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급실에서는 두 군데 병원을 추천해 주었습니다. 새손병원과 고운손병원. 이름으로 짐작해보아 두 병원다 손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곳인 듯했습니다. 검색해 보니 이 병원들만이 수지접합수술을 위한 미세현미경을 취급한다고 하더군요. 규모가 더 커 보이는 새손병원으로 가기로 했습니다. 학교에는 병가소식을 알리고 다음날 월요일 아침 같이 휴가를 낸 와이프와 함께 병원을 찾았습니다.
병원에는 사지 어딘가를 다친 환자들로 드글거렸습니다. 마침내 의사 선생님을 만났고 어제 응급실에서 들었던 좋지 않은 부위라는 단어를 반복하시고는 정확한 판단을 위해서 수술을 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저에게는 선택권이 없는듯하였죠. 바로 수술을 결정하고 병동으로 올라가 수술복으로 환복 했습니다. 수술부위 쪽 팔을 끈으로 여닫을 수 있는 수술용 환자복을 입으니 인생에서 처음 받는 외과수술이 실감 나기 시작했습니다.
배정받은 4인실은 생각보다 널찍했고 커튼을 치면 마치 원룸방처럼 아늑하기까지 했습니다. 건물뷰이지만 커다란 통창으로 밖을 바라볼 수 있는 것도 좋았죠. 몇 시간 뒤 간호사 한분이 오셔서 수술실로 저를 안내하였습니다. 긴장되는 마음도 있었지만 같은 비율만큼 덤덤함도 있었습니다. 합하면 평온한 0의 상태일지도 모르지만 두 마음이 동시에 있었다는 것이 더 정확한 심정이었습니다.
다리는 멀쩡하기에 한 손으로는 링거카트를 끌며 걸어서 지하 1층 수술실에 입성하였죠. 균이 침투할 수 없는 차갑고 깨끗한 수술실의 모습. 꽤나 드넓은 수술실의 한켠에 누워 수술준비를 했습니다. 팔 한쪽도 아니고, 배를 여는 것도 아니고 그래봐야 손가락 하나일 뿐인데요. 일련의 무감정한 수술준비과정 속에 가만히 저는 천장을 응시하고 있었습니다.
잠시뒤 마취하시는 의사분께서 겨드랑이에 마취액을 몇 차례 주입하였습니다. 왼팔뚝 어딘가에 몇백 볼트 전기에 감전된 것처럼 찌릿하는 충격이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서서히 제 팔은 제 통제밖으로 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왼팔만을 수술대에 올려둔 채 저의 나머지 몸과 얼굴 쪽은 그 수술장면을 볼 수 없게 막으로 씌워졌습니다.
그 이후 몇십 분이 흘러 저를 진료하셨던 의사 선생님이 수술하러 오셨습니다. 수술 시간을 정확히 고지하지 않은 간호사를 호통치셨고 그녀가 수술과정 중 무언가를 말로 제대로 전달하고 있지 않음에도 일갈하였습니다. 까칠한 전문직들의 실력은 믿을만하다는 이야기가 문득 떠오르며 수술이 잘 될 거라는 희망을 갖게 되었습니다. 내 것이 아닌 내 손가락은 그 실력가에 의해 해체되고 연결되고 있었습니다. 저는 아무것도 느낄 수 없었지만 아마도 내부가 열렸을 내 신체에 대해 묘한 감정이 들기도 했습니다.
의사 선생님께서는 제 손가락의 신경과 동맥이 잘렸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을 다시 연결하는 수술을 한 것이죠. 1시간 남짓한 수술이 마무리되고 제 얼굴을 가렸던 막이 벗겨졌습니다. 수술 중 내 팔은 당연히 일자로 펴져있었겠지만 왠지 느낌은 ㄴ로 팔을 90도 위로 들고 있는 느낌이었죠. 눈으로 확인한 팔은 역시나 펴져있었고 간호사분이 마취된 그 팔을 들어 팔걸이 걸 때 느낀 그 이질감의 충격은 아직도 선명합니다. 마취는 6시간이나 지나서 풀릴 거라고 하였습니다.
병실로 올라가 기다리고 있던 와이프와 만나 수술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저는 일주일 동안 입원하게 되었습니다. 마취가 애매하게 풀릴 때쯤 팔꿈치쯤에 살짝 힘을 주다 깁스 감은 팔로 스스로 제 얼굴을 칠뻔했을 때는 웃음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한참 입시상담이 이루어지는 8월 말의 학교에 일주일 병가를 냈습니다. 중학교 2학년 때 홍역으로 10일 입원했던 이후 처음으로 입원생활이 시작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