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나를 비추는 거울이라면, 그 거울에 비치는 형상은 결국 내 마음의 빛이 비친 그림자였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궁금했다. 이 세상은, 정말로 존재하는 걸까?
사랑과 감사의 진동에 머물수록 현실은 부드럽게 변했지만 어느 순간 나는 더 깊은 질문과 마주했다.
이 모든 것이 진짜일까?
그렇게 나는 빛과 그림자의 경계를 향해 걸어가기 시작했다.
오직 마음으로 보아야 정확히 볼 수 있어.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아.
초등학교 2학년 무렵 처음 봤던 생택쥐베리의 <어린 왕자>는 그 어린 나이에도 이상하게 마음 깊이 남았다. 그 문장들은 내가 자라며 여러 번, 다른 의미로 다가왔다.
‘중요한 것은 눈에 보지 않는다’
이 문장이 내게 다시 다가온 것은 스텔라의 느림을 마주하고 고통의 터널을 지나던 시절이었다. 양자역학과 끌어당김의 법칙, 그리고 고대 철학과 영성을 공부하며 ‘이 삶의 과제는 무엇인가’를 묻던 바로 그때였다.
이 우주는 한낱 꿈이며, 내가 바라보는 세계는 그저 내 에고가 만들어낸 껍질일 뿐이라는 사실.
빨간약을 삼키고 매트릭스를 빠져나오듯, 그 껍질을 깨고 나와야 진짜 세상을 볼 수 있을 거라는 깨달음.
이 깨달음은 사실 오래전부터 반복되어 왔다.
플라톤은 ‘동굴의 비유’로 그것을 말했다.
어두운 동굴 속에 사람들이 갇혀 있는데 동굴 벽을 향해 묶여 있어서 뒤에 있는 횃불이 벽에 비춰주는 그림자만을 볼 수 있다. 그들은 그 그림자를 실재(reality)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누군가 한 명이 풀려나서 동굴 밖으로 나와 넓은 세상과 햇빛을 보게 된다. 처음에는 눈이 부셔 혼란스러워하지만 점차 그것이 진짜라는 것을 깨닫는다.
눈에 보이는 세계(현상계)는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이데아)의 그림자일 뿐이다.
우리는 무지와 편견, 그리고 에고의 족쇄에 묶여 그림자만을 바라보며 그게 진짜라고 믿으며 살아간다.
그러나 빛은 늘 그 자리에 있었다.
다만 내 눈이 어두워서 보지 못했을 뿐이다.
양자역학은 이 오래된 비유를 현대의 언어로 다시 말한다. 이 세상은 무한한 가능성의 파동으로 이루어진 에너지의 장이다. 모든 물질은 원자로 이루어져 있고 그 원자의 내부는 진동하는 에너지다.
그런데 이 세계가 원자로 구성되어 있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설명한 사람은 그리스의 철학자 데모크리토스였다.
데모크리토스는 우주 전체가 끝없는 공간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그 속에서 무수한 원자들이 돌아다닌다고 했다. 그 원자들은 모양만 있을 뿐, 무게도 색도 맛도 없다. 우리가 느끼는 달콤함과 차가움은 객관적 실재가 아니라 ‘감각이 만들어내는 경험’ 일뿐이다.
즉, 내가 보고 듣고 만지는 이 세상은 ‘실재’가 아니라 내가 경험하는 감각적 세계인 것이다.
마치 VR 안경을 쓰고 가상현실을 체험하는 것처럼.
왠지 허무하기도 했다. 내가 믿어온 이 세상이 단지 감각의 영상이라니.
그러나 동시에 자유로웠다. 감각이 만든 세상이라면, 감각을 바꾸면 세상도 달라질 수 있다는 뜻이니까.
스텔라가 발달장애를 가지고 나에게 온 이 세상을 나는 ‘감각적으로 경험’하고 있다. 그 경험은 너무나 고통스럽고 때로는 숨조차 막힌다. 이 세상은 실재하는 것인가, 아니면 내 감각이 만들어낸 허상인가?
데모크리토스는 말했다.
진리는 깊은 곳에 있다
그는 감각적 경험을 넘어선 이성적 사고와 탐구를 통해 진리에 도달해야 한다고 했다. 감각이 만들어내는 외부의 환경에 흔들리지 않고 내면의 평화를 유지하는 것. 그 내적 평온(Ataraxia)이 바로 진리였다.
그의 말을 곱씹으며 나는 이렇게 생각했다.
내가 바라보는 그 고통스러운 세상은 실재가 아니며
내 감각이 만들어낸 허상이자, 한낱 꿈이다.
그러므로 그것에 휘둘릴 필요가 없다.
중요한 것은 외부의 상황이 아니라, 내 마음의 고요함을 지키는 일이다.
현대 물리학도 이 사실을 뒷받침한다.
이 우주는 눈에 보이는 물질이 5%에 불과하며, 나머지 95%는 눈에 보이지 않는 암흑물질과 암흑에너지로 이루어져 있다*. 즉, 우리가 감각으로 지각하는 세계는 우주의 극히 일부일 뿐이다.
그렇다면 보이지 않는 그 95%의 우주에, 우리가 아직 알지 못하는 어떤 중요한 것이 숨어있지 않을까?
물리학자 카를로 로벨리는 <보이는 세상은 실재가 아니다>에서, 시간과 공간조차도 절대적인 실체가 아니라 관찰자와의 관계 속에서 달라진다고 말했다. 우리가 감각하는 세계는 실재의 극히 일부이며, 모든 것은 관계 속에서만 존재한다는 것이다.
세계는 원자들의 무정형의 집합으로 이해되어야 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 원자들의 조합이 빚어낸 구조들 사이의 상호작용을 바탕으로 한 거울 놀이로 이해되어야 할 것입니다.
세상은 객관적으로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 나와의 관계 속에서 끊임없이 생성되고 변화한다.
결국, 세상을 결정하는 것은 ‘내 마음’이다.
내가 어떤 마음을 가지고 타인을 대하는지,
내가 어떤 마음을 가지고 상황을 바라보고 해석하는지,
그 마음이 곧 내가 사는 세계를 만든다.
에머슨은 말했다.
세계는 기호이다. 품사는 은유이다. 왜냐하면 자연의 전부가 인간의 마음의 은유이기 때문이다.(중략)
눈에 보이는 세계와 그 각 부분 상호관계는, 눈에 안 보이는 세계의 나침반이다.
자연은 나의 내면을 드러내주는 언어이며, 모든 관계는 또 다른 나를 보여주는 거울이다. 그렇게 세상은 언제나 나를 가르쳐주고 있었다.
눈에 보이는 현실은 내 마음을 비추는 거울이다.
눈에 보이는 세계는 보이지 않는 세계의 반영이다.
눈에 보이는 창조물은 보이지 않는 세계의 결과이다.
나는 아직 동굴 안에 있지만, 이제는 그 벽에 비친 빛의 방향을 안다.
그 빛은 언젠가 나를 집으로 데려갈 것이다.
* 람다-CDM 모델은 현재 표준 우주론 모델로서, 암흑에너지(람다)와차가운 암흑물질(CDM)으로 이루어져있다고 설명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