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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단 Aug 28. 2021

나는 당신의 장면을 가지고 있다.

하나의 장면으로 기억되는 사람이 있다.

 하나의 장면으로 기억되는 사람이 있다. 그 사람이 그랬다. 우연한 곳에서 처음 만났고, 두 번째 만남은 체코의 수도 프라하였다. 어린 날의 치기일지 모르겠지만, 우리는 다시 우연한 곳에서 만나자는 무모한 약속을 했다. 나는 수일 동안 헝가리를 여행했고 약속 전날 프라하에 도착했다. 열두 개의 침대가 간신히 들어가는 도미토리에서 하룻밤을 보내며 밤새 설렘과 두려움이 공존했다. 짧은 며칠 동안 봤던 그 사람의 모습이 생각 나서였고, 짧은 며칠이 내 안에 있는 그 사람의 전부였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웃으며 만났다. 물론 심장은 터질 듯이 뛰고 있었다. 공항에서 버스를 타고 도심으로 가는 길은 CG 같았고, 캐리어 바퀴가 돌바닥에 긁혀 나는 마찰음은 웃음 소재가 됐다.


 우리는 바비큐 요리가 맛있다는 음식점에 들어갔다. 시끄러운 공간 안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흑맥주를 마시고 있었고, 술을 그다지 즐기지 않는 우리도 500cc 맥주 한 잔을 시켰다. 그 사람은 맥주를 한 모금 마셨고, 나에게 맥주잔을 넘겨주며 자연스럽게 손잡이를 돌려주었다. 어쩌면 나는 그때 그 사람을 알게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그 사소한 행동 하나가 그 사람이 살아온 삶의 방식, 살아갈 삶의 방식을 설명하는 것 같았다.


 그 이후로도 우리의 만남은 계속되었고, 지금은 매일매일이 되었다. 그 사람은 삶의 어려움을 마주할 때마다 자기가 한 모금 마시고는 내가 잡을 수 있게 손잡이를 넘겨준다. 맥주도, 삶의 어려움도 여전히 즐기지는 못하겠다. 하지만 나는 그 사람의 장면을 가지고 있고, 그 사람은 나의 장면을 가지고 있다. 이런 평범하고 일상적인 사실이 무엇보다 힘이 되는 때가 있다.


Praha, Czech(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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