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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레스트 Mar 29. 2024

앵두는 동그랗고 보리수는 길쭉하죠.

읽으면서 힐링되는 <시골 포레스트>

시골에 여름이 오면 특히나 먹을거리가 풍성해지는데, 앵두는 그 풍성함 중 하나다. 한낮의 뜨거운 여름 햇살은 내 키 만한 앵두나무를 비추고, 빨갛게 익은 앵두는 빛을 받아 반짝인다.


잘 익은 앵두를 자세히 보면 얇은 껍질 안으로 투명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우리 집 마당 한편에는 내가 어렸을 때부터 자리 잡은 앵두나무가 있었다. 자두나무나 대추나무는 키가 큰 편이라 어린 나는 혼자 힘으로 열매를 딸 수 없었는데, 앵두나무는 키가 작은 나에게도 친절한 친구였다.


앵두나무는 다른 나무들에 비해 키가 작다. 모든 앵두나무가 그런지 모르겠지만 우리 집 앵두나무는 내가 손을 뻗으면 나무 가장자리에 달린 앵두는 얼마든지 따 먹을 수 있는 높이였다. 어른이 된 후에는 햇빛을 가장 잘 받는 나무 한가운데 있는 열매도 어렵지 않게 따 먹을 수 있었다.


시골집에는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간식이 그다지 많지 않다. 마트에 가려면 맘잡고 차를 타고 가야 했고, 가장 가까운 학교 앞 구멍가게도 족히 40분은 걸어가야 하기 때문에, 사탕을 먹고 싶다고 사탕을 사 올 수 있는 곳이 아니다.


학교에 다녀와서 엄마도, 아빠도, 할아버지도, 할머니도 계시지 않고 먹을 만한 달달한 간식도 없는 날에는 어김없이 앵두나무로 향했다. 준비물은 단 하나, 양은 국그릇이다. 지금 같으면 햇빛을 피할 챙 넓은 모자와 까슬까슬한 잎사귀를 막아줄 팔 토시, 앵두를 씻기 좋은 구멍 뽕뽕 채반을 챙겼을 텐데 그때는 매번 양은 국그릇을 챙겼다.


양은 국그릇에 앵두를 한 알 한 알 톡톡 따서 담는다. 그리곤 마당에 있는 호수에 물을 한참 틀어놨다가 조심스럽게 국그릇에 물을 채운다. 불순물이 떠오르면 한 손으로 국그릇 끝을 막고 물을 따라 버린다. 이제 앵두 먹을 준비 끝!


동글동글 앵두 열매

 

앵두는 워낙 크기가 작은 편이라 어지간히 따지 않고서는 만족스럽게 먹을 수 없다. 내리쬐는 햇볕에 구슬땀 정도는 흘려야 넉넉하게 맛볼 수 있는 귀한 간식이다. 사실 뜨거운 여름 태양보다, 따가운 잎사귀보다 앵두 따기를 번거롭게 하는 방해꾼은 따로 있었는데,  바로 거미줄이다.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앵두나무에는 유독 거미줄이 많았다. 거미줄에 맞아본 사람은 알겠지만 진득한 거미줄은 그다지 좋은 느낌이 아니다. 정신없이 앵두를 따다 보면 손에도, 팔뚝에도, 어쩔 때는 나무 아래로 낮게 들어간 머리까지 흰 거미줄이 달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빨갛게 익은 앵두는 참을 수 없을 만큼 매력적이다.





 

도시로 대학을 간 후 놀랐던 건, 생각보다 많은 친구들이 앵두를 알긴 알아도 실제로 먹어본 적은 없다는 사실이다. 매년 여름이면 따다 따다 결국 나무에 남겨두는 앵두를 못 먹어봤다니… 신기했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 보면 나부터도 마트에서 앵두 파는 걸 잘 못 봤던 것 같다. 도시에서야 파는 사람이 없으면 살 수가 없으니 먹어보지 못 했던 게 어쩌면 당연할 수도 있겠다.


