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싶었어요 “
그녀가 왔다. 어디서 나타났는지 환한 미소와 함께 문을 열고 들어왔다. 잠시의 휴식, 그 5분의 틈새로 찾아와 준 그녀로 인해 분위기는 조금 더 명랑해졌다. 그녀를 대면한 잠깐의 시간은 마치 건조한 가을단풍 사이로 내린 단비 같았다.
주영을 만나 저녁밥을 먹으며 물어보았다.
“우리는 연락해야 만날 수 있는 사이잖아요, 근데 우리도 일주일씩 안 보면 혹시 보고 싶지는 않을까요?”
그녀가 웃었다. “그 주를 건너뛰면 아마도 보고 싶다는 걸 알아차릴지도 몰라요 “
그래, 정기적으로 만난다는 것은, 참아낼 수 있는 정도의 일상적 그리움이다. 자주 만난다는 것은 그리움의 틈을 주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 내일이면 만나는데도 굳이 보고 싶어서 찾아오는 건 어떤 마음일까? 오전의 그녀를 생각하며 관계의 가깝고도 먼 거리를 가늠해 보았다.
“그건 아마도 연인관계에서나 가능하겠죠. 돌아서면 또 보고 싶고, 그러니 내일 만나는데도 오늘 찾아올 수밖에요. 왜요? 혹시 제가 안 찾아와서 서운했어요?”
10월은 축제의 계절이지만 학술제의 계절이기도하다.
가까운 거리에서 3가지 주제로 학술대회가 열렸다. 어디에 참석해야 하나 하는 즐거운 고민을 안고 찾아간 자리에 내심 기대한 그분은 오지 않으셨다. 제자가 발표를 하는 자리인데 왜 오지 않으셨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한편으로는 사람을 덜 챙기는 분이신가, 관심이 덜 하신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의구심은 그 후에 있은 조그만 자리에서 해소가 되었다.
“나 같은 사람이 좋은 것을 주렁주렁 달고 다니면 어떨 것 같아요? 그런 그런 눈초리를 이겨낼 자신이 없어요.”
그분은 제자들이 우르르 스승을 따라 나타날 것을 예견하고 불참하신 거였다. 자신이 시기심과 질투심을 이겨낼 만큼 강단이 없는 이유라고 했다. 시기심과 질투는 나에게 없는 것을 가진 사람에게 향하는 미움과, 나보다 더 좋은 것을 가진 상대를 향한 불안한 마음이다.
나는 가까운 사람과 가깝다는 것을 잘 드러내는 편이다. 말과 표정으로 뿐 아니라 지나가면서 스킨십도 한다. 누군가 나의 모습에서 시기와 질투를 느낄 수 있을까?
그럴 리는 없겠지만 만약에 누군가 나와 친해지려 부단히 애를 쓰는 사람이 있다면 아마도 소외감과 서운함을 느끼기는 할 것 같다.
시기심이나 질투의 감정은 그보다 더 복잡하고 조금 더 상위의 능력에 대한 기분인 것이다.
나보다 나은 능력이나 성취를 이룬 사람이, 나보다 괜찮은 외모를 가졌을 때 시기나 질투가 생긴다.
분명히 이 불편한 감정은 모르는 사람에게는 생길 것 같지가 않다. 잘 알거나 비슷한 무리가운데 어떤 사람에게 생기는 뭔가 꽁꽁 숨겨두고 싶은 마음이라고 여겨진다. 그렇다면 질투나 시기심은 경계심조차 갖지 않았던 살짝 우습게 본 사람이 나보다 뛰어난 성과를 보일 때 일어나는 자연스러운 감정이 아닐까 싶다. 원래 뛰어난 사람은 애초에 나의 경쟁 상대도 아니다. 내가 의지하고 마음을 터놓고 지낸 막역한 사이에서 점차로 격자가 벌어질 때 시기심은 그때 찾아오는 것 같다.
시기심이 많은 것은 의존심과도 관련이 된다. 독자적인 사고를 하는 사람이면 타인을 시기하지 않는다.
어떻게 하면 타인의 마음에 시기심을 일으키지 않을까 하는데 몰입했다가, 타인의 마음에 불을 지르는 시기심을 미리 알고 조절하는 그분의 경지를 다시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