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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야감 Jun 20. 2023

4. 히든싱어[영탁편]에 나가다

상암 jtbc에서 예심을 보다

"아싸!! 됐다!! 예심오래!!!!"

"와 진짜!??!"


합격이었다. 아니 합격이라는 말은 아직 이 단계에서 너무 거창하고 1차 예선 통과였다. 몇 명이나 지원했고 얼마나 걸러졌는지는 모르겠지만 jtbc에 간다!!! jtbc.. 상암.. 처갓집이 있는 쪽은 결혼 후 자주 다녔지만 서울에서 상암은 또 처음이었다. 교통편을 알아보았다. 기차를 타고 서울역에 도착해서 DMC 쪽으로 가는 방법이 있었고 강남터미널에서 가는 방법이 있었다. 내가 사는 지역에서는 역이 멀어 비용까지 생각했을 때 터미널로 가는 방법이 더 나아 보였다. 혹시 계속 합격하게 된다면 여러 번 다녀야 하는 길이니 잘 익혀둘 필요가 있었다.


1차 예심은 기존에 보냈던 2곡의 노래를 1절씩 부르는 것 외에 자기 PR과 가수에게 하고 싶은 말도 해야 했다. 나는 이미 '누나가 딱이야'라는 노래로 누나와 결혼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이것 이상의 진정성 있는 사연이 어디 있겠냐는 생각과, 내가 노래를 너무 구리게만 하지 않는다면 그 사연 때문에라도 작가들이 날 방송에서 쓰고 싶어 할 것 같다고 확신하였다. 예심 안내를 받은 날짜부터 또 일주일의 시간이 있었다. 나는 다시 한번 트레이너 선생님에게 연락을 하여 수업을 듣기로 하였다.


지금 봐도 설레는 안내 문자


일주일간 누나가 딱이야와 찐이야를 열심히 연습하였다. 소리만 들어도 목이 아픈 것 같았던 찐찐찐찐은 점차 입에 붙기 시작했다. 오히려 찐이야가 입에 붙기 시작하니 누나가 딱이야가 어렵게 느껴졌다. 그냥 별 의도 없이 느낌대로 노래를 부르는 것과 의도와 기술을 가지고 노래를 부르는 것은 매우 다른 것이었다. 트레이너 선생님은 발성에 대한 기술적인 부분도 알려주셨지만 가수들이 어떤 생각과 의도를 가지고 노래를 부르는지에 대해서도 알려주셨다. 감정과 기승전결, 리듬 등이 필요했는데 평소 크게 생각지 않았던 부분이라 이를 노래에 적용하는 과정이 쉽지 않았다.


대망의 예심날이었다. 처갓집이 서울이어서 참 좋았다. 와이프와 함께 DMC로가서 예심을 보고 좀 놀다가 처갓집으로 갈 일정을 잡았다. 어떻게 옷을 입고 갈지 고민하였다. 안내 문자에는 나중에 자료화면으로 쓰일 수 있다는 이유로 가급적 깔끔한 복장을 권장하였다. 그래서 다소 교사 같지만 밝은 이미지를 주는 것이 좋을 것 같아 베이지톤의 옷으로 차려입고 서울행 버스에 몸을 실었다.


강남터미널에서 jtbc까지 가까운 거리는 아니었다. 도착하여 9호선을 타고 당산역에 내려 버스로 갈아타고 가야 한다. 그 과정에 와이프가 로드매니저 역할을 톡톡히 해주었다. 터미널에서만 40~50분의 시간이 걸렸다. DMC가 디지털 미디어 시티의 줄임말인 것도 처음 알았다. 더불어 거기에 방송국들이 몰려있다는 사실도 말이다. 와이프는 근처 카페에서 기다리고 나는 예심을 다녀오기로 하였다. 각종 방송사 건물들 사이에서 jtbc를 찾았다. 지도를 보고 들어간 건물 2층에는 인기척이 없었다. 무언가 이상해서 작가님에게 전화해 보았더니 옆건물이었다. 첫날부터 삐그덕.


지금보니 노래 오디션 복장치고 너무 얌전하다


jtbc건물 안은 쾌적함과 유쾌함이 있었다. 1층에서 관중석 겸용 같은 널찍한 계단을 올라서면 여러 투명창이 있는 2층이 나온다. 아름답고 감각적인 인테리어와 식물들을 보며 절로 마음이 편해졌다. 계단 끝에서 대기하고 있던 작가님에게 다가가 신상을 말하고 이름표를 받았다. 촬영 시 참가자를 구별하기 위한 커다란 스티커 이름표였다. 그 이름표를 배 쪽에 붙이고 벽면에 기대어 전신사진을 촬영하였다. 참가자 프로파일링을 위한 사진이었다. 낯선 경험에 따른 기묘한 설렘을 가지고 대기실로 들어갔다. 대기실에 들어가서 눈에 띈 것 2가지는 영탁과 유사한 복장과 분위기를 뿜고 있는 몇 명 참가자들과 전혀 영탁을 찾아볼 수 없는 또 다른 참가자들이었다. 심지어 몇 명은 여자였다.


'여자가 영탁모창을 한다고?'


역시 그럴리는 없었다. 그분들은 허스키한 목소리를 아끼지 않으며 연습을 하고 있었는데 다름 아닌 제시 노래들이었다. 그리고 팔에 타투와 함께 남다른 패션감각을 뽐내는 남자분은 읊조리듯 노래를 부르고 계셨는데 자세히 들어보니 잔나비 노래였다. 한날에 한가수의 심사만 보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당시 기준 히든싱어는 벌써 6시즌이나 진행된 장수 음악프로그램이었고 한 시즌당 11~14회차의 방송을 하게 된다. 지난 방송동안 어지간한 가수들이 다 나왔고 대한민국의 어지간한 모창능력자들도 앵간히 출연했을 것이다. 그래서 방송국 입장에서 모창 능력자 모집이 쉬운 일이 아니었다. 히든싱어의 목적은 최대한 가수와 비슷한 모창을 통해 관객과 시청자들을 헷갈리게 하는 것이다. 그런 모창 능력자들을 회차별로 5명씩이나 뽑아야 한다. 그렇게 예심은 집중적이고 정신없이 진행되고 있었다.


작가님이 대기하며 목을 풀라고 했지만 처음에는 모르는 사람들만 있는 상황에 영 데면데면하여 자유롭게 소리를 내며 목을 푸는 것이 민망하였다. 그러던 중 몇몇 분들과 대화도 나눴는데 어떤 분은 가수, 어떤 분은 다른 회차에도 많이 지원하신 분, 어떤 분은 보컬트레이너라는둥 대부분 음악과 연관이 있으셨다. 


'영탁은 발성도 목을 많이 쓰고 사투리톤이 노래에 남아있어 모창이 어렵다' 

'연습을 하면 목이 상할까 봐 일부러 느낌만 가지고 바로 부르려고 연습을 하지 않았다'


는 등의 대화를 엿들을 수 있었다. 나도 처음에 듣기에 영탁의 발성이 목을 많이 쓰는 줄 알았지만 트레이너 선생님과의 수업동안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았고 모창이야말로 정말 연습이 많이 필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 대화에 동의할 수 없었다. 떨어질 사람들이라고 확신했다.


오히려 사연의 진정성을 가지고 연습에 매진한 내가 훨씬 적격자라고 생각했다. 처음에 쫄았던 마음은 점점 자신감으로 바뀌었고 작가 한분이 들어와 내 이름을 호명하였다.


"XXX님 들어오세요"


연습했던 포인트들을 빠르게 머릿속으로 복습하고 입꼬리를 최대한 끌어올리며 예심장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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