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롱이 Oct 24. 2021

자녀라는 선생님

꼴 보기 싫은 학생이 있어요.

꼴 보기 싫은 학생이 있어요

 언제부턴가 소위 껄렁껄렁한 사람들이 보기 싫어졌다. 이는 말이나 행동이 들떠 미덥지 아니하고 허황되며 꼴사나운 모양을 말한다. 왜 그런지는 몰라도 친구든, 선배든 그런 모양새를 가진 사람과는 친분을 쌓기가 어려워졌다. 교직에 들어와서도 이런 태도를 보이는 학생이 있으면 불편함을 감추기 어려웠다. 사람이면 사람마다 유독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유형이 있는데, MBTI만 보더라도 상극에 있는 사람끼리는 서로의 사고방식을 이해하기 힘들다.


 지금까지는 내가 친해지고 싶은 사람과 선택적으로 인간관계를 할 수 있었다. 내 취향에 맞는 사람은 친구로 받아들이고, 그렇지 않으면 멀리하였다. 신기한 것은 내가 그렇게 싫어했던 누구도, 다른 사람과는 친한 친구 사이였다. 이렇듯 모든 인간관계는 취향에 따라 선택되며 유지됐다.

 하지만 선생님은 그렇게 할 수 없었다. 한 학급에는 내가 선택하지 않은 수십 명의 학생이 저마다의 개성을 가지고 앉아있었다. 내가 싫어하는 부류마저도 ‘내 학생’으로 받아들이고 공평하게 대해야 했다. 처음에는 학생의 싫은 모습을 고치려고 시도해본 적도 있다. 하지만 불가능한 일이라는 것을 깨닫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 일은 부모조차도 하지 못하는 것이었기에 그냥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어떤 사람이 사과를 좋아하고 오렌지를 싫어한다면, 그것은 단지 취향에 불과하다. 나는 커피를 하루에 열 잔도 마실 수 있지만, 어떤 사람은 한 잔도 안 마실 수 있다. 한 명의 이상적인 연예인을 놓고도 좋고 싫음이 갈리는 게 사람이다. 그렇기에 어떤 사람이 꼴 보기 싫을 때는, 단지 내가 싫어하는 부류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사과를 좋아하고 오렌지를 싫어하는 게 잘못이 아니듯, 누가 싫은 것도 무조건 잘못된 일은 아니다.


 나와 친한 어떤 선생님은 미혼 시절에 불같은 성정을 못 이기고 학생들을 쥐 잡듯 잡았었다. 그랬던 그분이 결혼하고 자녀를 낳아 키우더니 180도 변해버렸다. 이유가 궁금해서 물어봤더니 본인의 자녀를 키워보니 학생들이 자녀같이 보여서 혼내기가 어려워졌다는 것이다. 이전에는 없던 어린 인간(?)에 대한 애정이 생겼다고 했다. 학생이 다스려야 할 존재에서 하나의 ‘인격’으로 보이기 시작한 순간이다.


 최은영 작가의 단편 소설집 <쇼코의 미소> 중 미카엘라 편에는 자녀의 은혜가 하늘 같다는 어머니의 고백이 있다. 자녀의 처지에서 부모의 사랑에 감사하는 내용은 흔하지만, 그 반대의 경우는 흔치 않아서 신선한 내용이었다. 더욱이 사고로 자녀를 잃은 어머니의 처지를 표현한 것이 마음을 더 먹먹하게 했다.

 딸이 보고 싶을 때면 언제든 볼 수 있던 때도 있었다. 일을 끝내고 집에 가면 "엄마!"라고 기쁘게 부르며 달려오던 딸이었다. 딸을 품에 안으면 모든 통증이 누그러졌고 다음날 다시 일을 할 수 있는 힘이 났다. 세상의 누가 그만큼 자신을 사랑해줄 수 있을까. 그렇게 밝고 예쁜 얼굴로 한달음에 달려와 품에 안길 것인가.
 그 시절은 갔지만 여자는 미카엘라에게서 받은 사랑을 잊지 못했다. 세상 사람들은 부모의 은혜가 하늘 같다고 했지만 여자는 자식이 준 사랑이야말로 하늘 같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어린 미카엘라가 자신에게 준 마음은 세상 어디에 가도 없는 순정하고 따뜻한 사랑이었다.
- 최은영, <쇼코의 미소>


 정년을 앞둔 한 선생님은 “학생은 믿을만한 대상이 아니에요. 절대 믿지 마세요. 하지만 사랑해줘야 할 대상이에요.”라며 평생의 교직 생활을 통해 깨우친 학생관을 말해주셨다. 하기야 다 큰 어른도 믿을만한 사람이 드문데, 미숙한 청소년이야 두말할 것도 없다. 학생을 믿고 기대하기 시작하면 반드시 실망하게 되어있다. 하지만 자녀를 키우는 마음으로 사랑해주면 존재의 모습이 어떠하든 용납할 수 있다.


 이채의 시 <마음이 아름다우니 세상이 아름다워라>에는 이러한 존재의 역설을 아름다운 구절로 잘 표현하고 있다.

 밉게 보면 잡초 아닌 풀이 없고, 곱게 보면 꽃 아닌 사람이 없으되, 내가 잡초 되기 싫으니 그대를 꽃으로 볼 일이로다.
 겸손은 사람을 머물게 하고, 칭찬은 사람을 가깝게 하고, 넓음은 사람을 따르게 하고, 깊음은 사람을 감동케 하니, 마음이 아름다운 자여! 그대 그 향기에 세상이 아름다워라.
- 이채, <마음이 아름다우니 세상이 아름다워라>


 어린아이가 부모의 넓고 깊은 마음을 헤아리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마찬가지로 사람은 본인이 살아본 만큼 세상의 진리를 깨달을 수 있다. 아직 살아보지 않은 인생에 관해서는 책이나 다른 사람을 통해 지혜를 나눠 받을 뿐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아직도 껄렁껄렁한 학생이 꼴 보기 싫다. 하지만 부모는 자녀의 어떤 모습이 싫더라도, 그 자녀를 사랑하는 마음에는 변함이 없다. 선생님도 학생의 어떤 모습이 싫을 수 있지만, 그저 사랑해줄 수는 있다. 결혼하고 자녀를 낳아 살다 보면 더 나아지겠지 하면서 말이다.

이전 04화 착하지 않은 선생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