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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롱이 Oct 19. 2021

낮아지는 선생님

알면서도 속아주고 있어요.

 한때 선생님들과 함께 축제에서 걸그룹 댄스를 춘 적이 있다.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시작해서 성황리에 공연을 마쳤고, 그 결과 소수정예의 팬클럽(?)이 생기는 일도 있었다. 그때 같이 춤을 췄던 한 선생님은 경력이 10년도 넘은 중견 교사였다. 내가 만약 그 나이였다면 절대 춤추지 않았을 텐데, 그분은 “이렇게 선생님의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게 교육 활동에 도움이 되더라고요.”라며 나름의 교육관을 밝히기도 했다.     

 교육에서는 라포(rapport)형성, 즉 선생님과 학생 간의 신뢰와 친밀감이 무척 중요하다. 모든 교육 활동이 선생님과 학생 간의 상호작용에 의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학생들은 학교라는 공간과 선생님의 존재를 항상 낯설어한다. 안전하고 편안한 집에서 나와 낯선 사람으로 가득 찬 야생의 공간에 놓이기 때문이다.

 물론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면 어느 정도 편해질 수는 있다. 하지만 학창 시절 동안 3개의 학교를 바꾸고 12번의 학급을 바꾸는 것이 마냥 익숙해지기에는 어려울 것이다. 그렇기에 더더욱, 선생님은 학생의 입장이 되어보고 그들을 배려해야 한다.


 한국은 지나치게 윗사람을 배려하는 문화가 있다. 후배는 선배를, 부하직원은 상사를 배려해야 한다. 배려를 넘어 아랫사람이 윗사람의 눈높이에서 보고 그들의 마음에 들게 해야 하는 소위 ‘의전’ 문화가 팽배하다. 우리는 이렇게 권위를 강요하며 다음 세대에게 빚을 떠넘기고 있다. 진짜 배려는 윗사람이 아랫사람의 입장이 되어 그들의 눈높이로 보는 것이다. 어른이 어린아이를 대하듯 실수를 용납하고, 알고도 져주며, 낮아지기를 자처하는 것이다.


 배려는 디테일함에 있다. 내가 단골인 한 헤어숍은 고객에 대한 배려가 좋다. 대화를 통해 어울리는 디자인을 고민해주고 세심히 다듬어준다. 머리를 감을 때는 물 온도가 어떤지, 더 가려운 곳은 없는지 물어본다. 그리고 집으로 가는지, 외출하는지 물어보고 상황에 맞는 스타일링까지 해준다. 하지만 사실, 여기까지는 누구나 할 수 있는 배려, 즉 친절이다.

 한 번은 어떤 미용사로부터 디테일한 배려를 받은 적이 있다. 그는 두피가 좋지 않아 머리카락 안에 여드름이 나 있다는 것을 알고 닿지 않게 조심했다. 그리고 악세사리에 미용사의 손이 부딪히면 아프다는 것을 아는지 일부러 신경 써주는 것이 느껴졌다. 상대방을 적극적으로 관찰하고 디테일하게 배려하는 것이 진짜 배려다.


 학기 초에 학생들을 관찰해보면 그들이 많이 긴장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럴 때는 껌과 사탕을 주며 긴장을 풀도록 도와준다. 한번은 모두가 보는 앞에서 잘못을 모면하고자 거짓말을 둘러대는 학생을 봤는데, 자세히 관찰해보니 그가 두려워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럴 때는 알면서도 속아 넘어가 준다. 나중에 따로 학생을 불러 자초지종을 들어보면 될 일이다. 대드는 학생을 관찰해보면 억울해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그럴 때는 변명을 잘 들어주고 선생님이 먼저 사과하는 것이 좋을 때도 있다.


 프로 바둑기사 이창호 9단은 ‘누구나 예측하는 방법대로 행동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라며 바둑 인생을 통해 알게 된 인간관계에서의 깨달음을 밝힌 적이 있다.

 순류에 역류를 일으킬 때 즉각 반응하는 것은 어리석다. 거기에 휘말리면 나를 잃고 상대의 흐름에 이끌려 순식간에 국면의 주도권을 넘겨주게 된다. 상대가 역류를 일으켰을 때 나의 순류를 그대로 유지하는 것은 상대의 처지에서 보면 역류가 된다. 그러니 나의 흐름을 흔들림 없이 견지하는 자세야말로 최고의 방어수단이자 공격수단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 바둑기사 이창호 9단


 가끔 보면 학생과 맞대어 말싸움하는 선생님이 있다. 말의 내용만 놓고 보면 누가 선생님이고 학생인지 구분이 안 될 정도다. 결국, 선생님이 논리적으로 이긴다고 해도 학생이 진심으로 승복할 리는 없다. 혹시 이 글을 보는 학생이 있다면 선생님과의 말싸움 끝에 결정적으로 승리하는 비결을 공개한다. 바로 “선생님은 어른이시잖아요.”이다.     

 선생님은 어른이다. 그래서 학생과 같은 수준에서 생각하고 말해서는 안 된다. 도발적인 상황에서도 초연할 수 있어야 한다. 똑같이 분노하고 화내는 것은 쉬운 일이지만, 맞대어 대응하지 않는 것은 어렵지만 지혜로운 일이다. 진짜 부자는 부를 과시하는 법이 없듯, 얄팍한 부를 과시하는 사람은 별안간에 부자가 되어 자격지심에 가득 찬 졸부뿐이다.

 지식이 가득하더라도 듣는 습관이 들어있고, 돈이 차고 넘쳐도 안분지족 하는 사람들을 보면 그 큰 그릇에 감복한다. 그리고 산전수전 다 겪은 베테랑 선생님이 모든 걸 알면서도 속아 넘어가 주고, 일부러 져주는 모습을 볼 때면 일종의 경외감마저 든다.     

 내가 아는 어떤 선생님은 학생과 게임을 하려고 게임을 공부하고, 그들의 은어를 배우며, 댄스 공연을 통해 자신을 망가뜨리는 데 주저함이 없다. 또 다른 선생님은 수업 중 학생이 질문하자 책상 옆에 무릎을 꿇고 눈높이를 맞춰 설명해주기도 했다. 나는 이렇게 낮아지기를 두려워하지 않는 선생님들이 참 멋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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