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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여자가 식탁 의자에 앉아 글을 쓴다

by 자유로운 풀풀 Mar 24. 2025

한 여자가 식탁 의자에 앉아있다. 두 눈을 감았다. 숨을 고르듯 천천히 호흡한다. 


그녀의 남편은 소파에 엎드려있다. 쿠션을 깔고 엎드린 그는 야간근무를 마치고 잠이 든 후 오후 6시에 일어났다. 그리고 저녁 8시 51분, 그는 시차적응 중인지 그저 엎드린건지 모를 모양으로 소파에 엎드려 눈을 가늘게 뜨고 핸드폰을 보고 있다. 그녀의 남편은 핸드폰으로 게임을 하고 유튜브를 시청한다. 유튜브에서 얻은 잡다한 지식으로 운전을 하는 아내에게 "깜빡이를 넣지 않으면 뒷 차가 신고한다"라고 종종 말한다. 


건조기 안에는 남편이 개어야 할 빨래가 담겨있다. 오랫동안 건조기에서 꺼내지 않으면 냄새가 날텐데와 같은 걱정은 그 여자의 몫이다. 그럼에도 그녀는 직접 빨래를 꺼내고 싶지는 않다. 빨래를 꺼내어 개는 것만이라도 남편에게 떠넘기고 싶은 마음이다. 


거실 현관에는 차에 실어야 할 짐이 한가득이다. 몇 주 전, 남편이 세차를 하느라 차 트렁크에서 꺼내놓은 짐을 다시 차에 싣기 위해 남편이 끄집어내어놓았다. '중문을 닫아야 하는데'라고 그녀는 생각하고 눈을 감아버렸다. 짐을 30cm옮기기 위해 힘을 쓰고 싶지 않았다. 


그녀의 아이들은 엄마의 침대 아래에 이불을 깔고 누워있다. 잠을 자야하는 시간이 지났지만, 잠들기 전 들은 노래가 흥겨워서인지 쉽사리 들뜬 기분을 가라앉히지 못하는 눈치다. 어두운 방 안에 두 아이가 누워서 "조용히 해, 니가 더 시끄러워"라고 속삭이며 투닥거린다. 


한 여자가 식탁 의자에 앉아있다. 두 눈을 감고 숨을 들이마쉬고 내쉰다. 머릿 속에서는 제 맘처럼 움직여주지 않는 남편을 향한 원망 섞인 욕지거리와 좀처럼 빨리 잠들지 않는 아이들을 향한 비난의 문장이 맴돈다. 다시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내뱉는다. 큰 숨이 빠져나갈 때마다 두 눈을 감은 그녀의 시선이 이마로, 머리 위로, 싱크대 상부장 끝으로 가서 그녀의 공간을 조망한다. 


한 여자가 식탁 의자에 앉아있고, 그녀의 남편은 소파에 누워 휴식을 취하며, 그녀의 두 아이들은 잠을 청하고 있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녀는 노트북을 펼쳐 브라우저를 열었다. 지금 그녀의 모습을 조망하며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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