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이 없다는 누명은 벗어던질 때가 되었다.
" 나, 이제 살 뺄 거야."
" 나, 지금부터 건강 좀 챙기려고."
" 좋아하는 것만 먹을 수 있나. 맛없어도 몸 생각해야지."
이때 떠오르는 음식, 1번이 닭가슴살, 2번 샐러드 아닌가. 아니, 나만 그런가? 다들 떠올렸다고 우기고 시작하자. 샐러드를 정말 너무 먹고 싶어서 군침이 돌았던 적이 있었던가. 채소를 먹어야 하니까, 건강에 좋다니까 반쯤은 의무감에서 시작하는 게 샐러드라는 존재였다. 도담이의 아토피가 심해져 식단 조절을 해야 한다는 소견을 들었을 때도 가장 먼저 떠올린 게 샐러드였다. 그래, 도담아! 걱정 마. 엄마가 샐러드로 채소 섭취 확 늘려볼게. 주먹까지 불끈 쥔다. 이토록 비장할 일인가. 그러나 아이들은 본디 샐러드를 접시 위 데코쯤으로 생각하지 않나. 그 위에 놓인 고기나, 치킨너겟, 새우를 쏙쏙 골라 먹는 게 아동의 본능 아니었던가. 쉽지 않은 메뉴임엔 분명하다.
사실, 매일 다양한 채소를 먹기에 샐러드처럼 좋은 음식은 드물다. 그렇다면 좀 맛있게 먹을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자기 전 다양한 샐러드를 검색하는 걸로 일과를 마칠 정도로, SNS 알고리즘이 알아서 샐러드 사진을 골라 줄 만큼 부지런히 찾아봤다. 어차피 비슷한 재료일 텐데, 조금씩 꼼수 좀 부려볼 수는 없는지. 고민이 한 트럭이다. 샐러드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퍽 억울한 일이다. 이 세상 많고 많은 식재료와 조합과 소스가 있을 텐데. 샐러드도 분명 매력적인 음식일 텐데 말이다. 이제 누명 좀 벗겨주도록 하자.
누명 1. 아보카도는 어떤 맛으로 먹는 거지?
도담이가 가장 불호하는 과일이 아보카도다. 느끼하고, 물컹하고, 무슨 맛으로 먹는지 이해가 불가란다. 아이의 그 항변에 대꾸할 말을 못 찾는다. 동의하기 때문이다. 몸에 좋다 좋다 하는데, 아보카도를 좀 맛있게 먹을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다 집에 있는 키위가 걸려들었다. 키위와 아보카도. 모습은 비슷하지만, 성질은 아주 다른. 이 상극적인 맛이 오묘하게 맛있을 것 같단 말이다. 골드키위의 달콤 새콤한 맛이 아보카도의 느끼한 부분을 잡아줄 거라는 믿음이 생겼다. 결과적으로 대성공이었다. 아보카도 하나에 키위를 얹어 한 입에 넣으니 오! 나쁘지 않다. 부드럽고 달콤하다. 가끔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조합이 시너지를 낼 때가 있다. 이 둘처럼 말이다. 너무 맛있어서 아보카도 마니아 열차에 합류했다.
결론 - 아보카도는 첫맛이 무(제로)에 가깝지만 씹다 보면 특유의 부드럽고 고소한 풍미가 입에 돈다. 목 넘김도 좋고, 포만감도 훌륭하니 매력적인 재료다. 비타민과 항산화 물질이 풍부하다고 하니 더디 늙고 싶은 자 군말 없이 먹을지어다. 아보카도 샐러드를 준비하며 놀랐던 점은 아보카도 1개에 하루 섭취 권장량의 25프로에 해당하는 식이섬유가 있단다. 나쁜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추는 데에도 도움을 준다네. 이 외에도 효능이 다양하다 하니 안 먹을 이유가 없다. 두 번 먹을지어다. 누명 벗기기 성공이다. 도담이도 한 접시 뚝딱 먹었다. 대성공이다.
누명 2. 채소를 막 한 대접씩 먹어야 하는 거 아닌가요?
어차피 식사에 곁들일 샐러드라면 굳이 코끼리 식사만큼 풀을 먹을 필요가 있을까. 김치도, 반찬도 채소를 포함하고 있으니 말이다. 도담이가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참외의 씨를 긁어내고 그 자리에 채소를 좀 얹어주니 보는 즐거움이 있는지 아이가 "우와, 이렇게 하니까 예쁘다!"라는 말로 식사를 시작했다. 샐러드 위의 참외일까, 참외 위의 샐러드일까. 주인공이 뭐든 함께 맛있었다면 이름 지어 무엇하리. 조금이지만 맛있는 샐러드. 그것도 괜찮은 선택지다.
결론- 참외는 맛있다. 씨를 빼도 맛있다. 채소를 얹어도 맛있다. 고로, 참외 샐러드는 맛있다.
누명 3. 샐러드가 거기서 거기 아닙니까?
코스트코에서 연어필렛 5만 원짜리를 사 왔다. 요걸 어떻게 먹을까. 주무르다 벌써 설렜다. 사온 재료를 손질하고 숙성시키면서 음식의 신비에 대해 다시금 깨달았다. 같은 재료를 가지고도 얼마나 다양한 요리가 가능한지. 대강 채소 썰어 넣고, 닭가슴살 넣어 드레싱 뿌린 정도가 샐러드라 생각하면 너무 심심하다. 이왕 할 거라면 요렇게도 해보고, 조렇게도 해보는 재미를 느끼는 게 좋겠다. "어차피 입에 들어가면 다 똑같다."라는 말도 일면 맞는 말이지만 어차피 음식은 입으로만 먹는 게 아니니까. 눈으로 보고, 코로 맡고, 귀로 듣고 결국 목으로 삼키는 거니까. 입은 음식을 먹는 기관 중 하나일 뿐이다.
결론- 연어는 맛있고, 구워도 맛있고, 숙성시키면 더 맛있다. 아토피는 만성 염증성 질환이다. 여기에 연어가 가진 오메가-3, 비타민D, 아스탁산틴 등은 염증 반응을 줄이는 데에 도움을 줄 수 있다고 한다. 5만 원쯤 써서 굵은 필렛 사 올만 하지 않은가. 대용량 재료를 부담스러워하지 말 것. 소분해서 다양하게 활용하면 되니까. 맛있는 샐러드가 여러 번 생길 테니까.
아이 때문에 샐러드를 찾아보고, 고민하다 보니 어느새 샐러드가 좋아졌다. 샐러드 빠진 밥상은 어딘가 한 구석 허전하고, 입이 삼삼하고, 눈이 아른하다. 아주 적은 양의 채소라도 나름의 방법으로 소소한 샐러드를 만들어 곁들인다면 밥상이 한 층 건강하고 밝아지지 않을까. 어제 한 그릇 음식을 밥상에 내며 채소를 빠뜨렸더니, 이제는 도담이가 아쉬워한다. "엄마, 오늘은 샐러드가 없네?" 이만하면 샐러드의 누명 벗기기 대성공이다. 앞으로도 억울한 프레임 씌우지 않으며, 다양한 방법으로 채소 먹기를 이어가 보자.
아이가 제 입으로 채소를 찾기 시작하면, 아토피 밥상의 내일이 밝다.
(음식 알레르기가 없는 아토피 아이의 식단입니다.)