번호까지 확보한 터이다.


그런데 일행 중에 남매가 맘에 걸린다. 중학생 나이라는 남동생과 스무 살이 채 되지 않은 누나가 함께 순례 중인데 덩치에 비해 어린 나이라서 놀랐던 적이 있다. 둘이 다 학교에 있을 나이인데 산티아고 순례 중이니 무언가 힘든 인생의 고개를 넘고 있나 보다. 한편으로는 스페인까지 나선 용기가 대단하고 누나와 남동생이 함께 손잡고 넘고 있으니 고맙고 든든하기도 하다. 문제는 둘 다 많이 지쳐 보이는 데다가 옷이 얇다는 거다. 둘 다 패딩도 아닌 얇은 바람막이 점퍼를 걸치고 있다. 뜬금없는 제안을 했다.


“옷이 너무 얇아서 추울 텐데, 우리 부부랑 택시로 산을 넘는 건 어때?

뭐 어차피 택시비는 둘이 타나 넷이 타나 마찬가지니까, 우리가 내고......"


남동생의 동공이 심하게 흔들린다. 많이 힘든가 보다.

누나가 대답했다.


“거절하기 힘든 제안이네요. 제가 동생이랑 상의해서 알려 드릴게요”


아니 뭐, 상의하고 자시고 할 게 뭐 있나? 당연히 같이 가겠지. 그런데 잠시 후의 대답은 정중한 거절이다. 좀 춥고 힘들겠지만 그냥 산을 넘어보겠단다.


순간 가슴속에서 뜨거운 무엇이 뭉클하고 올라온다. 그래, 너희들 대단하다. 이 먼 스페인 순례길까지 와서 마음도 지치고 몸도 추울 텐데, 거절하기 힘든 달콤한 유혹을 정중하고 단호하게 거절할 수 있다니. 눈 쌓인 언덕뿐이 아니라 앞으로 다가올 인생의 어떤 어려움도 너희에게는 문제가 안 되겠구나. 쓸데없는 호의로 남의 인간승리 휴먼다큐를 싸구려 미담 프로그램으로 만들 뻔했구나. 결국 두 남매는 눈을 헤치고 고개를 넘었다. 어쩌면 이 날이 남매에게는 평생 동안 힘이 되어 줄 승리의 기억으로 남을지도 모를 일이다.


승리의 기억, 힘든 상대나 엄청난 고난을 참고 이겨 낸 승리의 기억은 그 자체만으로도 힘을 준다. 비슷한 어려움에 맞닥뜨릴 때 기죽지 않고 담대하게 맞설 수 있는 용기를 주기 때문이다. 그리고 대부분의 경우 작은 승리의 기억이 더 큰 승리로 이끌기도 한다. 마치 적은 양의 바이러스를 백신으로 맞고 나면 더 큰 바이러스를 이기는 것처럼 말이다. 남매는 바야흐로 평생 효과가 지속될 귀한 승리 백신을 맞으려는 찰나였고, 나는 그걸 못하도록 유혹했고, 남매는 그 유혹을 뿌리친 것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남매가 내 유혹을 뿌리침으로써 갑자기 내 역할도 그리 나쁘지 않은 캐릭터가 됐다는 점이다. 주인공의 승리를 더욱 빛나게 하기 위한 장치, 춘향전으로 치자면 수청을 요구한 변사또나 심청전의 공양미를 요구한 스님처럼 말이다.


눈길을 헤치고 택시는 언덕을 오른다. 제법 무릎까지 빠질 정도의 폭설에 아직도 눈은 계속 내리고 있다. 제설작업을 한 덕에 택시는 별문제 없이 달릴 수 있지만 간간히 지나가는 순례자들은 힘들어 보인다. 정상을 지나서는 오 세 브리오라는 마을이 보이고 이곳에서 출발한 듯한 한국 단체 순례자들도 보인다. 여러 차례 마주치고 식사도 같이하다 보니 이젠 뒷모습만 봐도 누군지 짐작할 정도다. 좀 미안하다. 남들은 다 눈을 헤치고 고개를 넘는데 나는 무서워서 택시를 타고 간다. 그리고 좀 창피하다. 걸어서 넘자는 아내를 온갖 이유를 대 가며 설득해서 택시를 태운 것이 말이다.


트리아까스뗄라는 길옆의 작은 마을이다. 그나마 작은 마트와 몇 개의 알베르게, 카페가 있어서 머무는 데는 아무 문제가 없다. 정갈한 숙소에서 맛있는 식사도 해 먹고, 뒤늦게 도착한 한국 순례자들과 음식과 수다를 나누면서 몸과 마음을 푹 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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