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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정심 Apr 18. 2023

호르몬제를 복용하다

나의 갱년기에게

거실에 있는 통창으로 우두커니 봄을 바라보고 있었다. 현관문만 열면 따스한 바람과 봄 향기를 느낄 수 있는데도 나는 투명한 유리를 사이에 두고 밖으로 나갈 생각을 못했다. 집안이 내 세계의 전부인 듯 깊은 동면에 들어간 개구리가 되었다. 며칠 내 일어난 여러 가지 일들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고 나를 괴롭히고 있었다.


  아침 식사로 가족들에게 달걀부침과 식빵, 우유를 주려고 냉장고에서 사과잼을 꺼냈다. 여느 때처럼 사과잼 뚜껑을 양손으로 잡고 돌리는데 갑자기 손목에 심한 통증이 왔다. 결국 사과잼 뚜껑 열기를 포기하고 아들 녀석에게 건넸다. 그날 이후로 손목뿐 아니라 양팔을 어깨 위로 올리는 것도, 돌리는 것도 불가능했다. 몇 년 전부터 약을 먹어도 골밀도 수치가 계속 떨어져 신경이 쓰였는데 이제는 팔도 못 쓰게 되는 건가 싶어 덜컥 겁이 났다.


  사무실에서는 몇 가지 일을 처리하다 보면 집중력이 현저하게 떨어졌다. 다른 날보다 신경 쓸 일이 많은 날엔 머릿속이 텅 빈 것처럼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았다. 메일을 보내면서도 날짜나 요일 등을 실수하는 일이 많아지고 아무리 메모를 철저히 해도 처리할 일을 빼먹는 경우가 종종 생겼다. 게다가 소소한 스트레스라도 받는 날엔 머릿속에 밤새도록 형광등을 켜놓은 듯 신체가 낮과 밤을 구분하지 못했다. 몸은 한없이 피곤했으나 긴 밤을 꼬박 새우는 날이 많아졌다. 눈을 뜬 채로 새벽을 맞으면 불안감까지 엄습해왔다.


  예전부터 있던 근육통은 더욱 심해졌다. 자리에 누워도 앉아있어도 온몸의 근육이 욱신거렸다. 통증이 심하면 깊은 호흡을 했다. 숨 들이마시고 내쉬고, 숨 들이마시고 내쉬고……. 이렇게 반복하다 보면 약한 통증은 잦아드는 느낌이었다. 통증이 심한 날엔 이마저도 통하지 않았다. 몸속 깊이 박혀 있는 통증이 호흡을 따라 빠져나오기를 기대하는 내 마음을 비웃기라도 하듯 통증은 더욱 거세게 온몸을 휘젓고 다녔다. 통증에 맞서던 나는 패배를 인정하며 결국 무릎을 꿇고 만다. 어느새 나도 모르게 눈물이 뚝뚝 떨어지고 있다.


  허수아비처럼 텅 빈 머리, 한없이 우울한 마음, 불면증과 불안감, 심한 관절통과 근육통, 아무것도 하기 싫은 극심한 무기력. 내 앞에 배달된 갱년기 선물 세트 속의 목록이다. 애초에 선물상자를 받지 않았으면 좋으련만 아쉽게도 나는 선물을 열고 어떻게 처리해야 하나를 고심하는 중이다.



  ‘젊어서 골골하던 사람은 갱년기 증상이 약하게 온대.’ 평소에 잔병치레가 많았던 나는 보건소 다니는 형님의 그 말을 진리인 듯 여겼다. 인터넷에 떠도는 말로도 건강한 사람이 갱년기를 심하게 겪는다는 둥, 몸이 약한 사람은 갱년기를 그냥 지나간다는 둥 비슷한 얘기들이 많았다. 이것은 몸이 아픈 사람을 위로하는 말이었나보다. 나중에 갱년기가 왔을 때는 괜찮을 거야, 그러니까 희망을 품고 건강관리 잘하면서 살아, 라는.


  막상 오십 고개를 가파르게 넘고 보니 젊어서 건강한 사람이 갱년기에도 건강하다, 는 말이 진리인듯하다. 주위를 둘러봐도 젊어서부터 꾸준히 운동하고 사교적인 사람이 갱년기를 좀 더 수월하게 보내는 경향이 많다.

  몸이 아프면 귀가 얇아진다고 했던가. 인터넷에서, 방송에서, 아니면 지인들이 갱년기에 좋다는 것들을 이야기하면 어김없이 구매했다. 식물성 영양제에서부터 홍삼, 석류, 칡즙에 달맞이꽃 종자유까지. 몸의 상태가 안 좋아지는 만큼 하루에 먹는 알약과 건강식품의 개수만 점점 늘어나고 있었다. 월급의 절반을 건강식품으로 날려도 몸 상태는 점점 바닥으로 가라앉았다. 몸의 상태에 따라 마음 역시 한없는 우울 속을 떠다니고 있었다.


