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요, 멀리서 보면 희극이다.
블랙 코미디의 대가인 찰리 채플린은 삶이 가지고 있는 양면성을 이 같은 말로 표현했다. 그의 영화 <모던 타임즈>(1937)에는 반복해서 나사를 조여야 하는 컨베이어 벨트의 슬랩스틱이 나온다. 이는 자본주의 속 노동자는 단지 부속품에 불과하다는 역사적인 풍자를 남겼다. 블랙 코미디는 냉정할 정도로 현실적이고 잔혹한 장면에서도 익살스러움으로 풍자하는 장르를 말하는데, 한마디로 하면 '심각한데 웃긴 것'이다. 영국의 유명 배우 빌 나이는 "유머는 도처에 널려있다. 그런 점에서 인간이 하는 어떤 일에든 아이러니는 존재한다."며 비극이든 희극이든, 인간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웃음을 찾아낼 수 있는 유머러스함이 있다며 아이러니가 왜 중요한지 설명했다.
블랙 코미디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1997)는 영화 자체가 아이러니와 같다. 제목부터 '인생은 아름다워'지만 이야기의 주요 배경은 참혹한 유대인 강제 수용소다. 주인공인 귀도는 함께 끌려온 아들 조슈아를 달래기 위해 무자비한 수용소 생활을 단체 게임이라며 속이고, 1,000점을 먼저 따는 우승자에게는 진짜 탱크가 주어진다고 말한다. 그리고 귀도는 조슈아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걸고 고군분투한다. 영화의 끝 부분, 귀도는 뒤에서 총을 겨누며 막다른 골목으로 밀어 넣는 경비병이 자신을 죽일 것이라는 걸 안다. 하지만 숨은 채 이를 지켜보는 아들이 놀란 나머지 튀어나올까 봐 일부러 장난치는 듯 우스꽝스럽게 걷는다. 아들은 구멍을 통해 천진난만하게 키득거리며 재미있어한다.
아이러니(irony)는 서로 대립되는 것을 병치(place side by side)시켜 역설적인 의미를 강조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는 표현된 것과 실제의 의미가 다른 상황을 말하는데, 예를 들어 겉으로는 칭찬하는 듯 보이지만 실제로는 비난하는 상황이 있을 수 있다. 아이러니는 겉과 속이 다름에서 오는 유머가 있고, 간접적인 표현을 통해 풍자하며, 지적인 날카로움으로 본질을 꿰뚫는다.
아이러니에는 여러 종류가 있지만, 그중 '극적인 아이러니'는 알고 있음과 모름의 병치를 통해 비극적인 효과를 줄 때 사용한다. 예를 들어 무섭기로 소문난 선배가 뒤에 있는 것도 모른 채 몇몇 학생이 그 선배의 흉을 보고 있을 때, 이를 본 관객은 긴장감을 느낄 것이다. 영화에서는 이것을 서스펜스(suspense)라고 한다. 일반적으로 긴장감을 유발하는 영화들을 서스펜스 장르라고 부르는데, 여기에서 이 긴장감을 유발하는 방법이 바로 극적인 아이러니이다. 서스펜스 영화의 창시자로 불리는 알프레드 히치콕은 이렇게 말했다.
영화의 대화 장면에서 갑자기 폭탄이 터져 관객들이 깜짝 놀라면 그것은 서프라이즈다. 그러나 누군가 폭탄을 몰래 설치하는 것을 관객들에게만 보여주고, 이를 모르는 등장인물들이 대화하는 내내 "폭탄이 언제 터질까" 생각하며 관객이 긴장하면 그것은 서스펜스다.
서스펜스는 관객에게 놀랄만한 정보를 제공하지만 등장인물에게는 제공하지 않음으로써 생기는 일종의 긴장감이다. 서스펜스 속 극적인 아이러니는 일반적으로 긴장감을 유발이지만, 여기에 익살스러움이 더해진다면 블랙 코미디가 될 수 있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진지한 상황인 건 알겠는데... (피식) 나도 모르게 웃기네."인 것이다.
