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님, 이거 계약위반인거죠?
-장학금의 행방-
“아, 뭐라고요? 다시 한 번 말씀해 주시겠...?”
딸깍하는 해제음과 함께 들어온 나를 본 j가 연신 눈짓을 하며 급히 밖으로 나갔다. 창밖으로 이름모를 나무들이 새빨갛게 물들어 가고 있었다. 나는 머그를 꺼내고 뜨거운 물을 흘려 커피를 만든다. 핸드드립으로 마시는 커피는 손쉽게 건네받는 머신 추출 방식보다는 훨씬 부드럽게 느껴졌다.
아씨이 아씨이.....
j가 들어온 모양이다. 또 다시 나의 존재를 잊은건지, 그의 입에서는 공기를 만나지 못한듯한 시한 폭탄들이 거친 파열음을 내고 있었다.
“망했어요! 아씨이~.”
“뭐예요? 언제 안 망한 적 있어요?”
j는 어제만 해도 발표용 ppt를 만들기 위해 10시가 넘도록 퇴근을 못하고 있었다. 몸과 마음을 갈아 넣은지 하루만에 일이다.
그렇긴 한데-, 로 시작한 이야기는 그간 연명해온 장학금이 날라가 버렸다는 것이다.
“우리 교수님이 퇴직하셨는데 제가 왜 피터져야 하죠?”
따지는 듯 나를 노려보고 물었다. 말이 안 되긴 하는데 그건 나도 모른다고 말하려다가 입술을 지긋이 눌렀다. 연구장학금 신청에 줄줄이 떨어진 쓰린 기억들이 되살아났다.
“교수님이 갑자기 퇴직을 하셨는데 어떻게 그걸 알고 손을 쓸 수 있냐구요? 애도 다컸는데 아무리 개인사라해도 이건 좀....”
“애 문제, 아니 자녀분 때문이래요?”
인문계열인 대학원에서 장학금을 받는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성적우수의 기준도 없고 현실적인 것은 국가 장학금과 근로 장학금 정도다.
드물게 전공 특성에 따라 연구재단 장학금이 있다. j는 연구를 조건으로 장학금을 받는 연구재단 장학생이었다. 대학원을 수료한다고 해도 학위를 받기까지 계속해서 연구를 하고 그 절정이 학위논문이기 때문에 과정수료 후에도 어느 시기까지는 받을 수가 있었다.
꿈의 직장, 누구나 선망하는 자리, 퇴직까지는 절대로 놓지 않고 싶은 자리. 교수자리는 정년이전까지는 계셔 줘야하는 자리다. 그래서 단 한 분의 교수님을 정할 때 정년이 얼마나 남았는지를 보고 내가 마칠 때 쯤을 열심히 계산해본다.
외국의 사례에서는 어린 자녀를 키우기 위해서이거나 자녀와 좀 더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 고위 공무원을 사임하는 일이 있었다 (미국과 호주(켈리 오드와이어 노동부장관)의 사례)
내가 아는 어떤 교수님도 스무살이 넘은 자녀와 더 많은 시간을 보내기 위해 학교를 떠나시긴했다.
일찍 퇴근하겠다, 술을 마신다. 밤새 게임을 한다. 난데없는 빰을 맞고 오늘 할 일들을 보따리처럼 풀어내면서도 j는 꿈쩍않고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위로가 될까하여 이전에 어떤 교수님의 이야기를 꺼내다 입을 닫아버렸다. 당장 다음달부터 닥쳐올 생활의 위기는 타인을 향한 역지사지만으로는 해결이 안 되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한바탕 소란으로 커피는 식어 있었다. 연구노트를 꺼냈다. 흔들리는 초심을 다스리는 법이라고 꾹꾹 눌러 적는다. 그 방법이 뭐였더라, 내 발걸음은 이미 j에게로 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