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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익명 Nov 01. 2023

내 감정을 믿지 않는데 어떻게 어색하지 말라는 건지

어색해하지 말라고요? 어쩌라는 건지

 나는 어색한 인간이다. 

사람들 사이에 있을 때 어딜 가도 어색하다. 이 어색함은 마치 실제로 존재하는 물질처럼 흘러넘쳐 내가 존재하는 공간을 채우고 다른 사람들에게까지 전염된다. 나를 대하는 모든 사람이 어색해지는 재주를 갖고 있다. 

 사람들은 나를 '뚝딱댄다'고 한다. 어디에 있든 편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도대체 왜 이러는지 나 자신조차 알지 못했다. 그만 뚝딱이고 싶고 그만 어색하고 싶은데, 뭘 하든 편하지가 않으니 사람들과 함께하는 일은 죄다 망쳤다. 심지어 교대를 다니고 활발히 동아리 활동이나 대외 활동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연락을 해야 하는 누군가한테 연락을 하거나 대화를 청하거나 연결하는 일이 어려워서 일을 망치곤 했다. 함께 하는 것에 정말 소질이 없다. 편하지 않으니 하루하루가 숨이 막히고 답답했다. 답답증이 거의 병증이라고 할 만큼 괴로웠다. 혼자 있을때가 최고로 편했다. 

 최근 이 답답함의 정체를 알아차렸다. 나는 감정을 표현하거나 감정이 자연스럽게 표출되는 때에 불편함을 느낀다. 왜냐, 감정을 믿지 못하기 때문이다. 본능적이고 자연스러운 판단인 감정적 판단을 신뢰하지 않는다. 감정이 올라올 때면 그 감정에 대해 내 속에서 먼저 판단과 평가부터 들어가는 것이다. 이 감정은 드러내도 되는 감정인가? 아닌가? 물론 어느 정도는 필요한 필터링 시스템이라는 생각이 들지만 아주 사소한 것에서부터 모든 종류의 감정에 잣대를 들이대고 나의 검열을 통과하지 못하면 절대 드러내지 않기 때문에 뭘 해도 융통성이 없고, 빠른판단이 불가능하고 경직되는 것이다. 

 언제쯤 나 자신을 마음놓고 드러낼 수 있을까? 나 자신을 드러낸다면 미움받을까 두렵다. 진짜 내 맘대로 해도 세상이 무너지지 않을까? 천지개벽하는거 아냐? 

 어떻게 하면 나의 감정을 믿어줄 수 있을까? 과거에서 현재의 문제를 찾는 것을 그만두고 싶지만 나는 내 감정이 수용되어 본 경험이 적어서 감정을 믿지 못하게 된 것이 아닌가 싶다. 여기에서까지 어른스러운 척 하고 싶지 않아서 사실대로 그냥 말하자면, 나는 가끔 내가 불쌍하다. 불쌍하게 여겨지는게 싫으면서도, 누가 나를 가엾게 여겨줬으면 하고 바란다. 자신의 감정이 수용되어 본 경험이 없어서 스스로 자신을 가둬 버린 어린아이라니 너무 불쌍하잖아! 그리고 엄청나게 억울할 때도 있다. 왜 엄마는 나를 대안학교에 방치해서 그 차가운 냉골과 같은 관계의 단절속에 나를 버려두었는가. 나 스스로 서서히 나아지고 있는 것을 느끼고 있지만 또 이렇게 사회성 부족이 드러날 때마다 원망하게 되는 것은 사실이다. 나도 정상적인 학교 친구들과 별 이상 없이 어울리고 친한 친구가 몇이라도 있는 학창 시절을 보냈더라면 지금 어떻게 달랐을까 하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또 이런 이야기를 주위 사람들에게 할 수는 없는 것이, 나는 이런 상처받은 어린아이로 보여지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어른스럽고 이성적이고 자신의 일을 잘 해낼 수 있는 믿음직한 사람으로 보였으면 한다. 이런 이야기는 너무나도 구질구질하고 구차하고, 또 이런 이야기 아무도 관심도 없을 것이고. 술먹고 아차 해서 말하고 나면 술이 깨고나서 나의 존엄성이 훼손된것 같은 감각을 느낀다. 웃기지만 이런 이야기 전부 술먹고 털어놓으면 후회하는 이야기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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