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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롱이 Oct 20. 2021

분리수거 잘하는 선생님

남이 버린 쓰레기를 주워 담지 마세요.

 학생들이 가장 꺼리는 학급 활동은 단연 청소와 분리수거다. 보통 지각하거나 규칙을 어기면 벌로 청소를 한다. 이처럼 쓰레기를 치우는 일은 모두가 싫어한다. 반면, 길거리에는 여전히 함부로 버려진 담배꽁초나 쓰레기가 많다. 쓰레기를 버리는 일은 너무 편하고 쉬운 일이지만, 결국 누군가는 다시 주워서 쓰레기통에 넣어야 한다.


 선생님의 중요한 역량 중 하나는 감정의 분리수거를 잘하는 것이다. 일의 특성상 학생, 학부모, 동료, 관리자와 갈등이 잦기 때문에 일종의 감정 노동자인 셈이다. 많은 사람을 만나다 보면, 본인의 감정이 안 좋다는 이유로 상대에게 함부로 말하는 사람이 있다. 마치 내가 불편하다는 이유로 쓰레기를 함부로 버려대는 사람과 같다.     

 감정의 근육이 단련된 사람들은 내 앞에 버려진 감정 쓰레기를 빠르게 분리수거 한다. 하지만 공부만 해왔던 선생님들은 처음 마주하는 그 쓰레기를 주워서 모아놓고는 분석하며 공부(?)한다. 그렇게 상처받고 회의감에 둘러싸이게 되면 남들도 다 하는데, 나도 편하게 버리자는 마음을 가지게 된다. 불친절하고 냉소적인 선생님은 이렇게 탄생한다.


 유럽여행을 갔을 때 인종차별을 당한 적이 있다. 겉으로 보기에는 너무 멀쩡하고 정상적인 사람이었기에 기분이 나쁜 것은 둘째 치고 꽤 놀랐었다. 아주 평범한 사람에게도 맹목적인 악의가 있을 수 있다. 그 사람도 사랑하는 부모, 아내, 자녀가 있을 것이다. 카페에서 친구들과 수다를 떨고 넷플릭스를 보며 웃기도 할 것이다. 물론 나이나 환경 때문에 차별을 당해본 적도 있고, 윗사람으로부터 함부로 대함을 당한 적도 있을 것이다. 이런 쓸데없는 몰입을 하고 나니, 어쩌다 저렇게 됐을까 오히려 그 사람이 불쌍하게 보였다.


 우리는 살면서 함부로 말하는 교사나 교수, 직장 상사를 반드시 만나게 되어있다. 기분 나쁘게 듣지 말라는 도입으로, 다 너를 생각해서 해주는 말이라는 끝맺음까지. 쓰레기에 포장을 덧대 보지만, 쓰레기는 여전히 쓰레기일 뿐이다. 선의에서 비롯되지 않은 충고는 그저 상처를 남기는 말뿐이다. 나는 그런 사람들을 만나게 되면 단 한 가지, 바로 측은히 여기는 마음을 갖게 된다.


 상처를 주는 가시 돋친 말은, 공감 능력의 부재에서 비롯된다. 공감은 상대의 입장이 되어보고 감정적으로 용납할 수 있을 때 가능하다. 하지만 이기적인 본성을 가진 인간은 공감 역시 배워야만 한다. 공감하는 방법을 제때 배우지 못한 사람은 제 기분에 따라 말을 함부로 뱉게 되고 주변에 상처를 주고 만다. 한편 그가 일생 어딜 가나 그런 행동을 하고 다닐 것을 생각하면 측은지심이 든다. 결국엔 자업자득으로 불행한 결말을 맞이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누군가 감정 쓰레기를 내던지고 가면 가엾다는 표정을 짓자. 그리고 나중에 후회하지 않도록 지금 내가 당신 때문에 기분이 나빴다는 것을 분명히 알려주자. 그리고 버려진 감정의 쓰레기는 주워서 쓰레기통에 잘 넣는다. 그리고 냄새가 나지 않도록 빨리 분리수거를 해야 한다. 나는 기분 나쁜 일을 오랫동안 담아두는 안 좋은 습관이 있었다. 그로 인해 퇴근 후 내내 불쾌하기도 했고, 주말에도 생각이 나서 스트레스를 받은 적도 있다. 그 이유는 쓰레기통의 악취 나는 감정 쓰레기를 빨리 분리수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기분 나쁜 일이 생기면, ‘내 잘못이 아니야’, ‘웃기지도 않은 헛소리’, ‘일어나지도 않을 걱정’, ‘저 사람은 왜 저럴까 불쌍하다’와 같은 생각으로 바로 쓰레기통에 넣어버린다. 그리고는 맑은 공기를 마시며 조깅 하기, 가장 좋아하는 게임 하기, 카페에 가서 책 또는 넷플릭스 보기, 친구를 만나 수다를 떨거나 가볍게 술 한잔하기 등의 방법으로 빠르게 분리수거를 해버린다. 감정 쓰레기는 바로 버리고, 최대한 빠르게 분리수거 하는 게 정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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