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od bye- Starbucks.
카페를 평소에는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아메리카노가 아닌 커피 하나에 5천원이 넘어가는 가격에 인터넷에는 \“커피 한 잔과 케이크 한 조각이면 뜨끈뜨끈한 국밥이 두그릇이지!” 라는 밈들이 많이 돌아다녔었고, 지금도 그렇다. 그런 밈들에 격하게 웃으면서 공감했는데, 당시에는 ‘무슨 카페에서 저런것을 먹으면서 사치를 누리는걸까?’ 라는 의문을 자아냈었다.
그리고 가로수길을 시작으로 모던한 카페가 유행하기 시작했다. 대형 체인점인 카페베네, 투썸플레이스, 스타벅스 등의 커피전문점들이 즐비했던 과거와 달리 매력적인 디자인으로 사람들이 쉽게 방문할 수 있는 곳으로 탈바꿈한 것이다. 그래서 요즘에는 각 도시마다 가로수길을 모티브로 한 황리단길(경주), 객리단길(전주), 평리단길(인천), 동리단길(광주), 해리단길(부산) 등이 있는 것이다. 이렇게 테마가 있는 길들이 생겨나게 되면서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주말만되면 인산인해를 이루는 것이다.
주위에는 종종 이쁜 카페가 어디인지 서로 추천을 주고 받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누가 봐도 ‘와-‘ 할 정도로 궁전처럼 으리으리한 카페가 있는가 하면 페인트칠과 에폭시로 마무리한 인더스트리얼 스타일, 미니얼 스타일, 그리고 과거를 회상할 수 있을 정도로 옛 가구들만을 가지고 배치를 한 엔티크 느낌의 빈티지 스타일 카페까지. 최근 인테리어에 관심이 많아졌는데 카페에 가면 각 인테리어의 장단점과 가구, 화분 배치등을 눈여겨보게 되더라. 내 개인적인 Best 와 Worst 를 꼽자면, 기가 막히게도 이건 확실하다, 아래와 같다.
1. Best : 엔티크한 스타일의 카페
- 엔티크함을 참 좋아하는 나의 성향을 반영할 수 있어서일까? 엔티크 느낌의 카페들이 상당히 마음에 든다. 마음의 편안함을 얻기 위해서는 새로운 것보다 익숙한 것이 많을수록 그것에 적응하는 에너지를 덜 쏟을 수 있고, 무엇보다 가게 주인들의 세심한 인테리어를 눈여겨 볼 수 있다. 오래된 카메라부터 시작해서 축음기(몇몇 카페에서는 실제 음악을 들을수도 있었다), 때가 묻어있는 가구들을 바라보면 마음의 휴식을 취할 수 있다고 해야할까.
2. Worst : 인더스트리얼 스타일 카페
- 사실 나는 미니멀한 느낌의 인테리어를 좋아하지만 인더스트리얼 느낌의 카페는 정말 싫다. 최근 생겨나는 카페들의 특징이 이런 류의 카페인데, 블로그를 보거나 직접 가서 사진을 찍으면 “와- 분위기 좋다” 라는 느낌이 확 느껴진다. 근데 그게 전부다.
