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 모든 서비스직에서 희생되고 있을 꽃받이들을 위한 위로
"이해한다 말만 하지 말고 처리를 해줄 것이지 앉아있기만 하고 뭘 하는 거야? 썩어빠진 것들"
손이 떨리고 하늘과 땅이 거꾸로 뒤집힌 듯 속이 매쓰꺼웠다.
썩어 빠진 것들? 나는 과연 처음 본 사람에게 그런 말을 들어야 하는 타당한 이유가 있을까?
일련의 이유가 있다면 나는 그 욕 값으로 월급을 받고, 대기업 정규직 신분이라는 무거운 책임감으로 고객 상담실에서 민원처리를 담당한다는 이유 하나밖에 없으리라.
"고객님 썩어빠진 것들이라는 표현은 자제해주세요. 저희도 인권이 있는 직원입니다."
고객 상담 6년 차 처음으로 고객에게 "인권"이라는 단어를 뱉었다.
그리고 눈물이 고일 듯 말듯한 눈으로 고객의 두 눈을 차갑게 응시했다, 감히 고객의 눈빛을 피하지도 않고 말이다.
내 한계치의 눈금 하나만 넘쳤다면 나는 이성을 잃고 고객과 싸우려 들었을 것이다.
지금 다시 생각해봐도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나왔는지, 내 안의 응축된 분노가 더 이상 중력을 버티지 못하고 스크래치 난 감정의 틈 사이로 새어 나와 버렸다.
그런데 이후 고객 반응이 더 놀랍다.
"허 참 아니 그러니까 입장을 바꿔 생각해보세요. 나라고 이렇게 까지 하고 싶겠어요?"
폭언을 하던 고객이 내 눈을 3초간 응시하더니 갑자기 이성적으로 말을 이어간다.
아니 오히려 내 눈을 피하더니 태어나 소리 한 번 질러 본 적 없는 고상한 부인 행세를 한다.
예상치 못한 고객의 태도에 최악의 상황을 맞이하지 않은 것을 속으로 안도한다.
단 15초 전까지만 해도 옷을 집어던지고 3평 남짓한 고객상담실이 떠나가도록 소리를 지르던 그녀는 어떤 감정의 변화가 있었던 것일까?
단순히 이성을 되찾고 자신의 감정을 추스른 걸까, 인권을 짓밟는 무식한 고객으로 보이고 싶지 않아서였을까?
전자가 되었든 후자가 되었든 결론은 하나다.
자신이 상대방에게 비정상적인 행동을 했다는 것을 직감한 것이다.
나는 왜 지금까지 오늘처럼 용감하지 못했을까?
왜 고객이라는 방탄복을 입고 무자비하게 총질을 해대는 그들에게 좀비 마냥 너덜너덜 해진 몸과 마음을 겨냥하도록 내버려 둔 것일까?
150만 원가량의 고가의 패딩. 비싼 옷이라 두 번 입고 드라이를 맡겨 옷장에 고이 보관을 해놓았는데
올 겨울 다시 입으려고 꺼냈더니 패딩 군데군데 변색이 되어 있더랬다.
고객은 무조건 불량이라는 생각에 매장에 항의를 했고 매니저도 이건 정상적인 것 같지 않다며 소비자 단체에 심의를 보냈으나 결과는 햇빛에 장시간 노출된 채 고정화된 상태에서 보관 부주의로 인해 발생한 것이라고.
그것도 세 군데의 각각 다른 소비자단체에서 말이다.
내가 고객이라도 피가 거꾸로 솟을 일이다.(맹세코 두 번만 입고 오염되지 않은 채 드라이 후 햇빛에 노출하지 않고 옷장에 고이 보관만 했다는 가정하에) 고가의 제품을, 그것도 백화점 매장에서 이런 일이 발생할 것이라는 의심의 여지도 없이 턱 하니 구매했으니 말이다.
백화점의 입장 또한 난감한 것이다. 고객의 입장에서는 충분히 속상하고 화가 날 일이니까. 하지만 의류 심의 전문가들이 불량 제품이 아니란다, 보관을 잘못했단다.
이 상황에서 "고객이 불편하다고 하니 환불해주세요."라고 백화점은 매장에 말할 수 있겠는가?
예전이었다면 백화점과 입점된 브랜드는 무언의 갑과 을의 관계 속에서 울며 겨자 먹기로 백화점의 요구를 거부하기 힘들었으리라.(실제로 그런 점을 악용하는 고객들이 많다는 것)
지금은 다르다. 공정거래위원회에서는 백화점과 입점된 브랜드 간의 수평적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모니터링을 하고 있다. 예전과는 달라진 분위기와 소위 백화점 갑질이라 불리는 유통업계 특유의 어두운 면들이 완벽하게 사라졌다고 할 수는 없지만 분명한 것은 상식적인 기준에 어긋난 요구는 할 수도 없고 해서도 안 되는 것이다.
특히 백화점의 악습에 익숙한 중년 고객층에서 간혹 요구하는 것들은 이런 것이다.
"그 매장 직원 자르세요.", "그 매장 보면 기분 나쁘니 퇴점시켜요.", "당장 환불해주라고 하세요."
백화점과 매장 간의 이해관계를 일일이 설명해가며 설득할 수 없는 노릇이니 저런 요구를 들을 때면 도움드릴 수 없음에 안타까운 마음 반, 그러한 요구를 하는 고객의 인성을 의심하게 되는 마음 반이 자리 잡는다.
고객 상담실이라는 곳은 백화점에서 고객의 입장을 들어주는 유일한 소통구지만 간혹 비상식적인 고객들은 자신의 분노를 쓰레기통에 처분하듯 정신없이 쏟아버린다. 고객과 통(通) 하기 위해 마련한 공간이 어느새 고객의 감정 쓰레기통(桶)이 되어 버린 것이다.
오늘 나는 어떤 이에게 "썩어빠진 것"이라는 존재가 되기도 했고 자신이 낼 수 있는 최대한의 옥타브로 처리해내라는 고객의 요구를 들어주지 못하고 앉아 있기만 한 무쓸모의 존재가 되기도 했지만, 용기 낸 한 마디에 인권이 있는 직원이 되기도 했고 다양한 서비스직에서 감정 소모를 하고 있는 모든 이들에게 공감과 위로를 줄 수 있는 (긴 시간 미뤄온) 첫 끄적임을 결심에서 실행으로 옮길 수 있었던 역사적인 사건을 안겨준 날이기도 하다.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이다.
찰리 채플린의 명언을 좋아했다.
하지만 매일 ’ 욕받이’로 살고 있는 내가 ‘꽃받이’(세상 모든 욕을 ‘꽃’으로 받아들이자라는 의미)라는 이름으로 글을 쓸 수 있게 된 것처럼, 멀리서 보면 비극으로 보이는 나의 직업이 사실은 희극으로 가득함을 다시 한번 새겨본다.
꽃 같은 나의 인생, 오늘도 향기롭게 피워냈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