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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롱이 Oct 18. 2021

착하지 않은 선생님

모두에게 좋은 사람일 수 없어요.

 한때는 내가 맡은 학생들이 모두 나를 잘 따르고 좋아해 주었으면 했다. 그래서 일부러 착한 이미지를 만들고 유지하고자 노력했었다. 하지만 내가 특별한 노력을 하지 않아도 되는 ‘원래 착한 사람’이었으면 좋았겠지만, 그렇지 않았기에 종종 모순되는 내 모습을 발견했다. 학생이 나를 미워할까 봐 혼내야 할 때는 꾹꾹 참다가, 사소한 일에 폭발하기 일쑤였다. 이런 일이 반복되고 나니 인위적으로 만든 착한 이미지는 내 체질과 맞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착한 사람들은 종종 약삭빠른 사람들에게 이용당하고 만다. 착한 사람들은 남들에게 어떻게 보일지 전전긍긍하느라 자신의 것을 가장 마지막에 챙기기 때문이다. 교직에 있으면서 학생들에게 교묘히 이용당하는 선생님들을 무수히 봤다. 자기 수업을 자유시간 또는 자습으로 학생들에게 빼앗기거나, 분위기에 휩쓸려 한턱내는 방식으로 돈을 쓰기도 했다. 의존적인 학생에게 붙들려 밤낮없이 감정을 소모 당하는 선생님도 봤다. 이런 선생님은 평소 거절을 잘 못 하고, 작은 일에도 쉽게 상처받는다는 특징이 있다. 이들은 결국 다른 사람의 업무를 대신하느라 야근을 하고, 거절을 못 해 학생들을 추가로 지도하느라 주말마저 빼앗긴다.


 모든 사람에게 해당할 수 있지만, 선생님이라면 특히 자기 자신을 소중히 여겨야 한다. 느끼는 감정에 솔직하고, 배려심 있게 표현하며, 주권적으로 선택하고 포기할 수 있는 용기가 있어야 한다. 그리고 다른 사람이 아닌, 본인에게 먼저 착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아무것도 먹지 않은 어미 새는 새끼를 위해 먹이를 물어다 줄 힘이 없다. 일단 선생님부터 몸과 마음이 건강해야 학생들에게 흘려보낼 선한 영향력이 생기는 것이다.


 선생님은 매년 교원능력평가를 통해 학생으로부터 교육활동 전반을 점수와 글로 평가받는다. 이 시기가 되면 많은 선생님이 학생의 비위(?)를 맞추느라 분주하다. 갑자기 재미있는 수업을 한다거나, 자유시간을 주기도 하고, 맛있는 것을 사주기도 한다. 중요한 것은 이 평가가 교원의 실적에는 하등 영향을 주지 않음에도 이토록 신경 쓰는 선생님이 많다.

 이런 평가를 받고 나면 백 마디 좋은 말보다 한마디 상처 주는 말의 위력을 새삼 느낀다. 사람은 심리적으로 부정적인 말에 더 큰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세상에는 완벽한 사람이 없고, 사람의 견해는 저마다 모두 다르다. 어떤 선생님이 싫은 이유는 단지 그 과목이 싫어서, 나한테만 잘해주는 게 아니어서, 외모가 별로여서, 심지어 아무런 이유도 없이 그냥 싫은 걸 수도 있다. 익명 뒤에 가려진 악플은 때로 도깨비처럼 느껴지지만, 실체를 알고 나면 별 거 아닐때가 대부분이다.


 지금까지 교직에서 배운 중요한 한 가지는 학생들이 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별로 신경 쓸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대부분 학생은 선생님이 어떤 사람인지 잘 모른다. 학생을 얼마나 생각하고 그들을 위해 얼마나 노력하는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학생의 입에서 생각 없이 나오는 말 한마디에 일희일비하면 크게 낙심한다.

 어떤 선생님은 학생들의 지나친 요구에 대해 “그렇게 마음에 안 들면 네가 선생님을 하면 된다.”라고 응수했다. 결국, 학생들은 선생님보다 선생님의 역할을 더 잘할 리 없다. 아직 미성숙하여 자라나는 학생들에 비해, 선생님의 그릇은 비할 수 없이 크다. 하지만 어떤 선생님은 비판의 무게에 짓눌려 우울증에 빠진다. 반면 어떤 선생님은 비판을 명예로운 배지처럼 달고 다닌다. 그들은 받아들일 만한 피드백은 수용하고, 그렇지 않은 것은 무시할 줄 아는 멘탈을 가진 게 분명하다.


 나는 가끔 정치인들의 멘탈을 보면 놀라울 때가 있다. 그들은 어떤 현안에 대해 나름의 견해를 밝히면 칭찬과 비판이 공존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안다. 그렇기에 자기편은 확실히 자신을 지지하게 만들고, 반대편의 생각은 반박하거나 존중한다. 모두에게 지지받을 수 있는 사람은 독재자밖에 없듯, 어딜 가나 반대는 있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나 어떤 정치인이 이해관계에 따라 견해를 매번 다르게 취한다면 어떻게 될까? 바짝 엎드려 기회를 엿보는 뱀이나 이리저리 옮겨 다니며 이익을 취하는 박쥐라고 손가락질당하고 말 것이다.


 선생님은 자기만의 교육철학과 명확한 기준을 가지고 학생을 대하면 그만이다. 관계든 질서든 추구하는 가치를 일단 정하고 나면 뿌리내리고 변하지 않는 큰 나무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내가 정한 기준 때문에 나를 싫어하는 학생이 있어도 노심초사하며 흔들리지 말자. 대신 나를 잘 따르고 지지해주는 학생이 있으면, 일단 그런 학생에게만이라도 좋은 사람이 되면 된다. 나를 잃어가면서까지 모두에게 착한 선생님이 될 필요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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