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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받이 Sep 28. 2021

3. a는 b가 아니라 a입니다

세상에 나쁜 고객은 없다

시간이 꽤 흘렀지만 내가 입사한 지 몇 개월 되지 않았을 적, 그러니 아직은 많이 서투른 상담원이었을 때 받았던 한 통의 전화를 아직도 잊지 못한다.


목소리를 봐서는 나이가 그리 많지 않은 이제 막 결혼을 하고 출산을 하고 육아를 시작할 그런 시기, 20대 후반에서 많아봤자 30대 초중반의 여자 고객이었다.

쇼핑을 하다가 휴대폰을 떨어트렸는데 바닥이 대리석이라 휴대폰 액정이 깨졌다고 한다.

그리고는 바닥이 대리석만 아니었다면 괜찮을 뻔했던 나의 소중한 휴대폰이 대리석 바닥에 부딪혀 파손되었으니 그에 대한 보상을 해내라고 한다.


신입이었던 그 당시에 모두가 a라 말하는 것을 고객이 b라고 우기더라도 웬만해선 b가 맞다며 공감을 해줄 터였을 텐데, 그 고객의 말도 안 되는 요구에 말문이 막혀 버린 것이다. 잠깐의 정적이 흐른 뒤 고객에게 말했다.

“고객님, 우선 휴대폰이 파손되어 많이 속상하신 부분은 충분히 공감합니다만, 시설물에 문제가 생겨 고객님께 피해를 드리게 되었다면 당연히 보상을 해 드리는 게 맞으나  바닥이 대리석이라는 이유로 휴대폰이 파손이 되었다는 부분으로는 보상이 어렵습니다.”

고객은 본인이 백화점 쇼핑을 하러 왔다가 원치 않게 휴대폰까지 바꾸게 생겼다며, 왜 백화점 바닥을 대리석으로 깔아서 물건도 함부로 못 떨어트리게 하는 것이냐, 일부러 대리석으로 깔아서 소지품을 파손시켜 백화점에서 쇼핑하게 만들려는 수작이냐 등 마치 가스라이팅을 당한다면 이런 기분일까?라는 착각이 들만큼 기괴한 논리로 피해를 호소하며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했다.

만약 길거리를 걷다 휴대폰을 떨어트렸는데 아스팔트가 고르지 못해 액정이 파손되면 그 고객은 구청 또는 시청에 민원을 제기해서 보상을 해달라고 할 수 있었을까?

지금 생각해보면 백화점이라는 특수성을 이용한 전형적인 떠보기 형태의 컴플레인이었지만 그 당시 난 적잖은 충격을 받았더랬다.


대리석 때문이라는 주장은 본인이 생각해도 허무맹랑하다고 느꼈는지 고객은 다른 카드를 꺼내 들었다.

본인이 자녀를 태우기 위해 백화점에서 유모차를 대여했는데 유모차 핸들이 너무 미끄러운 바람에 휴대폰을 놓쳐 떨어트렸으니 너희가 대여해준 시설물 문제인 것이라는 말씀.

그 짧은 순간에 책임을 전환시킬 수 있는 고객의 순발력에 감탄했다. 말도 안 되는 말에 말도 안 되게 감탄을 하다가 다시 한번 정신을 차려본다.

“고객님 핸들이 미끄러우셨다면 죄송합니다, 다만 핸들이 미끄럽다는 부분은 고객님의 주관적인 말씀이기 때문에 시설물의 하자로 볼 수 없어 처리를 해드릴 수 없는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이렇게 한 시간 가까이를 서로 같은 말을 핑퐁 하듯 주고받다가 결국엔 다시는 백화점에 오지 않겠다는 엄포를 남기고 통화는 종료되었다.

‘이겼다’라는 표현은 적절치 않다.

내가 고객을 이겨 먹어서 뭣하겠는가, 최소한 그녀의 페이스에 넘어가지 않았음에 안도할 뿐.. 그리고 흔들리지 않고 고객의 마음을 최대한 상하지 않게 조심스러움을 유지하려 애쓴 것, 그거 하나는 스스로에게 칭찬해주자고 생각했다. 적어도 내 응대에 꼬투리를 잡히진 않았으니까.


지금도 가끔 지인들이 제일 인상 깊은 고객이 누구냐 물어보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고객이자, 처음으로 내가 이겨먹은? 고객 이리라.

처음으로 ‘a는 b가 아니라 a입니다.’라는 말을 내뱉었고 그 대응으로 일단락시켰지만 마음 한 구석엔 사실 그 고객에 대한 연민이 남아 있었다.

얼마나 살기 팍팍하기에, 또는 얼마나 감정 컨트롤이 힘들었으면 백화점에 질러나 보자라는 심정으로 전화를 했을까. 전화하기까지 분명 망설임이 있었겠지.(라고 믿고 싶다)

어쩌면 출산 후 여자들이 겪는 불안전한 호르몬의 변화로 평소에 그런 성향이 아니었음에도 처음으로 누군가의 탓을 하고 싶었을 수도 있을 테지.

이러한 수많은 이유를 대보면 세상에 사연 없는 사건은 없는 것이다. 어쨌든


그럼에도 불구하고 a는 b가 아닌 것은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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