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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러티브 - 감독은 평생 단 한 편의 영화만 만든다.

by 이롱이
감독은 평생 동안 단 한 편의 영화만 만든다.

"그는 그걸 여러 조각으로 나누어 반복할 뿐이다." 프랑스 감독 장 르누아르는 이렇게 말했다. 또한 프랑수아 트뤼포 감독은 인터뷰를 통해 "누구나 인생, 영화, 세상에 대한 철학이 있다. 그러면 그가 하는 모든 작업은 흥미롭다. 하지만 아무 철학이 없다면 그 영화는 흥미롭지 않다."라고 말했다. 이 감독들의 공통적인 생각은 작가(감독)의 철학과 개성을 중시한 작가주의라는 영화 사조로 발전했다. 극작가 장 지로두의 말처럼 "작품이란 없다. 오직 작가뿐이다."인 것이다.


"광주? 돈 워리, 돈 워리! 아이 베스트 드라이버!" 영화 <택시운전사>(2017)의 주인공 만섭은 외국 손님을 태우고 광주에 갔다가 통금 전에 돌아오면 밀린 월세를 갚을 수 있는 거금 10만 원을 준다는 말에 독일 기자 피터를 태우고 영문도 모른 채 길을 나선다. 그리고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 충격적인 사건으로 인해 만섭은 일생일대의 변화를 겪게 된다. 프랑수아 트뤼포의 말처럼, 사람은 누구나 살아온 인생의 경험 속에서 세상에 대한 자신만의 철학을 갖는다. 이것은 영화 속 캐릭터에게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내러티브에 대하여


내러티브(narrative)는 이야기가 가지고 있는 구조를 뜻한다. 풀어 말하자면 인과 관계로 이어지는 사건의 연속인 플롯(plot)을 통해 이야기의 구조를 만드는 전략이다. 스토리("왕이 죽고 나서 왕비도 죽었다.")는 시간 순서에 따라 사건을 나열한 것이고, 플롯("왕이 죽자 슬픔에 못 이겨 왕비도 죽었다.")은 원인과 결과에 따라 사건을 나열한 것이다. 이처럼 내러티브의 핵심인 플롯은 사건을 인과 관계로 이어주면서 감춰진 내막을 드러내므로 관객이 새로운 의미를 찾아낼 수 있게 한다. 그리고 이 플롯을 언제, 어떤 방법으로 활용하면 더 재미있는 이야기를 만들 수 있는지, 그 방법을 체계화한 것이 바로 내러티브이다.


내러티브는 서양 희곡의 '발단-전개-결말'이나 동양 한시의 '기-승-전-결'처럼 인간의 아주 오래된 전통이기 때문에 그 종류 또한 다양한다. 그중 현대 영화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이야기 구조는 내러티브 패러다임(3막 구조)이다. 시드 필드(Syd Field)가 「시나리오란 무엇인가」에서 제안한 것으로, 1막 설정, 2막 대립, 3막 해결로 이어지는 단순한 구조를 가진다. 각 막에서 가장 중요한 지점만을 차례로 살펴보자.


시드 필드의 패러다임, Screenwriting, reddit.com


1막의 Inciting Incident(선동하는 사건)는 주인공에게 어떤 행동을 하게 만드는 계기적 사건을 말한다. <택시운전사>의 만섭은 밀린 월세를 갚을 수 있는 거금 10만 원을 준다는 말에 예약 손님을 빼앗아 영문도 모른 채 광주로 향한다. 2막의 Midpoint(중간점)는 이야기의 방향을 확연히 전환시키는 중대한 사건이다. <택시운전사>의 만섭은 위험한 광주에서 안전히 탈출했다. 하지만 왜곡된 뉴스로 감춰진 광주의 진실과 남겨두고 온 사람들이 마음에 걸려 다시 광주로 되돌아간다. 마지막으로 3막 Climax(절정)는 지금까지 벌어진 모든 갈등을 해결시키는 사건이다. <택시운전사>의 만섭은 피터와 함께 광주 대학살의 사투 속에서 기적적으로 탈출하여 광주의 진실을 전 세계에 알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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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했던 택시운전사 만섭은 중대한 일에 휘말리게 된다", 장훈의 <택시운전사>, 2017


<택시운전사>의 주인공 만섭은 광주의 참상을 목도한 뒤 더는 진실을 외면할 수가 없었다. 그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가족, 그리고 밤낮없이 벌고자 노력했던 돈도 더 나은 가치를 위한 결심을 막아서지는 못했다. 이처럼 영화 속 주인공은 내러티브의 세계를 살아가면서 자신만의 철학을 만들어간다.



내러티브가 주는 소소한 슬기, 세계관


내러티브는 세계관의 중요성을 알게 한다. 세계관이란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에 대해 개인적인 견해를 바탕으로 의미나 가치를 판단하는 것을 말한다. 즉 나와 세계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나' 그리고 '우리'는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 방향을 정립하는 것이다. 세계관은 개인의 체험에 의해서 한 사람 한 사람 모두 다르지만 형성되는 과정 속 일련의 공통점을 찾아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생활 속 체험에서 오는 현실 파악에 의해 세계상이 형성된다. (세계상이란 과학적 현상과 같이 공통의 기준점을 말하는데, 예를 들자면 "인간은 굶주리면 죽는다."와 같은 사실이다.)

둘째, 세계상으로 인해 여러 문제에 대한 의미가 부여되고 존재할 모습으로서의 이상히 밝혀지게 된다.

셋째, 개인이 추구해야 할 선(善)이나 행동의 원칙과 같은 실천의 지침이 주어지게 된다.


이러한 관점에서 학교를 통해 부정적인 것이라고 배운 물질만능주의는 자본주의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어쩌면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이미 돈이면 다 되는 세상을 만들어 놓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성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보다 더 높은 세상의 가치가 있음을 알고 다르게 행동할 수 있다. 때문에 당장 만족을 주는 삶의 양식을 포기하면서까지 정직한 삶을 살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이 있는 게 아닐까?


작가는 자신의 체험이나 지식, 상상 등을 활용하여 글을 쓴다. 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인 세계관을 바탕으로 작품을 쓴다. 우리는 의식하든 의식하지 못하든 영화 속 주인공이 겪는 사건과 그 변화를 통해 작가의 세계관을 내면화할 수 있다. 영화는 눈물과 감동, 떨림과 분노 같은 반이성적인 것들을 도구로 사용하기 때문에 관객은 더 취약해질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관객은 나름대로의 분명한 세계관을 가지고 있어야만 작품을 객관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장훈, <택시운전사>, 더램프/시그니처필름, 2017.

EBS 다큐프라임, <이야기의 힘 1부>, EBS, 2010.

권승태, 「3막의 비밀」, 커뮤니케이션북스, 2012.

"Syd Field's paradigm", Screenwriting, reddit.com

"세계관", 「종교학대사전」, 1998

"세계관", 송진우, 「Basic 중학생을 위한 국어 용어사전」,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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