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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효나 Jul 08. 2024

오징엇국에 흐른 이효리의 눈물.

하나쯤 품고 사는 '맛의 서사'에 대하여.

 엄마와 단 둘이 떠난 건 처음이라 했다. 어딘지 모르게 닮아있는 그녀들이었다. 이효리와 엄마가 어색하게 발길을 뗀 둘만의 여행, 그 길을 동행하듯 따라가 보는 프로그램. 미안하게도 여행이라는 콘셉트는 이미 볼 만큼 봤다 싶다. 사실 감정적 포만감이 커서 시청의 의지가 솟구치지 않았다. 유튜브 숏츠에 올라오는 영상과 하이라이트가 눈에 걸려들면 잠시 머뭇대며 보곤 했다. 그러다 아주 우연하게도 한 장면이 나같은 뜨내기 시청자를 붙들어 세운다.


  여행에서 이효리는 엄마의 오징엇국을 먹고 싶다 했다. 어릴 때 먹어보고 30년을 먹어 본 적 없는 그 국이 생각난단다. 머쓱한 듯, 흔쾌한 듯 엄마는 장을 봐 막내딸에게 그 시절의 방식으로 국을 끓여줬다. 국물 한 술을 입에 넣은 이효리는 조용히 방에 들어가 눈물을 쏟았다. 그녀가 콧물을 훌쩍이는 소리, 눈물을 열심히 닦아내는 모습만이 전부였지만 그 마음으로 오롯이 닿았다. 엄마에게 눈물을 들키고 싶지 않았을 테다. 그릇에 담긴 국을 한 입 먹고선 콧잔등으로 말간 물을 주룩 흘렸다. 얼른 감정을 훔쳐 닦는 모습에서 대중이 알 길 없는 그녀만의 상처와 추억이 있겠구나. 옅은 짐작만을 할 뿐이었다.     


"몰라, 그냥 이 맛을 느끼니까 갑자기 옛날 생각이 났어. 나쁜 생각 아니야. 추억."

 

"옛날 그 맛이 같은데,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그런 복받치는 감정이 있었어요."


 맛이 불러낸 가족의 서사, 그리고 그 안에 있던 아이가 떠올랐으리라. 내가 극도의 F형 인간임을 이렇게 또 확인한다. 이효리보다 더 많은 눈물을 쏟아 흘린 시청자. 이름만 비슷한 이효나. 몇 장의 휴지를 썼는지 모르겠다.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이 목구멍을 타고 뜨겁게 올라왔다. 무엇을 떠올렸던 걸까. 특정할 수 없는 오묘한 공감이었다.


 밝고 당당해서 언제나 거침이 없는 톱스타에게 유년기의 힘들었던 가족사가 있다는 것이, 말하지 못했던 상처와 원망이 있었다는 것이 (그녀에겐 미안할 노릇이지만) 내게 상당한 위안이 되었다. 오징어 한 마리로 여섯 식구가 국을 끓여 먹느라, 이효리의 그릇에는 오징어 가닥도 넉넉지 않았다는 혼잔말이 위로를 줬다. 어린 시절을 떠올리면 불안했던 기억뿐이라 피하고 싶었다는 말에서도.  '그래 다들 가까이 들여다보면, 덮어두고 사는 아픔 하나쯤은 가지고 살아가지.' 야릇한 위안을 받았다.


 우리는 혀끝에 닿은 맛으로 완벽히 그 때의 내가 되곤 한다. 내게는 감자와 멸치볶음이 그런 존재라고 생각했다. 감자만큼 내게 추억을 남긴 음식은 없다고 생각했다. 엄마가 쌀만큼이나 상비해 두었던 감자. 볶아도 먹고 지져도 먹고 튀겨서도 먹었던 우리집 밥상의 감초. 어쩌다 다른 게 먹고 싶은 날에도 밥상투정을 한다는 건 어쩐지 죄스러운 느낌이라 토 단 적 없던 감자. 엄마가 좋아하는 감자. 그러다 문득 의문이었다. 내게 감자가 그토록 애틋한 추억인가?

 

 그러다, 며칠 전 알았다. 엄마와 밥을 먹는 자리에서.


“ 효나는 언제나 밥을 야무지게 싹싹 긁어모아 예쁘게도 먹었어. 어린이집을 보냈더니 자기보다 더 어린 아기들을 그렇게 돌보더라며 칭찬이 자자했다니까.”


