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킹은 본래 남성의 전유물이었다. 우리는 루이 14세의 초상화를 통해 그가 스타킹을 얼마나 사랑했는지 알 수 있다. 그가 태양왕으로 불리는 이유는 발레 공연이었던 <밤의 발레(Le Ballet de la Nuit)>에 직접 출연하여 태양신 역할을 맡았기 때문이다. 그는 평소 발레를 즐겼기 때문에 스타킹을 더 사랑했다.
과거 남성들이 스타킹을 신었던 이유는 갑옷에 의한 긁힘이나 부딪힘으로부터 다리를 보호하기 위해서였다. 스타킹은 실크와 수작업으로 만들어졌기에 매우 비쌌고, 주로 왕실이나 귀족이 선물로 주고받는 물건이었다. 이후 무기의 발전과 함께 전투복으로써의 스타킹은 점점 사라지게 되었고, 패션의 일부가 되기 시작했다.
지금의 스타킹은 여성의 전유물이다. 하지만 그 역사는 길지 않다. 전통적으로 여성의 다리나 발목은 노출되는 것이 금기시됐다. 그렇기에 보온성과 활동성은 유지하면서 노출도 줄일 수 있는 스타킹이 인기를 끌었다. 스타킹이 명실상부 패션 아이템으로 자리 잡게 된 것은 1920년대 플래퍼 룩이 등장하면서부터이다. 플래퍼란 말괄량이를 뜻하는데, 코르셋의 관습으로부터 벗어나 짧은 스커트와 스타킹으로 개성을 드러냈던 자유분방한 신여성들이 주로 입었다. 1938년에는 나일론 스타킹이 발명되면서 스타킹은 일약 대중화되기 시작했다.
스타킹의 역사는 곧 고정관념 탈피의 역사와 같다. 오랜 기간 남성과 귀족의 전유물이었던 스타킹은, 사회의 진보와 함께 여성과 일반인의 전유물이 되었기 때문이다. 스타킹에는 시민혁명과 산업혁명, 여성의 지위 향상과 같은 인류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있다.
힐은 뒤축이 앞굽보다 높은 신발을 의미한다. 스타킹과 마찬가지로 본래 남성들이 주로 신던 것이었다. 고대로부터 귀족들은 통굽 신발로 자신의 키를 더 커 보이게 하여 신분을 과시했다. 남성들은 말에 탈 때 등자에 발을 더 쉽게 걸칠 수 있도록 전투화로도 사용했다. 하이힐 하면 떠오르는 왕 역시 태양왕 루이 14세이다. 그는 160cm가량의 작은 키가 콤플렉스였는데, 이를 감추기 위해 30cm가 넘는 가발과 10cm가 넘는 하이힐을 신었다.
여성들이 하이힐을 신게 된 것은 약 15세기경 초핀(Chopines)으로부터 비롯된다. 그 길이가 20~30cm에 이르렀는데 수행원의 보조를 받을 수 있는 고위층 여성들이 주로 신었다. 하이힐이 유럽 전역으로 퍼진 데에는 카트린 드 메디치의 역할도 컸다. 그녀는 자신의 결혼식에서 40cm에 이르는 초핀을 신었는데, 이것이 화제가 되면서 여성들 사이에서 인기를 끌었다. 17세기에는 신분과 계층에 따라 하이힐의 모양을 구분해서 신도록 했는데, 대표적인 것이 탈롱 루즈(Talon Rouge)이다. 루이 14세는 탈롱 루즈를 법으로 제한하여 최상위 계층만 신을 수 있도록 특권을 부여했다.
이후 18세기에 이르러 프랑스혁명과 함께 폭정을 일삼던 마리 앙투아네트가 처형당하게 된다. 그녀는 단두대로 가던 순간까지도 하이힐을 신고 있었다고 한다. 때문에 하이힐은 부패하고 타락한 왕실의 상징으로 여겨졌고, 혁명 이후에는 다소 검소하고 단순한 디자인의 신발이 유행했다. 남성은 하이힐에서 내려오게 되었고, 여성은 플랫슈즈가 인기를 끌었다. 그런데 당시의 플랫슈즈는 밑창이 얇고 평평해서 활동용으로는 부적합했다. 이것은 아이러니하게도 노동하지 않아도 되는 부유층 여성의 신발로 여겨지면서 하이힐과 같이 특권을 드러내는 또 하나의 상징이 되기도 했다.
하이힐에는 자신을 과시하고자 하는 인간의 본성이 담겨있다. 자신을 더 커 보이게 하고 특권과 부를 과시하기 위한 도구인 셈이다. 사람은 두 발로 걸어서 다니기 때문에 신발은 언제나 편리해야 하는 것이 용도에 맞다. 그러나 편리함을 버리더라도 자신을 과시하고 싶은 인간의 마음은 예나 지금이나 같다.
티처빌, 유럽에 미치다(프랑스, 이탈리아 편)
패션인사이트, 플래퍼 룩
나무위키, 스타킹/하이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