이런 카페들은 벽이 소음을 흡수하지 않고 소리가 울린다. 반대편 벽에서 얘기하는 사람들의 소리가 벽과 벽을 반사하고 또 반사해서 내 귀로 들어온다. 지금도 인더스트리얼 스타일의 카페에서 글을 쓰고 있는데 반대편 벽에 손님이 한 명 뿐이지만 그 사람들의 이야기가 내 머릿속을 지진처럼 흔들고 또렷하게 들린다. 테이블당 간격도 은근 좁은 경우가 많아서 주말에 이런 카페를 간다면 상대방과의 대화에 집중할 수도 없다. 이야기를 하러 온 카페에서 가족오락관 게임이었던 ‘고요속의 외침’ 을 한다고 해야할까? 더군다나 이런 곳에서 글을 쓴다거나 공부를 하는건 절대 안되기 때문에 가장 가기싫은 카페 유형이다. 오늘 방문한 이 카페도 스콘이 맛있다고 해서 왔는데… 직접 집에서 스콘을 만들어보고 맛이 없으면 종종 테이크아웃만 하러 와야겠다. 커피 무척 싸서 좋았는데…
나는 스타벅스를 주로 간다. 사실 옛날 스타벅스는 나에게는 사치라고 생각할 정도로 기피하던 곳이었다. 적당한 개인 카페를 간다거나, 가격이 더욱 저렴한 이디야 같은 곳을 가는 것으로 갈음했었다. 그랬던 내가 스타벅스를 좋아하게 되다니…
미국에서부터 스타벅스의 사랑은 시작됐다(?). 내가 있던 텍사스에서 겨울-봄 날씨는 최악이었다. 툭하면 비가 오고, 시정이 나빠지는등의 악기상 경보(Convective SIGMET)를 종종 접하기 때문에 아무리 일주일 내내 비행스케쥴이 잡혀 있더라도 그 중 최소 3~4일은 취소되었다. 하루에 단 두시간의 비행을 하는게 내가 미국에 있는 유일한 목적인데 그것조차 취소된다… 한마디로 잉여의 삶이 시작되는 것이다. 처음에는 집에서 공부를 하거나 기숙사의 게스트 하우스에서 공부를 하며 시간을 보냈다. Youtube에서 레트로나 잔잔한 카페 테마의 음악을 들으며 공부를 했다. 그와 반대로 룸메이트는 일이 있든, 없든 항상 스타벅스를 갔다. 아니, 왜 스타벅스를 가는거지?
의문이 들었다. “그라인더와 커피머신을 사서 집에서 먹는게 더 합리적이지 않을까?” 라는 생각 속에서. 그래서 스타벅스가 뭐가 좋은지 직접 알기위해 종종 따라갔었는데 둘이 가다보니 나만의 시간을 가지기가 힘들었다. 하지만 스타벅스 특유의 온화하고 적당한 소음이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한번은 직접, 구글 맵에서 스타벅스를 하나 찍어서 혼자 갔다. 마침 비행을 3일 동안 하지 않아서 무척 기분이 꿀꿀하고 억압되어 있었기 때문에 어디든 떠나고 싶었다. 미국에서 만난 한국인 형들과 친구들을 만나는것도 한계가 있었던지라 나만의 시간을 아늑한 곳에서 보내고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고 할까?
미국에서도 카공족이 많은데 스타벅스는 특히 더 그렇다. 2~3블록만 가더라도 스타벅스가 즐비해 있었고, 부담없이 노트북을 하고, 공부를 할 수 있는 것이다. 나이드신 분들도 스타벅스에 와서 책을 읽고, 공부를 하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었고 아무도 신경쓰지 않았다. 이야기를 하러 온 분들도 우리를 배려해서인지(실제로는 배려가 아닌그들 자체의 모습이겠지만) 적당한 목소리로 대화를 나누더라.
어느 스타벅스를 가던 바리스타들도 정말 친절했다. 사람들이 밀려 있는 경우가 가끔 있는데,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마다 ‘기다려줘서 너무 고맙다-‘ ‘아니에요, 이런 휴일에 정말 고생이 많네요’ 같은 잡담을 나누는것은 기본이고, 또 어떤날은 내가 시킨 커피가 아닌 다른게 나와서 “이 커피, 제가 시킨게 아닌거 같은데요?” 라 한 적이 있었다. 미안하다고- 그거 그냥 먹으라고 새로 만들어 주겠다고 하던 그의 대답에 나는 ‘다 되면 부르겠지?’라 생각하고 자리에 앉아 공부를 하고 있었다. 근데 그 사람이 내 앞에 직접 커피를 가져오더라. ‘미안하다고, 맛있게 먹어라’고 하면서. 나중에 내 옆옆 자리에서 그 사람이 Job Interview를 진행하던 것을 보았는데, 지점의 매니저였던 것이다. 훤칠하고 턱수염이 인상깊었던 매니저와 자주 마주치며, 가끔씩 안부를 주고받던 바리스타들을 보며, 나도 한국에 돌아가면 꼭 스타벅스에서 일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가졌었다. 친구들은 이 이야기를 듣고난 뒤, 미국에서만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며 한국에서는 일하지 않는게 좋을 것 같다는 충고들을 해 주었다. 스타벅스 굿즈 대란과 최근 50주년 스타벅스 리유저블컵 사건을 돌이켜보면 한국형 스타벅스에서 일하는 것보다, 미국에서의 가졌던 스타벅스의 좋은 추억을 남기는게 현명할지도 모른다며…
그 당시 스타벅스에선 다양한 일이 있었다. 대부분 내가 항공관련 공부를 주로하는데 사람들이 가끔씩 물어본다, 무슨 공부를 하고, 어디서 왔는지. 그들은 전혀 거리낌이 없다. 이런 식으로 여러 사람들과 카페에서 이야기를 했었는데 정말 이게 미국인의 쿨한 마인드인가? 싶을 정도였다. 그 때를 제외하고 카페에 있는동안 이렇게 직접 말을 건 사람은 단 한명도 없었기 떄문이다.