 나를 칭찬하듯 어린 나를 회상하는 엄마의 말을 들으며 깨달았다. 어린 날의 나를 불러내는 건 '구운 생선' 이었음을. 눈 앞에 마침 노릇한 생선이 누워 있어 그랬는지 생선에 대한 서사가 떠오르고 말았다.       


 아이를 키우면서 알았다. 아이들은 좋아하면 먹고, 싫어하면 뱉는다는 사실을. 아이들은 생선구이를 참 좋아한다는 것을. 생선을 싫어하는 남편 덕(?)에 아이들 핑계를 대고서야 굽는 생선. 아이들 덕에 자주 굽는 생선. 가자미, 고등어, 삼치, 갈치. 우리 아이들은 생선 한 덩이 구우면 밥 두 공기가 끄떡일 정도로 생선을 좋아한다. 그 덕에 나도 생선구이를 먹는다. 다 큰 어른이 되어서도 "나는 아무거나 괜찮아. 너희 먹고 싶은 걸로 먹으러 가자."라고 말하는 사람이 되어 있다.   


 나 역시, 좋아하는 생선 구이 하나면 다른 반찬 찾지 않을 생선 마니아인데, 그런데 왜 어릴 적 생선 구이를 먹었던 기억이 없는 걸까. 조림은 종종 먹어도, 구이는 이따금 외갓집에 가서나 먹었다. 생선 살 돈이 궁했던 것도, 엄마가 내 취향을 무시할 사람도 아니었을 텐데. 소금 솔솔 뿌려 굽기만 하면 되는 걸. 이렇게 좋아하는 걸 왜 내게는 반찬 취향을 고집한 기억이 없는 건지.  


 엄마와 언니는 생선 구이를 찾아 먹을 정도로 좋아하지는 않는다는 걸 알았다. 냄새나고, 기름도 튀는 구이를 해 달라고 조를 용기가 없었던 걸까. 내가 "엄마, 생선 구이 먹고 싶어요. 사실 오늘 감자는 싫어요."라고 했다면 엄마는 부리나케 달려가 생선을 사서 다듬고 구워줬을 텐데. 왜 나는 그렇게 하지 않았을까. 아마도 피곤한 엄마에게 내가 먹고 싶은 걸 고집하고 싶지 않았겠지. 고집부릴 엄두를 못 냈겠지. 어릴 때의 나였으면 그랬을 게 뻔하다.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지만, 수제비를 싫어하지만 다른 가족들이 다 맛있게 먹으니 나도 함께 먹는 것. 나는 그냥, 그런 모양새의 바탕인 것이었다.  


 남의 감정과 취향을 배려해야 할 것만 같은, 상대가 좋아하고 맛있게 먹으면 나도 야무지게 삭삭 긁어서 먹는 그런 아이였다. 싫다고 뱉어내지도, 떼를 쓰지도, 내 취향을 고집하지도 않았다. 그게 내 삶의 평온을 유지하는 방법인 것만 같았으므로. NO를 하지 않는 아이, 이렇다 할 사춘기도 없이 스리슬쩍 성장한 어른이 나라는 사실을 알았다. 좋지만도 슬프지만도 않은 나의 모양새를 생선 구이를 생각하다 깨달을 줄이야.  


 어디로 튈지 모르는 둘째 도동이를 보면 나랑 베이스가 닮은 녀석이다 싶으면서 이따금 낯설고 부럽다. 아이의 그 천진함과 자유분방함이. 생선을 잘 받아먹다가도 배가 부르면 "싫어"라고 말하는 아이가 얄밉다가 웃기다가 결국 기특하다. 신랑이 가장 굵고 윤이 나는 생선 구이를 내 숟가락 위에 얹어줄 때 (본인이 안 먹으려는 마음일지라도) 기름지고 고소한 생선내가 입 맛에 퍼질 때 문득 흐뭇하다. 묘한 힐링의 순간.


 이제는 다른 사람의 감정만을 살피지 말라고, 하고 싶은 말은 하면서 살아도 된다고, 편안한 마음을 채워 넣듯 밥 숟가락을 입에 넣는다. 이효리가 오징엇국의 온기로 지난날 얼어붙은 마음을 한 조각쯤 녹여낸 것처럼.    


 모두에게 있지 않은가,

 그토록 아련하고 짭쪼릅한 맛의 서사.

 (사진: JTBC '엄마, 단둘이 여행갈래?' 방송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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