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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효나 May 14. 2024

떡볶이 한 잔 하실래요?

학교 앞 떡볶이만이 줄 수 있는 이야기

  "엄마! 나 오늘 학교 앞에서 떡볶이 사 먹어도 돼?"

  "당연하지! 우리 같이 사 먹자! "

 

 요즘 학교 앞에서 편의점 보다 찾기 힘들다는 떡볶이집이 도담이의 학교 근처에 두 곳이나 있다. 이 역시 아이의 먹을 복이다 싶다. 아이는 방앗간 마냥 하굣길에 떡볶이를 한 컵 쥐어 들고 맛있게 먹고는 입술이 빨갛게 물이 들어 집에 오곤 한다. 떡 외에 어떤 재료도 없는 '학교 앞 떡볶이' 특유의 풍미가 있는 곳. 무려 슬러시도 함께 파는 곳이다. 아파트 숲 사이에 여전히 이런 가게가 있다는 것에 감사한 마음도 살짝 든다. 딱히 몸에 좋을 리 없지, 유기농이니 하는 것들과는 상극일 테다. 하지만 먹지 말라한들 도담이의 군침을 어찌 말리겠나. 먹고픈 마음만 돋울 뿐. 흔쾌히 허락하는 쪽을 택했다.


 오전 오후반이 있던 그 시절, 콩나물시루 같은 교실에 한 자리를 맡아 수업을 듣다가 교문 밖으로 뱉어지면, 초등학교(당시는 국민학교) 교문 앞에는 세 개의 문구점(당시엔 문방구)이 있었다. 교문 바로 앞에, 모퉁이에, 그 옆에 하나. 기차도 아닌 것이 삼 형제 마냥 줄 지어 있던 학교 앞 핫플이다. 아이들은 각자 본인의 단골집이 있었다. 뭣모르고 세 군데를 골고루 섭렵하던 나는 고학년이 되면서 친구들의 취향을 따라 모퉁이에 있는 '샛별 문방구'의 단골이 되었다.


 아이들을 상대하는 곳이라 부러 신경을 쓰신 건지 샛별의 아주머니는 늘 곱게 화장을 하고 계셨다. 손톱은 분홍빛으로, 살구빛으로 자주 옷을 갈아입었고, 굽슬굽슬 파마를 하셨다가 또 붉게 염색을 하셨다가. 변화무쌍한 주인아주머니의 패션을 여자친구들은 호기심 어리게 관찰했다. 하지만 내가 그곳을 좋아한 이유는 주인아주머니의 현란한 패션 때문이 아니었다. 그녀의 ‘츤데레스러운 떡볶이’였다.

영화 '미나문방구'의 캡쳐본

 점심을 먹어도, 간식을 먹어도 늘 허기가 지는 그 나이. 먹은 열량은 바람과 땀이 실어 날아가버리는 어린 시절이었다. 운동장에서 아이들과 고무줄을 두 어 곡 하다 보면 뱃고동이 밥을 달라 아우성이다. 교문을 나선 우리 눈에, 아니 코에 들어오는 것은 샛별문방구의 떡볶이 냄새. 나무 꼬챙이 같은 밀떡 외에 그 어떤 재료도 떠 있지 않은 주황색의 국물. 200원을 내면 밀떡 10개를 길쭉한 타원 접시에 뗏목 띄우듯 줄 세워 주던 아주머니였다. 단골 프리미엄이었는지, 배가 너무 고파보였는지 그녀는 우리 일행의 접시에 떡을 몇 개씩 무심하게 말없이 더 얹어 주었다. 그게 뭐라고, 대단한 특권을 얻은 냥 우쭐하고 기분이 좋았던지.


 떡볶이를 먹으면 이제 집까지 걸어갈 힘을 얻는 것이다. 후식으로는 문방구 앞에서 바로 구워주는 50원짜리 바삭한 쥐포. 그리고 아폴로 한 봉지. 초등학생 보폭으로 15분 이상 걸리던 하굣길은 어른이 되어 다시 걸어도 꽤 먼 거리였다. 매일 이 길을 작은 내가 무슨 힘으로 걸어 다녔을까 생각했더니 떡볶이의 든든함이었다. 쥐포의 짭짤하고 바삭한 맛까지 손에 쥐면 세상 부러울 것이 없는 여정이었겠지. 가방이 조금 무거워도, 날이 더워도 입가에 남은 국물의 향에 취해 집까지 신이 나서 걸어오곤 했으니까.


 마음에 허기가 드는 날이 있다. 뭐가 부족한지, 어떤 게 필요한지 선뜻 답하지 못할 그런 날은 먹고 싶은 음식을 결정하기도 쉽지 않다. 머릿속이 온통 말줄임표일 때 작은 단어 하나가 느낌표로 떠오른다. '떡. 볶. 이'. 딱인 음식이다. 고급스럽지도, 요란하지도 않은 이 단어가 생각난 것이 그저 반갑다. 우리는 떡볶이를 왜 이토록 사랑하는 건지 궁금하다가도 달콤 맵질한 양념을 한 입 물면, 그 어떤 설명이 필요하겠나 싶다.  

도담이 학교 앞 컵볶이 맛집

 학교 앞 떡볶이 같은 위로가 좋다. 어쩌면 우리에게는 이런 류의 격려가 필요하다. 감정에 기근이 들어 메말라 있을 때 분수처럼 쏟아지는 말들은 때로 부담스럽고 버겁다. 작은 목축임으로 시작한 해갈이 더 촉촉하고 진득한 위안이 되어줄 것 같다. 양배추에 어묵 넣어, 파도 송송, 만두도 퐁당에다 삶은 계란까지 얹는 스페셜한 떡볶이의 즐거움과는 다른 컵떡볶이의 작은 위로가 필요하다.


 축하는 화려하게, 위로와 격려는 소박하게.

 나와 다른 이의 마음을 보살필 때 이러해야지.


 떡볶이 한 컵 들고 구구절절 생각이 깊었던 어느 날의 기록이다.


 지친 오늘, 떡볶이 한 잔 먹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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