한 날은 간호사 복장을 한 백인 할아버지가 커피를 시키고 내 옆에 기다리고 계셨다가 우연히 내가 공부하는것을 보았다.
“그거 터미널 차트지? 학생 조종사야?”
“응, 지금 Instrument Rating 준비하고 있어. 시험이 일주일 뒤거든”
“긴장되겠는데. 비행은 재밌어? 요즘 날씨엔 참 비행하기 좋을텐데”
이렇게 시작한 대화에서 나는 그 할아버지가 미 공군 대령으로 예편한 조종사라는걸 알게 되었다. 군대를 예편하고 American Airlines 로 가려했는데 건강상의 이유로 1st Medical Certificate가 나올 수 없었고, 차선택으로 간호 관련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수천시간, 아니 잘하면 만시간을 가지고 있을지도 모르는 그에게 나는, 달랑 200시간도 비행시간을 보유하지 않는 햇병아리일 것이다. 그 짧은 시간에 많은 이야기들을 할 순 없었지만, 자기 주위에 한국인 친구가 있다고, 아마 그 친구도 좋아할 거라고, 관심 있으면 다음주 수요일 여기 스타벅스 오후 2시에 모임을 갖으니까 부담갖지 말고 오라고 하더라. 하지만 일이 있어서 가지 못했고, 그 할아버지를 다신 마주칠 수 없었다. 이 일 외에도 중국어 할 줄 아냐며, 가르쳐 줄 수 없겠냐고 물어보며 친해졌던 Jonathan과 비행교관 과정 중이라며 우리랑 비행에 관해서 이야기를 나눴던,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 백인 친구까지. 비록 지금은 스쳐지나간 인연이지만 덕분에 자유롭게 대화할 수 있었고, 긍정적 에너지를 얻을 수 있었다.
이렇듯 단순히 스타벅스의 분위기를 좋아하는것을 넘어서서 새로운 사람들과 거리낌없이 대화할 수 있었던 곳인 스타벅스가 난 무척이나 마음에 들었다.
한국에서의 카페는 ‘만남의 장’보다 내겐 ‘아지트’ 같은 느낌을 가지기로 했다. 혼자있는 시간이 많아 루즈해지기 쉬운 집보다 최소한 바깥에서 시간을 보내는게 낫기 때문이다. 그래서 옛 기억을 살려 종종 스타벅스에서 책을 읽고 공부하는 습관을 들이는데, 알다시피 한국에서는 미국과 많이 다르다.
특히 내 집 근처에 유일하게 있는 스타벅스는 1층으로 규모가 작아 항상 사람들이 많다. 창가에 있는 두 자리만이 유일하게 신경쓰지 않고 공부할 수 있는 곳이다. 작다보니 뒤에 사람들이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생생하게 들을 수 있어 적당한 백색소음만이 필요한 나에겐 이 곳이 무척이나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메뉴의 다양성과 과거의 좋았던 기억을 가진채 꾸준하게 스타벅스에 들리지만, 퇴근 후 지친 몸을 이끌고 글을 쓰고 공부를 하려는 나에게 이러한 소음들은 점점 거슬리기 시작했다.
앞으로 당분간은 스타벅스를 그만 가는게 현명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