앵두는 검지 손톱 정도만 한 크기인데, 쉽게 말해 검은콩 보다 살짝 더 크고 통통한 둥근 모양이다. 한 알 한 알 열리기보다는 무리 지어 다닥다닥 달려서 성격 급한 사람은 무리를 잡고 후두둑 따려고 하지만 쉽지 않다. 앵두는 아주 연하고 그만큼 잘 뭉개진다. 씻을 때에도 다른 과일처럼 박박 닦는 게 아니라 흐르는 물로 휘휘 헹궈주는 정도가 적당하다. 박박 씻으려는 순간 다 물러터진 앵두를 먹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를 생각해 보면 왜 마트에서 앵두를 만날 수 없는지 알 것 같기도 하다. 아무리 맛 좋은 앵두라도 싱싱한 상태로 유통이 어려우면 판매도 어렵다. 간간이 냉동으로 판매하는 경우가 있는것 같긴 한데, 자두나 체리처럼 사이즈가 큰 과일도 아니기 때문에 냉동 판매에도 그다지 적합한 과일은 아니다.


이런 이유로 앵두는 본의 아니게 귀한 과일이 되어버렸다. 그래서일까? 뭇사람들은 앵두와 보리수를 헷갈려 하기도 한다. 언젠가 서울에서 자란 먼 친척이 놀러 온 적이 있었는데, 그 친구는 보리수나무에 탐스럽게 열린 보리수를 보더니 말릴 틈도 없이 톡! 따서 입에 넣어버렸다.


물론 보리수도 그 자리에서 바로 먹을 수 있는 열매다. 그런데 맛은 앵두와 전혀 다르다. 빨갛게 익은 앵두는 달콤달콤하지만 보리수는 달달한 맛을 내는 척하다가 급하게 떫어진다. 마치 떫은 감을 먹었을 때와 비슷한 맛에 혀가 뭉뚝해지는 느낌이 든다.


조금 억울할 수 있는 건 이 보리수 열매가 앵두와 무지 비슷하게 생겼다는 점이다. 색깔도 모양도 심지어 나무의 생김새도 매우 비슷하다. 하지만 시골에 좀 살아본 사람의 눈에 앵두와 보리수는 마치 딸기와 자두만큼 구별이 쉽다. 딸기와 자두는 ‘빨강’이라는 색깔과 크기만 비슷할 뿐 아예 다른 열매다. 내 눈에는 앵두와 보리수도 그렇다.


우선 앵두는 정말 동글동글하다. 어디 하나 모나거나 삐쭉한 부분 없이 예쁘장한 동그라미다. 표면도 얼마나 매끈한지 살짝만 쥐어도 톡! 하고 터질 것 같이 반질반질하다. 반면에 보리수는 길쭉하다. 품종마다 차이가 있을 수 있겠지만 보리수는 타원형이다. 마치 작은 럭비공 같다고 할까? 동글동글 느낌이 전혀 아니다. 표면 역시 오돌토돌한 느낌이 크다. 가까이서 보면 작은 반점으로 둘러싸인 느낌이다.  


마당에서 직접 찍은 길쭉길쭉 보리수 열매


혹시라도 우연히 시골에 가게 되어서 이게 앵두인지, 보리수인지 헷갈리는 나무를 만난다면? 일단 가까운 지인에게 밝은 얼굴로 ‘먹어봐~!’라고 말하는 것을 추천! 앵두도 보리수도 무지 탐스럽게 열리기 때문에 그 지인도 먹고 싶은 생각이 들 거다. (농약은 다른 문제다.)


열매를 건넨 후에는 그것을 먹은 지인의 얼굴을 보면 된다. 처음에 ‘음~’ 하다가 끝에 ‘달다!’를 외치면 그것은 100% 앵두! 처음에 ‘음~’ 하다가 ‘엥?’하며 표정이 찌그러지면 그것은 보리수일 확률이 크다. 물론 여기서도 함정은 있다. 우리 동네 한 아주머니는 보리수 열매를 아주아주 좋아하셨다. 보리수가 아주 맛있다고 했다. 세상은 넓고, 입맛은 다양하다는 사실만 기억해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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