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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런썸 Feb 09. 2022



동물은 평화롭고
생선은 푸르며
사람은 애처롭다.
-김소연, '한 글자 사전' 중 '등'


아버지의 등은 언제 저렇게 자그마해졌을까. 지난여름, 고성 앞바다에 놀러 갔을 때 아버지는 하염없이 바다를 보고 계셨다. 2만 원에 파라솔이 딸린 평상을 대여했는데도 저렇게 돌 위에 한참을 앉아 계셨다. 아버지의 등은 쓸쓸해서 바람소리가 났다. 이리로 와서 앉으세요. 나는 아버지를 부르다가 그만두었다. 대신 그런 아버지의 등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던 것 같다.   


며칠 전, 거실에서 남편과 둘이 홈트를 하다가 옆으로 돌아누운 남편의 등이 보였다. 매트에서 모로 누워 잠깐 숨을 돌리고 있는데 아버지 등에서 났던 바람소리가 남편의 등에서도 들리는 것 같았다. 집에 있으면 붙박이처럼 소파에 앉아 휴대폰과 노트북만 끼고 살아서 눈치도 참 많이 주는데 저 사람 인생도 참 고단할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얘들아, 아빠는 이래도 되는 분이셔."라고 말하면 남편이 뭔 일인가 싶겠지. 말 없는 뒷모습이 때로는 더 많은 것을 말한다.   


신형철의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을 다시 읽고 있다. 책 겉장에 눈길이 갔다. 거기 앉아 있는 사람도 등지고 앉아 있었다. 작가는 책에서 '타인의 슬픔을 똑같이 느낄 수 없음'을 인간의 근원적 무능력이라고 했다. 표지 그림이 다시 보였다. 이 등은 슬픈 것인가, 무능력한 것인가. 어느 쪽이라도 좋다. 서로의 슬픔을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은 견디기 힘들지만 '근원적 무능력'이라고 하는 작가의 말에 의지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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