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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런썸 Feb 09. 2022

봄을 일찍 만나고 싶다면

카랑코에

우리 집 베란다는 겨울 내내 꽃잔치다. 저렴하고 키우기도 쉬운 카랑코에 덕분이다. 지난 1월에 6학년 아이들이 졸업할 때 꽃화분을 선물로 하나씩 주자고 하여 대량으로 구매한 것인데 두 개가 남아서 가지고 왔다. 뒤에 보이는 겹꽃 카랑코에는 근처 화원에서 산 개량종이다. 장미처럼 꽃송이가 탐스럽고 화려한 맛은 있으나 나는 소박한 홑꽃이 더 좋다. 아이들한테 나눠 줄 때부터 이미 피고 있었으니 한 달이 넘도록 내내 저 상태인데 앞으로 몇 주는 더 끄떡없을 것 같다. 



카랑코에는 돌나물과에 속하는 열대의 다육질 꽃식물이다. 잎이 매우 두꺼워서 물을 너무 자주 주면 안 된다. 손가락으로 흙을 찔러보아서 속흙까지 마른 것을 확인하고 물을 준다. 거실보다 서늘한 베란다에서 햇빛을 듬뿍 받고 있으니 더 오래 꽃을 보여주는 것 같다.



올 겨울에도 이렇게 고운 자태를 다시 볼 수 있게 잘 키워야 될 텐데 자신이 없다. 작년 봄에 온 아이가 힘들게 여름을 버티고 살아남아 지금 이런 모습이기 때문이다. 아, 같은 꽃이 맞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다. 하염없이 자라는 줄기와 꽃대를 어찌할 줄 몰라 그냥 두었더니 이런 모습이 되고 말았다.





식물을 잘 키우시는 유튜브 채널을 보면 “식물을 사랑하면 가위를 드세요.”라는 말들을 하신다. 나는 식물에게 가위를 대는 게 조심스러워서 아직 잘하지 못한다. 가위질에 게으른 식물 초보는 저 이쁜 아이들이 내년에 줄줄이 이런 모습으로 되어 가는 걸 지켜볼 도리밖에 없다. 올봄에 꽃이 지고 나면 눈 질끈 감고 영화 ‘가위손’ 마냥 현란한 가위질을 해서 너희를 방치하지 않으리라 다짐해 본다.


그래도 꽃 빛깔은 여전히 사랑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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