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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날도 있네요"

by 베이브 Dec 05. 2024

"이런 일도 있네요"

해수의 눈은 금방 눈물이 떨어질 듯 충혈되어 있었다. 은행잎이 수북하게 떨어진 길을 걸어서 밥집으로 갔다. 대학가에도 이제 만원 아래로 밥을 주는 데가 없었다. 순두부에 피클 몇 가지 담긴 쟁반을 앞에 두고 앉았다. 

"수료는 했는데 졸업이.. 앞이 안 보여요, 이젠 어쩌죠?"    


      

“이건 어렵겠어요. 안 돼요, 네 “

교수는 엄혹했다. 수업은 그대로 끝이 났고 갈 곳 없는 해수의 원고만이 책상에 남았다. 주섬주섬 프린트해 온 용지를 왼손에서 오른손으로 옮겨 잡는 해수의 눈도 손도 파르르 떨렸다. 

”가려고? 조금만 있다가 가요“

해수와 호수를 걷는다. 

”진짜, 대학원이 이래요? 안되면 안 되는 이유라도 말해 줘야지. 나에게는 ‘너는 아직 멀었다’로 밖에는 안 들렸어요. 그럼 어떻게 하는지나 알려주시지 “

거위들이 뒤뚱거리며 물 밖에서 안으로 유영하며 거닐었다. 그런 속 편한 무리들조차 눈에 쏙 들어오는 날이다. 뭔가 심하게 어긋난 날에는 미물조차 대단해 보인다. 사는 방법에서는 가금류들이 훨씬 속 편하다. 조류독감으로 살처분 당하는 것만 아니라면....

”석사 논문이 이만큼 어려울 줄 알았다면? 그래도 시작했겠죠? 크크크,  제가 이렇게 될 줄 누가 알았겠어요 “ 

전의를  상실한 해수와 나는 그날 늦게까지 술 한 병을 앞에 놓고 가겟집이 문을 닫을 때까지 신세타령을 했다.  


   

해수는 학교에 나오지 않았고 일 년이 지났다. 몸이 아프다고 했다. 그래도 논문을 쓰기 위해 새로운 실험 집단을 구성해서 운영하는 중이라고 했다. 수료생, 학교에도 나오지 않는 잊힌 학생. 그런 그녀가 일 년 만에 학교에 나타났다.

전화를 받느라고 바쁜 모습이었다.

”실험집단에 내분이 생겼어요. 너무 불안 불안해서 유지가 될지....., 드롭되면 어떻게 되는 걸까요? “

알 수 없었다.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결과를 미리 예상하는 가설 검증이 목적이 아닌데 어떤 결과가 나올지, 실험집단이 어떻게 흘러갈지 또한 미지수였다. 

논문을 쓰는 동안은 일 다운 일을 할 수 없다. 학위가 없는 채로 일에 뛰어들 것인지, 학위를 향해 매진할 것인지는 늘 문제였다. 학위 없이 일을 한다고 해도 프리랜서로 머물 위험성이 컸다. 

”시간제로 일하고 돌아와 보고서 쓰고 시간이 너무 부족해서, 일을 조정하고 요새 뭐 하는지 아세요? 수료까지 했으니 더는 손 벌리는 게 말이 안 되잖아요. 월세도 내고 제 힘으로 살아 보려고요. “

밤마다 물류센터에서 일을 한다고 한다. 직업에는 귀천이 없고 공부를 포기하지 않으려는 시도니 더욱 숭고하다. 그런데 진심 어린 액션은 좀 어렵다. 고작 '그거 힘들 텐데'가 전부였다. 아직은 물류일을 하지 않는 나는 좀 나은가 하는 생각이 일순간 일었다. 저러다 논문 프로포절은 제때 할 수 있을까 싶다. 


좋아요, 목적과 필요성도 적절하게 설득이 잘 되네요. 여러분은 어때요?

그날 수업은 온통 해수에게 시간이 할애된, 해수의 날이었다. 지도교수의 콜 사인이 떨어진 것이다. 이제는 프로포절 신청을 하고 원고를 작성하여 제출하는 일만 남았다. 물론 발표를 하면서 송곳 질문에 대비해야 한다. 그렇지만 모든 일은 순차적인 단계가 된다.     

우리는 다시 물속으로 잠수하는 거위를 보면서 섰다.

”이런 날도 있네요. “

해수의 얼굴은 자신감과 회복된 자존감으로 반짝였다. 서쪽에서 지는 해가 물빛에 반사되어 음영처리된 얼굴은 마치 승리의 여신처럼 당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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