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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롱이 Oct 06. 2021

가면을 쓴 선생님

있는 모습 그대로의 선생님을 보여주세요.

 조금은 이른 20대 중반에 선생님이 되고 나니 “학생들이 나를 만만하게 보지 않을까? 어리다고 무시하지는 않을까?”라는 걱정을 했었다. 되돌아보면 기우에 불과했지만, 당시에는 큰 고민거리였다. 어떤 선생님은 어릴수록 “초반에 기강을 세게 잡아야 한다.”라며 일명 엄근진(엄격, 근엄, 진지) 컨셉을 가지라고 조언했었다. 그때는 한두 사람으로부터 비슷한 말을 듣고 나니 그렇게 하는 것이 당연한 줄 알았고, 이내 결의에 차 실행에 옮겼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를 진심으로 생각해주는 귀인도 아니었는데 왜 그 말을 흘려듣지 못했을까 후회가 된다. 어쩌면 만만하게 보이지 않으려는 당시의 불안함에 정당성을 주는 것이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이후 실제의 성격과 달리, 마치 연극배우처럼 '엄근진'이라는 가면을 쓰고 학교에 다녔다. 그 결과, 겉으로 보기에는 선생님으로서의 권위가 나름 지켜지는 듯했다. 학생들은 잘 길든 듯 지시를 따랐고, 일사불란했다. 아이들이 담임 선생님을 무서워하고, 그래서 말을 잘 듣는다며 옆 반 선생님이 치켜세워줄 때는 내심 뿌듯하기도 했다. 나에게 맞는 가면을 찾은 듯했고, 이 가면이야말로 앞으로의 교직 생활을 탄탄대로로 만들어 줄 만능열쇠처럼 생각했다. 그렇게 가면을 쓴 채 첫해를 보냈다.


 이듬해 어느 날, 우연히 듣게 된 우리 반 학생의 뒷담화를 통해 그렇게 지켜진 권위에는 실체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됐다. 나의 멘탈은 파도를 맞은 모래성처럼 와르르 무너져내렸다. 불만이 있으면 대통령도 대놓고 욕하는 시대에, 선생님이라고 대수일까? 개인적으로 한 교사가 교직 생활에 중대한 변곡점을 맞이하게 되는 계기는, ‘학생들의 뒷담화’를 알게 되었을 때라고 생각한다. 겉으로는 예의 바르고 착하기만 하던 학생이, 뒤에서는 신랄하게 선생님을 음해하고 다닌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의 그 배신감. 겪어본 사람만이 알 수 있다.


 한동안 이 일로 힘들어하자, 한 친구는 나에게 이런 조언을 했다. “일하기 제일 힘든 회사가 어딘지 알아? 바로 가족 같은 분위기야. 친해지면 무리한 부탁도 거절하기가 힘들어. 그리고 당연히 해야 할 일도 이쪽에서 먼저 부탁하기 힘들어지지. 함께 일하기 가장 좋은 방법은, 적당히 데면데면하면서 얕고 넓은 관계를 맺는 거야.” 인정할 수밖에 없는 매우 현실적인 조언이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씁쓸했다.


 요즘 같은 시대에는 선생님이 사명감을 가지고 일하더라도 그 누구 하나 알아주지 않는다. 그렇기에 교사 역시 일반 직장인처럼 월급을 받는 만큼, 딱 거기까지만 일로써 학생을 대하면 마음이 편할 것이다. 선생님이 스승이던 시대는 지나버렸다. 캔음료 하나에도 김영란법(청탁금지법)으로 처벌을 받는 시대가 아닌가.

 처음에는 세상에 믿을 사람 하나 없다며 마음의 빗장을 걸어 잠근 냉소한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저 내 마음을 보호하기 위해서라면 최선을 다해 이기적으로 되고 싶었다. 하지만 닭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오는 것처럼, 마음속에 한쪽에 자리한 사명감은 나를 그렇게 두지 않았다. 젊은 나이에 상처 한 번 받았다고 세상을 탓하는 사람도 되고 싶지 않았다.


 정회도 작가는 <운의 알고리즘>에서 바꿀 수 있는 것과 바꿀 수 없는 것을 구별하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이라고 말했다.

바꿀 수 없는 것을 바꾸려고 함. 이것을 ‘어리석음’이라 한다. 바꿀 수 있는 것을 바꾸지 않음. 이것을 ‘나태함’이라 한다. 바꿀 수 없는 것을 받아들임. 이것을 ‘평온함’이라 한다. 바꿀 수 있는 것을 바꾸려고 함. 이것을 ‘용기’라 한다. 그리고 바꿀 수 있는 것인지 바꿀 수 없는 것인지 구별하는 것을 ‘지혜’라 한다.
- 정회도, <운의 알고리즘>


 선생님이 학생을 통제하기 위해 ‘엄근진’이라는 가면을 쓰면, 학생은 ‘예의 바른 척’이라는 가면을 써버린다. 선생님은 자신의 입맛대로 학생을 바꿀 수 있다고 착각하지만, 학생은 자신의 힘으로 선생님을 바꿀 수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지혜가 바꿀 수 있는 것과 바꿀 수 없는 것을 구별하는 것이라면, 학생이야말로 선생님보다 더 지혜로운 셈이다.


 동화 <해와 바람>에서 강한 바람보다 따뜻한 햇볕이 행인의 외투를 벗긴 것처럼, 학생의 마음을 얻는 법도 결국 햇볕이다. 내가 두려움에 의한 엄근진의 가면을 벗고, 있는 모습 그대로를 보여주기 시작했을 때, 학생들도 하나씩 가면을 벗기 시작했다. 어른의 권위가 나이에 있지 않은 것처럼, 선생님의 권위도 무서움에 있지 않다. 교사가 모든 학생에게 바르고 공평한 도의를 지키고 맡겨진 수업에 최선을 다한다면, 학생들은 그런 교사를 어리다고 만만히 보거나 무시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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