영화 <극한직업>(2019)은 배우 김동휘의 대사인 "왜... 왜 최선을 다하는데? 왜 자꾸 장사가 잘 되는데!! X발 치킨!!"으로 줄거리를 요약할 수 있다. 마약조직 소탕을 위해 잠복근무의 일환으로 시작한 치킨장사가 대박이 나며 재미있는 장면들이 연출된다. 류승룡은 본분을 잊어가는 팀원들을 향해 "우리가 경찰이지 치킨집 하러 왔냐"라고 타박하지만, 때마침 걸려온 주문 전화에 능글맞은 목소리로 "지금까지 이런 맛은 없었다. 이것은 갈비인가, 통닭인가? 예~ 수원왕갈비통닭입니다."라고 말하며 웃음을 자아낸다. 이 영화는 인물의 행동이 본래 의도와는 다르게 전개되는 플롯의 아이러니, 성격의 아이러니, 대사의 아이러니, 상황의 아이러니 등 활용될 수 있는 아이러니는 뭐든 사용하며 재미를 주고 있다.
아이러니는 유머(humor)의 중요성을 알게 해 준다. 유머는 남을 웃기는 말이나 행동을 뜻한다. 어원은 라틴어의 humanus로 이는 인체가 가진 일종의 체액이다. 과거 유럽에서 인간의 체질은 4개의 체액을 통해 구분되며, 유머는 그 체액 중 하나인 습기에서 나온다고 믿었다. 그리고 이 습기가 균형 있게 존재하는 사람은 유머러스한 성격이 된다고 생각했었다. 마치 건조한 땅에서는 식물이 자랄 수 없듯, 유머는 일상에 활력을 주어 지루하지 않도록 만들어주는 단비 같은 것이다.
유머의 기능은 분위기를 전환시켜 긴장감을 완화시키는 것이다. 하지만 흔히 말하는 아재개그(예를 들어 "세상에서 가장 지루한 중학교는? 로딩중!"과 같이 무책임하게 던져진 유머)와 같이 잘못 사용하면 역효과를 낼 수도 있다. 미국의 한 연구 결과에서는 "사회적 지능이 높아야 타인의 심리상태를 빠르게 파악하고 효과적으로 의사소통할 수 있다"라고 하였다. 그러한 사람은 환경이 부정적으로 변해도 이에 능동적으로 적응할 수 있는 탄력성이 뛰어나다고 한다. 마치 잔혹한 상황에서도 익살스러움을 잃지 않는 블랙코미디와 같다.
아래 예시는 일반적으로 좋은 유머를 만드는 대표적인 두 방법이다.
1. 반전형 유머 : 예상치 못한 상황을 만들어 웃음을 유발하는 것
- 소개팅남 : (여자에게) 너무 단 음료는 건강에 안 좋대요. 건강한 차 드실래요?
- 소개팅녀 : 아... 그래요? (종업원에게) 그럼 저는 케모마일 티 주세요.
- 소개팅남 : (종업원에게) 저는 카라멜 마끼야또 가장 달게 한 잔 주세요.
2. 비하형 유머 : 상대의 특징을 비꼬면서 웃음을 유발하는 것
- 선배 : 이번 토의 주제에 대해서 더 하고 싶은 말 있는 사람?
(평소 부끄럼이 많고 말 수가 적고 맛있는 걸 좋아하는 한 후배는 회의 중 조용히 앉아 있었다.)
- 선배 : (조용한 후배를 보며) 우리 영희는 화가 많이 난 것 같은데? 배가 고파서 그렇지?
유머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는 상황과 맥락을 고려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아재개그는 사회적 지능이 부족하여 상황과 맥락을 고려하지 못한 불행의 결과인 셈이다. 더불어 유머는 이를 듣는 사람과 친밀감(rapport)이 있어야 효과가 좋다. 만약 관계가 애매한 사람이라면 비교적 안전한 유머인 라임, 유행어(밈), 호불호가 적은 언어유희 등을 가볍게 던지는 편이 낫다.
영화 속 스토리는 긴장과 완화의 연속이다. 만약 2시간 내내 긴장만 시킨다면 관객은 스트레스를 받을 것이고, 웃기기만 한다면 얻어가는 교훈이 없을 것이다. 블랙 코미디가 대중적으로 사랑받는 이유는 이러한 균형을 잘 지켜, 인간의 문제와 고통을 웃음으로 승화시켰기 때문일 것이다.
"당신의 인생을 바꿀 영화 ② 인생은 아름다워", 조선뉴스프레스, 2017.11.
로베르토 베니니, <인생은 아름다워>, 1997.
이정국 외, 「고등학교 시나리오」, 서울특별시교육청, 2018.
정재형 외, 「고등학교 영화 창작과 표현」, 동국대학교출판부, 2014.
이병헌, <극한직업>, 2019.
“유머(Humor)의 어원”, 윤새미의 영어 사랑 이야기 블로그, 2009.
"머리 좋은 것보다 사회적 지능 높아야 훌륭한 리더 된다", 동아사이언스, 2019.02.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