  호르몬제 복용을 결정해야 할 시기가 다가온 듯했다. 산부인과에서는 호르몬제 복용을 적극적으로 권유했었다. 나보다 먼저 갱년기를 겪고 있는 형님들이 절대로 호르몬제를 복용하면 안 된다고 신신당부했기에 나는 호르몬제에 관한 생각을 미루고 있던 참이었다. 큰형님이 유방암으로 고생하고 있었는데 원인이 10년 동안 복용한 호르몬제 때문이라고 알고 계셨다. 다른 형님 한 분도 호르몬제 투약에 대한 부정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어 심한 갱년기 증상으로 일상생활을 힘겨워하면서도 이런저런 건강식품으로 버티고 있는 처지였다.


  나는 더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몸에 좋다는 식품을 아무리 섭취해도 축 처진 몸뚱이는 힘을 받지 못했다. 미래의 어느 날 나에게 발병할지도 모른다는 유방암을 걱정하느라 현재의 일상생활을 고스란히 포기하는 인생을 살고 싶지는 않았다. 지금의 삶을 더욱 인간답게 살 수 있도록 도와주는 호르몬제라면 기꺼이 복용하는 쪽을 택하는 게 옳다고 판단했다.


  약을 먹으며 혹시나 유방암에 걸리지나 않을까, 걱정이 많다면 복용하지 않는 게 좋다고 어느 유명 의사가 유튜브 개인 방송을 통해 이야기했다. 나 자신에게 몇 번이고 물어본다. 호르몬제를 복용하면서 유방암 걱정을 하지 않을 자신이 있는가, 물론 대답은 예스, 예스, 예스다. 이것저것 해보고 방법이 없으니 최후의 수단으로 선택한 호르몬제 복용이다. 현재의 생활을 충실히 하기 위해 호르몬제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이미 절실히 느꼈기 때문에 더 이상의 고민이 필요 없었다.     


  병원에서 피검사를 하고 호르몬제를 처방받았다. 근육통과 관절염이 사라지고 몸에 기운이 생기기 시작했다. 마음의 안정도 따라오니 생활에 활력이 생겼다. 모든 게 다 좋으란 법은 없는 건가. 복용 2개월째가 되니 얼굴에 여드름이 심하게 돋았다. 며칠만 지나면 괜찮아지려나 했는데 날이 갈수록 트러블은 더욱 심해져 얼굴 전체로 퍼졌다. 의사 선생님이 호르몬제 부작용이라고 했다. 젊어서 났던 심한 여드름으로 지금까지 얼굴에 흉터를 안고 사는데 나이 들어서까지 여드름을 달고 살기는 싫었다. 내 몸은 호르몬제조차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건가 싶어 다시 우울감에 빠졌다. 나락으로 떨어지는 듯한 마음을 안고 며칠을 보냈다. 의사 선생님의 권유대로 호르몬제를 바꿔보기로 했다.


  이번 호르몬제의 이름은 안젤릭정이었다. 처방을 바꾸니 다행히 여드름이 가라앉았다. 몇 년 동안 고생했던 골밀도 수치도 호르몬제를 복용하면서 올라갔다. 밤에 잠도 잘 잤고 언제 그랬냐는 듯 무기력증도 어디론가 달아나고 없었는데 이번에는 달거리를 하는 것처럼 출혈이 있다는 게 문제였다.


  갱년기가 나를 괴롭히려고 작정했나보다. 호르몬제를 두 번이나 바꿨는데도 이 모양이다. 의사 선생님이 처방전을 바꿔주면서 미리 말씀하셨는데도 영 불편했다. 선생님은 시간이 좀 지나면 출혈이 멈출 수도 있지만 불편하면 다른 호르몬제를 써보자고 하셨다. 얼마나 더 지나야 내 몸이 완벽하게 지금의 호르몬제에 적응할지는 의사 선생님도 몰랐다. 다른 호르몬제를 복용한다고 해서 또 다른 부작용이 생기지 않으란 법은 없었다. 잠시의 망설임 끝에 나는 지금의 약을 계속해서 먹어보기로 했다. 다행히 8개월의 불편함을 감수하고 약을 꾸준히 먹자 내 몸은 완벽하게 호르몬제 안젤릭정을 받아들였다.     


  사춘기 자녀와 갱년기 엄마가 싸우면 갱년기 엄마가 이긴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갱년기는 질풍노도의 청소년 시기보다 감정의 기복이 훨씬 많다는 얘기로 들린다. 평소에 감정이 예민한 편이고 신체적으로 건강하지 못했던 탓에 갱년기 증상을 호되게 겪나 보다. 몸과 마음이 무던하지 못한데 이제 와 무던한 척하며 살 수도 없다. 그저 나에게 찾아온 갱년기를 온몸으로 환영하며 받아들일 수밖에.


  호르몬제 복용을 선택하기를 잘했고, 나에게 맞는 호르몬제를 찾느라 내 몸의 상태를 관찰하며 오랜 시간 견딘 것도 잘했다. 수영을 시작한 것도 잘했고, 직장에서 엘리베이터나 에스컬레이터가 아니라 계단을 이용하여 내 몸을 단련시키는 것도 잘했다. 마음이 이유 없이 바닥으로 고꾸라지려고 하면 벌떡 일어나 걸레를 들고 집 안 구석구석을 청소하기를 잘했다. 나에게 보내는 열광적인 응원, 지금의 나에게 꼭 필요한 것들이다.


<<그림 박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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